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 체제는 흔히 국민을 억압하는 체제로 알려져있다. 그도 그럴게 독재자가 집권하는 동안 저항하는 국민들은 짓밟혔고 더 나아가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케이스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역시 독재 체제와 그 체제가 국민들의 손에 무너지는 것을 거치면서 독재자들은 항상 민중을 탄압한다는 그런 이미지가 생겨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의외의 사실이 있는데 그건 바로 독재 체제를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대중의 지지와 암묵적 동의라는 것이다. 비교역사문화연구소에서 기획하고 임지현 교수가 엮은 이 책 <대중 독재>는 우리에게 그간 국민을 억압한다며 악명 높던 독재 체제들이 민중의 암묵적 혹은 직접적 동의 아래 이뤄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번 실례를 봐보자면 나치의 노동 정책은 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아니라 일종의 사회적 뇌물 공여를 통해 노동자에게 사회적 양보를 제공하는 것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나치에 대한 노동자 대중의 동의는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물론 이는 노동자들의 불만이 없던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일상에서 불평불만을 토로하면서도 정작 체제에 대해서는 암묵적으로 동의하게 하는 메커니즘이었다는 말이다.
유사 파시즘 정권인 비시 프랑스도 대중 독재의 대표적 사례다. 나치의 괴뢰 정권이 무슨 대중 독재냐고 할 수 있는데 당시 프랑스 국민들은 점령군 나치와 비시 프랑스 수반 페탱을 별개로 봤다. 그래서 페탱 정권은 민족 혁명이라는 명목으로 국민 총동원 체제를 별 다른 반발 없이 세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 군국주의 체제 역시 대중 독재였다. 일본 제국이 중국으로, 더 나아가 동남아와 태평양으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던 배경엔 국민들의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다. 일본 국민들은 자신들에게 승리에 대한 도취감과 영토를 제공하는 일본 제국 정부에 반항하기보단 순응하여 체제를 지지하는 쪽에 서기로 했다.
의외일지도 모르겠지만 임 교수는 박정희 정권도 대중 독재라고 규정한다. 박정희 정권은 유신 전까지는 분명히 국민의 지지를 업고 선거에서 당선되어 대통령이 되었고 산업화에 대한 선전과 강한 대중 동원성 성격으로 볼 때 우파 포퓰리즘적 성향이 충분히 강했다. 비록 우리는 파시즘을 경험한 적이 없지만 유사한 경험을 겪어본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다수의 지지를 얻은 권력은 독재와는 거리가 멀다 생각하지만, 대중독재 이론에서는 다수의 지지를 얻은 권력이 독재의 본질이라고 본다. 독재와 민주주의라는 선악 이분법은 탈피해야 할 개념이다. 그리고 대중 독재의 등장을 막기 위해서 우리는 근대 민주주의의 토대인 국민주권론을 맹신하지는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