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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Dec 07. 2023

12.12 군사반란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12.12 사태를 보는 다른 관점

https://youtu.be/W8JvMLWUA60?si=qGnkhUck1jZll0Zf

최근 영화 <서울의 봄>이 흥행하면서 1979년에 있었던 12.12 군사반란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게다가 영화 개봉일인 11월 23일이 전두환의 기일인지라 조금 묘하게 얼추 들어맞는 느낌도 있다. 사실 12.12 군사반란은 한국 사회에서 대충 역사적 평가에 대한 합의가 된 사안이고 그 때문에 그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나 역시 이 글에서 한국 사회의 역사적 평가에 크게 반기를 들 생각은 없고 전두환이 불법적인 방식으로 집권한 대통령이라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또 친구 노태우와는 달리 끝까지 5.18에 대해서 사과를 하지 않은 것도 그의 평가가 저 밑바닥까지 추락해있게 되는 원인이었다고 본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간혹 가다가 12.12 군사반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전두환을 옹호하는 측에서는 쿠데타가 아니라는 식으로 변호하는 경우도 있다. 그들의 논리를 보자면 당시 대한민국은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에게 시해되고 권력의 공백 상태가 계속 이어지던 위험한 상황이었다나? 그런 의미에서 걔네가 내리는 결론은 12.12가 군사 쿠데타가 아니라 바로 정승화 체포작전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 입장을 분명히 하자면 나는 12.12를 군사반란으로 규정한  자체에는 의의가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누가봐도 12.12 당시 전두환의 행보는 보안사령관, 합동수사본부장으로서의 모습이라기보다는 권력 장악을 위해 무력을 쓰는 쪽에 더 가까웠으며 정치학 이론적 설명대로라면 12.12는 쿠데타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에 딱 부합하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이걸 두고 반론하는 측은 그래도 전두환이 결국은 정승화 참모총장의 체포에 대한 사후재가를 받지 않았냐고 하던데, "사후재가"라는 표현을 자세히 봐라. 당장 최규하 대통령부터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의 정승화 참모총장 체포 요구에 국방장관 허가부터 얻어오라고 하면서 기각했었고 그런 상황에서 대통령의 승인이 안 떨어지자 전두환이 한 선택이 바로 정승화를 체포하기 위해 병력을 투입한 것이다. 보통 사후재가는 재가를 받기 힘든 긴급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조치인데 당시에는 그렇게 위험한 내우외환의 상태도 아니었고 대통령 본인이 이미 거부했다. 그러니까 전두환이 말한 사후재가라는 표현은 사실상 말장난으로 정당성을 부여할 근거가 전혀 못 된다는 얘기이고 만약 군사반란을 위한 체포가 아니라 10.26 사건 수사 과정에서의 체포 문제였으면 일단 국방장관 허가부터 얻고 오는 게 정상적인 루트였다.

참고로 당시 전두환이 주장한 정승화 체포 요구도 증거가 매우 부족했다. 물론 10.26 사건에서 정승화가 김재규에게 이용당한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과 별개로 김재규가 박 대통령을 시해하는 걸 눈치채지 못하는 등 사건 계획을 둘이서 공모했다는 주장은 근거가 부족했다. 일단 전두환조차도 12.12 이전까지는 본인이 스스로 합동수사 브리핑을 하면서 정승화가 김재규와 손 잡았다는 설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던 바가 있다. 그리고 설령 정승화가 김재규의 공범이라고 해도 당시 한국의 상황은 대통령 권한대행인 최규하가 건재했기에 국정운영이 마비된 상태가 아니었다. 따라서 정상적으로 승인 절차 거치는 것을 생략하고 굳이 긴급 체포라는 극단적인 선택지를 고려할 이유는 전혀 없었으며 사전 허가를 받지 못한 정승화 체포는 합법성이 결여된 불법적인 행태에 불과했다.


