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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Jan 15. 2024

라이칭더의 당선, 과연 민주주의의 승리일까?

2024년 대만 총통 선거를 보는 또 다른 시각

https://youtu.be/5e5aXh9FonQ?si=c0f6uldV-CgPJ7Bu

얼마 전 대만 총통선거에서 민진당 라이칭더 후보가 당선되었다. 최종 득표 결과, 민진당의 라이칭더-샤오메이칭 조가 40.05%, 국민당의 허우여우이-자오샤오캉 조가 33.49%, 그리고 민중당의 커원저-우신잉 조가 26.46%를 얻으며 민진당 정권의 연장이 최종적으로 결정되었다. 선거 후반부까지 접전을 달리며 민진당과 국민당, 그리고 민중당까지 3자 구도로 치열한 싸움이 벌어져 결과 예측이 마냥 쉽지만은 않았는데 어쨌든 투표함 개봉 결과는 민진당의 라이칭더 쪽으로 기울였다. 차이잉원 정권이 민심이 갈 수록 안 좋아졌던 상황에 비하면 민진당으로서는 아무튼 승리를 가까스로 쟁취한 셈이다.


라이칭더 당선자는 이번 선거가 대만이 민주주의의 편임을 알리는 계기였다고 자평하였고 한국 언론에서는 친미vs친중의 대결에서 친미가 승리를 거둔 것처럼 보도하였다. 물론 친중vs친미가 아예 틀린 분석은 아니긴 하나 이는 조금 단편적으로만 해석하는 경향이 다소 있다. 그리고, 일각에서는 민진당의 정권 재연장이 국제정세에서 호재인 것처럼 이야기하거나 혹은 민진당의 승리로 라이칭더가 차이잉원의 뒤를 이어 적극적인 반중 정책을 이끌어갈 수 있다는 식의 얘기도 있는 편이다. 뭐, 어쨌든 간에 차기 총통 당선자가 허우여우이가 아닌 라이칭더로 결정되었으니 앞으로 대만의 국가 전략 자체가 기존의 친미-반중 노선을 이어갈 것은 분명하다만.


그러나 과연 대만의 총통 선거를 민주주의의 승리나 친미 대 반중의 이분법 구도로만 볼 수 있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식의 접근법에는 좀 회의적이다. 애초에 이런 관점은 무언가 결론을 내리기엔 좋아도 지나치게 블루팀 레드팀 논리라서 단편적인 결론 말고는 낼 수가 없다. 또한 라이칭더의 당선에 너무 과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과 감정이입을 하는 것은 솔직히 까고 말해 호들갑에 가깝다. 애초에 냉정히 말해 남의 일인 대만 총통 선거에 감정이입해서 친중, 반중에 따라 우리 편이냐 아니냐를 가르는 것 자체도 좀 코미디이고 라이칭더의 당선이 무슨 공산전체주의에 맞서 민주주의가 진정한 승리라도 한 것처럼 얘기하는 것도 뭐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2024년 총통 선거 결과

첫번째로 내가 대만 총통 선거에서의 라이칭더 승리에 과하게 의미를 부여하며 자축하는 것에 의문이 드는 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대만 민심의 다수가 과연 라이칭더를 확실하게 밀었는가이다. 이 선거는 알다시피 3자 구도로 진행되었고 특히 국민당의 허우여우이와 민중당의 커원저는 지지층의 스펙트럼이 겹치는 지점이 꽤 존재한다. 일단 서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교적으로 라이칭더보다 친중, 현상유지적인 성향을 보인다는 것이고 둘 다 차이잉원 정권에 대한 반감을 어느 정도 기반으로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국민당, 특히 장완안이나 마잉주 같은 인사들에 비해 커원저는 2019년 홍콩 시위에서 중국 당국의 진압을 비판하는 등 다소 친중 색채가 옅긴 하지만 아무튼 두 후보 모두 전쟁 가능성을 유발할 수 있는 라이칭더의 강경 반중 색채를 부담스러워 하는 쪽의 표를 받았던 후보다.


