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국제정치의 양면성을 묘사한 게임

게임 <콜오브듀티: 블랙옵스 콜드워>

by 제이슨

* 이 글은 작년 이맘때 블랙옵스 콜드워 출시에 맞춰 썼던 글입니다. 뱅가드가 출시된 지금, 다시 생각나서 꺼내봅니다


얼마 전 11월 13일, 콜오브듀티 시리즈의 최신작 블랙옵스 콜드워가 발매되었다. 이전 첫 TV 트레일러에서 소련 출신 망명자 유리 베즈메노프 인터뷰를 넣어 자기 자신들을 돌아봐야 한다는 묵직한 메세지를 날렸는지라 확실히 블랙옵스 콜드워 켐페인에 대한 기대는 컸었다.


작품은 벨이라는 주인공과 애들러라는 CIA 요원이 서방을 향한 핵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페르세우스를 추격하는 내용을 다룬다. 그 과정에서 벨은 동료들과 함께 동독, 쿠바, 심지어는 소련 내부까지 왔다갔다 하는 고생을 하면서도 동시에 1968년 자신이 베트남에서 페르세우스와 마주쳤던 기억을 되돌아본다.


하지만 정작 그의 정체는 CIA의 요원도 자유세계를 지키는 수호자도 아닌 페르세우스로 지목된 인물의 부하였다. 사건의 전말을 얘기하자면 터키 트라브존 비행장에서 아라쉬에게 라이벌 제거를 명목으로 총에 맞고 쓰러진 벨을 애들러가 데려와 치료시켜 살린 것이었다.


근데 문제는 살리는 대신 벨의 정신기억을 조작해 애들러와 심즈가 베트남에서 겪었던 일을 기억으로 주입시키고 CIA 요원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만든 것. 당연히 이를 모르는 벨은 자신이 CIA 요원이라 믿은 채 자신의 조국 땅에서 소련군들을 죽여나간다.

후반부 페르세우스의 공격이 임박해지면서 애들러는 페르세우스의 공격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찾고자 벨을 일으켜 세워 원래 벨의 정체를 밝힌다. 이는 벨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었을 것이고 제대로 생각할 시간도 없이 애들러는 벨에게 페르세우스가 어딨는지 묻고 여기서 플레이어는 애들러를 끝까지 믿고 갈 지 아니면 그를 배신하고 조국에 복귀할 지 선택할 수 있다.


이처럼 블랙옵스 콜드워는 애들러가 악인인 것처럼 묘사되지만 사실 그의 행동은 틀린 건 아니었다. 페르세우스라는게 결국 실존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그래도 소련의 서방 세계에 대한 핵 공격은 예정되어 있던 것이었고 애들러는 그것을 막고 싶어했을 뿐이다. 이는 사익을 위함이 아니며 애들러가 진정한 애국자였음을 잘 보여주는 단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애들러의 행동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그가 한 행동은 엄연히 불법적인 방식이며 한 사람의 인격을 무자비하게 짓밟는 것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거기에다가 애들러는 벨이 미국을 도와 소련의 계획을 저지하는 것을 선택했을 시 모든 것이 끝난 뒤 벨을 따로 불러내어 토사구팽하는 잔혹한 모습을 보인다.


벨 역시 선한 인물이라고 볼 수 없다. 그가 CIA로부터 불법적인 세뇌 조작을 당한 피해자인 것은 맞지만 그가 온전히 기억이 있을 때는 소련의 핵 공격 계획의 앞잡이였고 또한 애들러를 배신하는 것을 선택했을 시 CIA의 악행을 종지부에 찍었지만 그 대신 유럽에 핵을 떨궈 무고한 시민 수십, 수백만을 학살하는 참극을 저지른다.

이러한 블랙옵스 콜드워 스토리의 가장 큰 특징을 꼽으라면 바로 피카레스크적인 전개라는 것이다. 피카레스크란 악인vs악인의 구도거나 혹은 주인공이 악인인 작품을 뜻하는데 그저 더러운 일을 자행하는 사람만 있는 블랙옵스 콜드워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싶다.


영웅의 화려함을 강조하는 모던워페어 시리즈와는 달리 블랙옵스 시리즈는 염세적이고 자유세계에 대한 비판점도 콕 찍고 넘어가는 듯한 성향이 있다. 혹자는 이게 반미주의와 연관이 있다며 싫어하겠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 반미주의라면 반대편 진영을 우상화해야 겠지만 아까 말했듯이 벨의 사례를 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블랙옵스 콜드워의 메인 모토는 "자신의 역사를 기억해라. 아니면 그것을 되풀이 해 파국을 맞이하라"인데 확실히 냉전 시대, 더 나아가 오늘날까지의 국제정치의 어두운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국제정치에서 선이란 없으며 누구든 더러운 짓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말이 블랙옵스 콜드워 켐페인을 플레이해보며 잘 와닿았다.


오늘날 세계는 극심한 혼란에 빠져있다. 2020년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 19는 중국과 아시아를 넘어 전세계로 확대되었고 미국마저도 코로나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미국에 대한 환상도 많이 깨지고 있는 중이다. 이제 게임 산업에서도 미국식 영웅주의는 가고 좀 더 입체적이고 선악 구분이 미약한 작품들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누구나 진실된 관계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