무엇보다도 당시 전두환은 어디까지나 보안사령관이었기 때문에 보안사 이외의 군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 그가 가진 권한은 합동수사본부장을 겸직하면서 얻은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10.26 사건)에 대한 조사 권한 뿐이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두환은 정승화 체포 이후로도 서울로 다른 군 부대들을 투입했다. 대표적인 부대가 노태우가 사단장으로 있었던 제9사단과 장태완이 이끄는 수도경비사령부 밑에 배속되어 있었던 제30경비단, 박희도 등이 이끌던 특전사 여단들이었는데 이쯤되면 사실 정승화 체포는 진짜 이유가 아니었음이 너무 뻔하게 보일 지경이다. 게다가 제9사단은 고양시에 위치한 부대로 하필 경기 북부 지역 방위를 담당하고 있는지라 만약 쿠데타 상황이 길어져서 공백이 지속되었다면 우리나라는 전면 남침까지는 아니어도 북한군의 위협에 더 크게 노출되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애초부터 12.12는 정승화 체포는 명분이었을 뿐 실질적으로는 군사 쿠데타였으며 그 과정에서 총리 공관을 습격하고 육군본부, 특전사령부를 점령했으니 그 시점에서 더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상식적으로 박 대통령 시해사건 수사를 위해 정승화를 체포하는 것 딱 하나 하겠다고 전방의 부대를 빼오고 서울에 있는 국군의 주요 시설들을 점령하는 게 말이라고 되는 일인가? 결국 김재규 공범인 정승화의 체포는 쿠데타를 일으키기 위한 명분이었을 뿐이라는 게 실제 12.12 당시 하나회의 군 부대 투입 행보를 조금만 봐도 알 수 있고 따라서 전두환의 진짜 목표는 10.26 사건 수사를 빙자한 권력 찬탈 쪽에 훨씬 가까웠다. 사후재가 이 표현도 웃긴 게 장태완 같은 진압군들 다 제압한 후인데다가 대통령이 머물고 있는 공관을 무장병력들이 포위한 상황에서 이루어졌는데 정당할까?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내가 12.12를 군사반란으로 보는 것은 딱 하나 때문인데, 사건 종료 이후 전두환이 직접 정치판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전두환이 사건이 끝난 후에 체포한 정승화를 수사하는 본업으로 복귀해 다시 보안사령관 겸 합동수사본부장 자리로 돌아갔으면 과연 합법적인 행동이었느냐의 평가는 엇갈렸겠지만 그래도 정권 획득을 염두에 둔 쿠데타로 평가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아는 사실처럼 12.12 군사반란 이후로 전두환은 실권을 쥐고 5.17 내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진압을 지휘했으며 더 나아가 1981년에는 스스로 제5공화국의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본래 어떤 사건을 쿠데타로 보기 위한 요건 중 하나가 상대방을 제압한 후 실권을 쥐고 정치적 활동을 하거나 권력의 최상층부로 진입해야 한다는 것인데 전두환은 그 조건에 딱 맞는 사람이었다.


이런 말을 하면 항상 나오는 반론이 전두환은 5.18 당시까지도 대통령이 아니었으며 한참 후에야 대통령으로 올랐다는 것인데 10.26 사건부터 제5공화국까지의 타임라인을 살펴보면 완전 헛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2.12 군사반란으로 정승화 참모총장, 장태완 수경사령관, 정병주 특전사령관 등 전두환을 견제할 만한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 모조리 날라간 것은 물론이고, 5.17 내란이라는 또 한번의 친위쿠데타 이후로는 최규하가 식물대통령이 되며 전두환은 확실한 실권자가 되었다. 그 후 전두환이 차기 대통령이 되는 건 누가봐도 기정사실이었던 건 덤이고. 그리고 5.16 당시와 12.12의 다른 점이 있다면 최소한 5.16은 당대 민주당 장면 내각의 무능으로 인해 4.19 주도 세력 일부조차도 지지할 정도로 정치적 정당성이 일부나마 존재했었다.


이처럼 나는 12.12를 군사반란이 맞다고 본다. 단지 12.12부터 제5공화국 정식 출범까지 텀이 살짝 있을 뿐이지, 쿠데타라는 사전적 의미에 부합하는 행동이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12.12 이후 전두환이 1980년 5월에 광주에서 학살을 저지른 부분은 솔직히 군사정권 시절의 유산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 나조차도 과오라고 인식하고 있다. 물론 전두환이 대통령으로서 보였던 행보만 놓고 보자면 분명 성과라고 할 만한 것도 있었고 인재를 배치하여 국정운영을 맡기며 3저 호황을 이끌던 면모는 나름 유능했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문제는 당장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가장 정치적 정당성이 없었던 대통령이라는 부분과 5.18 광주 민주화운동 이 하나만으로도 그나마의 공을 너무나 큰 죄악들이 다 덮어버리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아무튼 난 노태우는 몰라도 전두환에 대해서는 앞으로 오랫동안 역사적으로 명예회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과거 김영삼 정부가 12.12 군사반란 가담자들을 내란죄로 처벌했던 것에 살짝 이의를 제기해보려고 한다. 물론 앞에서 계속 얘기했듯이 나는 전두환은 쿠데타를 일으킨 반란군 수괴가 맞다고 보며, 한국 근현대사에서 정치적 정당성이 가장 부족했던 대통령임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내가 12.12 군사반란을 내란죄로 다스리는 게 조금 회의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이 사건이 바로 체제 변환이라는 현용 법으로는 함부로 해석하기 힘든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형법 "이론"상으로만 보자면 내란죄라는 것은 그 죄의 성격상 미수죄만 처벌할 수 있으며 기수에 이르면 처벌이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쉽게 얘기하자면 정변에 성공한 세력들에게 형법상의 죄를 논하는 건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니 2차원적인 사고에 갇힌다면 과거의 쿠데타에 대해서도 일일이 옳고 그름을 따지게 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당대 고려 법률상 불법이었던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 대해서 이성계가 세운 조선 왕조는 그에 대해 불법이라고 규정해야 한다. 또 내란죄에 대해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오류인 사실이 또 하나 있는데 그건 우리 현대사 속 단죄된 쿠데타는 12.12 밖에 없다는 것이다. 5.16 군사정변만 하더라도 가담자들에 대한 내란죄는 전혀 적용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 쿠데타의 중심 인사였던 김종필과 박태준은 민주화 이후 첫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 정부에서 국무총리까지 했었다. 따라서 내가 묻고 싶은 의문은 12.12는 내란이라면서, 정작 5.16은 내란이 아니라는 일관성 없는 입장은 무엇이냐는 것이며, 개인적인 생각으로 내란죄라는 것은 최소한 한국에서는 정치적으로 사용되었다고 밖엔 생각할 수 없다.