선거 결과로 2위는 허우여우이였고 3위는 커원저였는데 문제는 두 후보의 득표율을 합산하면 라이칭더를 누르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두 후보의 표를 변수 고려 없이 합칠 시에는 50%대 후반으로 40%대 초반인 라이칭더를 확실하게 이길 수 있다. 물론 단일화를 했을 시에 사퇴한 후보 쪽의 표가 온전히 온다는 보장은 없지만 두 지지층이 스펙트럼이 겹치기도 하기에 그런 부분에서 적어도 라이칭더로 향할 가능성보다는 높다고 본다. 정치성향의 결은 조금 차이가 있어도 둘 다 야권의 후보이고 실제로도 단일화 논의가 이뤄졌었는지라 만약 성사되었다면 라이칭더하고 한번 해볼 만했을 것이다. 일례로 선거 막판에 한 여론조사에서는 라이칭더가 38.9%, 허우여우이가 35.8%로 초접전 양상이었기에 국민당-민중당의 단일화 실패는 큰 패착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실제로 단일화 논의 과정이 거의 완료 직전까지 갔었다. 허우여우이와 커원저는 단일화를 합의 성사까지 했었으나 문제는 커원저가 먼저 합의를 깨고 대선 완주 의지를 내보인 것이었다. 이때부터 사실 비록 막판에 허우여우이가 다시 지지율이 회복세로 바뀌며 치고 올라왔음에도 패배가 어차피 예정된 셈이었다. 당장 전직 가오슝 시장이자 2020년 총통 선거에서 차이잉원과 대결했었던 한궈위조차도 단일화 실패를 기점으로 패배를 본능적으로 직감했다고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번 선거는 당선자인 라이칭더가 20년 만에 역대 최저 수준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2020년 총통 선거에서 민진당의 활약을 되돌아보면 차이잉원은 57.1%, 즉 817만 231표를 얻었던 것을 생각하면 라이칭더가 40.05%로 약 550만 표 가량 받게 된 것은 상대적으로 아쉬운 성적인 면도 있으니 국민당-민중당 단일화 실패가 가장 큰 패배 원인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해보인다.


라이칭더에 대한 득표율이 역대 최저인 점도 마냥 국민 여론이 선거에서 어부지리로 이긴 민진당에게 호의적이지 않음을 잘 보여준다. 대만 독립파들 사이에서 친중 총통으로 악명 높은 마잉주는 2008년에 58.45%로 765만 9,014표를, 2012년에 51.6%로 689만 1,139표를 얻었으며 심지어 라이칭더 이전 역대 최저 수준으로 당선되었던 2004년 선거에서의 천수이볜조차도 50.11%로 6,471,970표는 얻었다. 즉 만약 허우여우이-커원저의 야권 단일화가 성사되었다면 라이칭더가 지금처럼 당선될 가능성은 확실하게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도 대만 정치평론가들은 라이칭더가 과반 이상의 득표율을 얻지 못한 상황상 완전한 승리를 거두지 못했으며 그렇기에 국정장악력이 임기 시작부터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총통 선거와 같이 치러진 입법원 선거 결과

이러한 라이칭더의 임기 시작과 동시에 레임덕이 나타날 것이라는 주장은 단순히 친국민당 관점에서의 시각으로만 볼 수 없다. 그 이유는 이번 총통 선거랑 같이 치러진 입법원 선거만 봐도 답이 나오기 때문이다. 선거 전 집권 여당인 민진당은 62석이었으나 선거 후에는 51석으로 줄어들면서 과반 확보에 실패했다. 반면 야권인 국민당은 52석, 민중당은 8석, 친국민당 성향 무소속이 2석을 차지하며 총통 선거에서 라이칭더가 당선된 것과는 달리 입법원은 완전 여소야대 정국으로 변해버렸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자면, 라이칭더는 여소야대 정국이라는 시작부터 레임덕이라는 디버프를 가지고 출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 주류 민심 또한 라이칭더라는 새 정권에 대한 지지를 대표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사실 이는 차이잉원 정권의 민생경제 문제 해결 실패와 강경 반중 정책으로 인한 긴장 고조가 그만큼 민진당의 지방선거 참패 이후로 민진당에 대한 반감을 키워서 견제 심리로 작용한 면도 있다.


아무튼 이렇게 여소야대 정국이 되어버리니 라이칭더와 민진당 입장에서는 정국을 자신들이 독주하여 정책을 이끌어가는 것이 쉽지 않아졌다. 재미있는 것은 총통 선거와는 달리 입법원 선거는 야권의 승리로 끝났다는 부분인데 이는 후보 단일화 문제도 있고 또 의외로 교차투표 영향도 부정할 수 없다. 한마디로 중국이 싫어서 국민당을 찍을 바에 차라리 라이칭더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들 중에 그래도 그의 강한 반중 성향에 부담스러움을 느껴서 어느 정도 제어할 목적으로 입법원 선거 표는 국민당 혹은 민중당에 준 쪽도 있다는 것이다. 애초에 라이칭더의 강경 반중 성향은 대만 내 반중 정서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좀 있는 편이고 실제로도 총통 선거 여론조사에서는 라이칭더가 계속 1위였지만 반대로 입법원 선거 여론조사에서는 국민당이 조금 앞서거나 아니면 별 차이가 없는 수준이 유지되어 왔다. 따라서 라이칭더는 비록 당선은 되었지만 안정적인 국정운영은 시작부터 삐걱거릴 수밖에 없으며 중국 쪽도 입법원 선거 결과에 대해서는 안심한다는 뜻을 내보인 바 있다.


그리고, 한국 언론에서는 이번 총통 선거를 단순히 친중vs친미의 구도로만 보도하려는 경향이 보이는데 너무 단편적이고 자극적으로만 얘기하는게 아닌가 싶다. 그런 특성이 아예 없다고는 안 하겠지만 국민당이 무조건적인 친중, 친중공 성향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마잉주 전 총통이 중국을 방문하고 시진핑을 치켜세우는 돌출 행동을 했을 때 허우여우이는 확실하게 선을 그은 바가 있고 애초에 이 사람 자체가 국민당 정치인들 중에서 친중 색채가 가장 옅은 사람 중 하나다. 당장 이번 총통 선거에서도 국민당의 허우여우이-자오샤오캉 조는 중국의 강경한 대만에 대한 압박을 분명히, 그것도 꽤 단호한 어조로 비판한 적이 있었으며 이는 일각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국민당이 진짜 무슨 중국 본토에 대만을 갖다 바치려는 매국노 정당 수준이라는 주장과는 상반된다.

중화민국 국군(中華民國 國軍)

예를 들자면 최근 중국 공군기가 대만 부근을 침범하자 허우여우이의 러닝메이트인 부총통 후보 오샤오캉은 대륙이 타이완을 공격할 경우에 보복 공격으로 중국 본토를 원점 타격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패트리어트, 슝펑-3, 톈궁 미사일 등을 더 적극적으로 대량으로 생산하여 대륙이 먼저 공격해올 경우에 중국 본토의 공항, 군사기지, 해안을 타격해야 한다고 강하게 말했다. 또한 공대함, 지대함, 함대함 미사일을 대만 해협 140km 내지는 300km 지점에 집중하여 중국군의 침범시 섬멸할 태세를 갖출 것을 공약했다. 이는 실질적으로 집권 여당인 민진당의 국방 정책 방향성과 일치하며 한 가지 더 나아간 것이 있다면 군비를 증강하여 중국을 압박 후 대만을 겨냥하고 있는 미사일의 3분의 1 내지는 절반의 감축을 요구할 방침을 세웠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친중 국민당과 친미 민진당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로만 대만 정치를 파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여기서 한 가지 또 의문을 제기해보자면 한국인 같은 제3자가 아니라 당사자인 대만인들이 과연 이 선거를 단순한 친중vs친미, 미중 간의 대리전 구도로 인식했을까? 물론 중국 문제가 어느정도 영향은 줬겠지만 외부 뿐만 아니라 내부적인 요소도 선거 표심에 영향을 크게 끼칠 수밖에 없기에 당연히 대만인들은 투표에서 양안관계 외의 다른 문제도 고려했을 것이다. 실제로 대만 젊은 층의 주요 관심사는 양안관계 문제가 아니다. 2021년도 미려도전자보 조사에서 20대의 11.6%만이 자신이 확실한 대만독립파(7.3%)이거나 중화사상파(4.3%)라고 답했던 것만 봐도 대만 청년층은 생각보다는 중화사상이나 독립 문제에 별로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음이 보여진다.