다만 5.18은 기수라는 점에서 공소권 요건에 걸리는 것과는 별개로 보자면 내란죄 조건에는 12.12보다 훨씬 더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있다. 또 국가 통치의 기본에 관한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 행위는 사법부에 의한 법률적 판단의 대상으로 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아서 사법심사권의 적용 범위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이론인 "통치행위"에 입각해서 보면 단순히 일개 사법부가 정치적이고 초법적인 행위인 쿠데타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것은 조금 무리인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12.12 군사반란이 내란죄에 해당되는 요소들을 상당수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나 형법 이론에 따르면 내란죄는 그 죄의 성격상 미수만 처벌할 수 있고 기수는 처벌할 수 없다고 나와있다는 얘기인데 따라서 12.12 군사반란에 내란죄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좀 애매할 수 밖에 없다고 보여진다.


또한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고 난 뒤, 그것도 임기 중반부인 1995년도에 가서야 초기의 입장을 뒤집고 전두환, 노태우에 대해 구속 수사를 한 것은 솔직히 떨어지는 정부 지지율 만회용 같은 정치적 목적과 보복을 위해 사용된 감이 없지 않다. 실제로 보면 김영삼 정부의 지지율 지표는 임기 중반으로 가면서 삼풍백화점 붕괴, 유조선 기름 유출 사고 등의 대형참사로 인해 떨어지다가 조선총독부 철거, 전-노 두 전직 대통령의 구속으로 다시 상승세로 바뀐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원래 김영삼 정부는 하나회 숙청 정도만 제외하면 5공 인사를 법적으로 처벌하는 것에는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는데 검찰이 이때 하필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라고 하면서 여론의 어그로를 끈 것도 법감정에 따른 재판에 영향을 줬었다. 결정적으로 내란죄 판결이 딱히 법적으로 제대로 되었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은 두 전직 대통령을 질질 끌다가 사형, 무기징역 판결을 내렸다가 또 다시 대선 앞두고 사면하는 등 법적 원칙보다 김영삼의 정치적 이익이 목적인 것처럼 보일 만한 짓을 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12.12와 전두환이 벌인 행보는 쿠데타가 맞다. 하지만 내 입장은 형법상의 기준으로 초법적인 행위인 체제 변환을 사법부가 판단을 내리는 것에 대해서는 다소 정치적으로 악용될 여지가 크다고 보며 위화도 회군은 둘째치고 보더라도 비교적 최근 일인 5.16에 대해서도 동일한 잣대에서 내란죄 평가를 내리지 않기 않기 때문에 내란죄의 기준이라는 것에 회의감이 드는 지점이 존재한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전-노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감방행이 그들만의 일로 그치지 않고 한국 정치사에서 계속 이어져 정권 바뀐 후의 정치보복 관행으로 굳어졌다는 것도 있다. 가령 이명박은 노무현을 털었고, 문재인은 이명박과 박근혜를 털고, 윤석열은 문재인과 이재명을 털면서 한국에서 정치보복 문화는 뿌리깊게 자리잡았는데 이 문화의 시작은 다른 것도 아니고 바로 김영삼이 지지율을 목적으로 전두환과 노태우를 "내란죄"로 감옥에 집어넣은 것이었다. 물론 쿠데타 수괴를 감옥에다가 넣고 대가를 치르게 한다는 뜻은 좋았을지도 모르겠으나 이게 관행이 되어 전직 대통령들을 죽게 만들거나 감옥에다 보내버리니 참 문제다.


* 노파심에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 글은 절대 12.12 군사반란을 합리화하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옹호할 생각이 없음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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