현재 대만 청년들은 스스로 높은 집값과 실업률, 저임금 등에 시달리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그리고 이를 잘 파고들어 대안으로 주목받아 3위에 안착한 후보가 바로 민중당의 커원저이다. 커원저는 비교적 친중 성향이지만 홍콩 시위 진압이나 중국 인권 문제 등에서는 꽤 수위높게 비판을 가하고 있으며 단지 중국과의 경제 교류를 통한 실리를 추구하는 실용적 친중에 가까운 노선이다. 이는 양안통일을 지향하는 국민당과는 좀 차이가 있는 셈. 커원저는 차이잉원의 반중 어젠다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국민당의 고리타분한 중화주의 성향으로 인해 민진당, 국민당이 놓친 경제 문제를 집중적으로 공략해 친중vs반중 구도에서 벗어나 잘 먹고 잘 사는 방법에 대해 의견을 제시했고 이게 먹혀들어 그동안의 중화냐, 독립이냐의 논쟁에 질린 많은 유권자들의 생각을 정치권에게 표심으로 증명했다. 따라서 커원저의 약진은 양안 문제가 단편적인 친중 대 반중, 공산주의 대 민주주의, 제2세계 대 제1세계, 레드팀 대 블루팀만 있는 것처럼 왜곡해서 볼 수만은 없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라이칭더가 강경 반중파라는 얘기도 살펴보자면 분명한 팩트이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타이완 독립" 성향인지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일례로 립서비스일 가능성도 있지만 라이칭더는 이번 총통 선거 정국에서 대만은 이미 중화민국이라는 주권을 가진 독립 국가이기에 중국에 속하지 않으며 별도로 대만의 독립을 선언할 필요가 없다고 한 적이 있었다. 이 말만 보면 차이잉원처럼 현상유지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것이고 라이칭더는 당선 이후로도 인터뷰에서 중화민국 헌정체제에 따라 중국에 굴하지도, 자극하지도 않고, 현상 유지를 추구하겠다고 밝혔다. 그래서 실제로 라이칭더가 중화민국이 아닌 진짜 독립파 그 자체인 타이완으로의 정체성 변화를 추구할 가능성은 굉장히 낮다고 본다. 이게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 라이칭더도 현실 정치인인 이상 만약 진짜 독립 선포하고 무작정 하나의 중국 X까라는 식으로 나오면 중국이 어떻게 대응할지는 뻔히 알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타이난시에서 투표한 민진당 라이칭더 후보

다만 이와는 별도로 대만이 중화민국이라는 중국 본토와는 다른 주권 국가이기 때문에 따로 대만 독립을 선포할 필요가 없다는 라이칭더의 발언만으로는 그가 차이잉원보다 강경한 반중 스탠스를 취할지는 벌써부터 알기는 힘들다. 이 발언은 차이잉원이 총통 선거에서 당선되었을 때 BBC와의 인터뷰에서 말한 멘트와 맥락상 똑같은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일단은 라이칭더의 대중 정책 기조가 전임자 차이잉원 정도의 수준은 될 것이라는게 확실하다고 보며 아마 내 주관적인 뇌피셜로는 총통 선거 이전 지금까지 보여온 행보만으로는 민진당 내부에서도 강경 반중인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중국이 그를 극도로 싫어하는 것인데 일단 여소야대 정국이다 보니 라이칭더의 대중 정책에 대중 유화파인 국민당, 민중당이 제동을 걸 확률이 매우 높기에 라이칭더 멋대로 굴진 못할 것이다. 게다가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라이칭더의 당선을 축하하면서도 하나의 중국 원칙 입장만은 분명히 했다.


https://news.tvbs.com.tw/politics/2367249?from=president_election-newsletter

(대만 매체 TVBS의 한국 언론의 이번 총통 선거 보도에 관해 다룬 기사)


라이칭더는 이번 선거를 마치 권위주의와 민주주의 중에서 대만인들이 민주주의를 고른 위대한 선거인 것처럼 평했고 한국 언론들 또한 친미vs친중의 대결 혹은 민주주의의 시험대라는 식으로만 얘기했다. 물론 이러한 분석도 타당성이 있긴 하다. 그러나 이번 대만 총통 선거는 단순히 블루팀 레드팀 문제로만 보는 시각도 많은데다가 대만 민심이 반중 정서가 강해지고 있는 상황상 무조건적으로 라이칭더에게 호의적일 것만으로 보는 시선도 종종 있어서 이 글에서 국민당, 민중당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같이 실시된 입법원 선거 결과도 겸사겸사 언급하게 되었다. 대만 총통 선거 결과에 맞춰 이런 시기일 수록 우리도 동북아 정세의 격변에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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