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신병자입니까
1.
우리 가족은 다 정신병자다. 전부 마음이 병들었다.
나는 어린시절부터 모두의 기대와 촉망을 받았는데, 학창시절을 그냥 보내다 대학을 가지 못하고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
엄마아빠는 그 사실을 정신에 문제가 있어서 그랬다는 것으로 주변인에게 합리화하고 싶어했다. 내가 허튼짓하고 다닐까봐 불안하기도 했고. 난 스무살 봄에 서울에 있는 번듯한 대학병원의 정신병동에 들어갔다. 부모님은 나를 정신병원에 보내고 약을 잘 먹고 고치면 가족 모두의 불행이 끝날 것이라 생각했다.
옛날에도, 그리고 지금은 오히려 더. 모두의 불행은 나의 탓이 되었고 내가 하는 말들은 조금만 거슬리면 모두 남탓하는 것, 문제아의 외침이었고, 우리 부모님은 또한 자신들이 삶을 이끌어왔던 방식이 있기에 하나를 결정하면 주변은 안보려 하는 경향이 있으시기도 하다.
2.
오늘 아빠랑 동생이랑 차타고 병원에 가는길에 용기를 많이 내서, 뻔뻔하고 태연한척 하며 내가 생각하는것과 사정을 이야기했다. 들으면서 이상할정도로 가만히 있던 동생이 마지막에 차를 세우더니 거칠게 나가려고 했다. 아빠는 동생을 위로하고 그만하겠다고 했다. 동생은 미친듯이 소리지르고 울면서 자기가 이걸 왜 들어야 하냐고 말했다. 아빠가 진정하라고 여기 있으라 했다.
항상 그랬다. 엄마의 냉함이 중심에, 그리고 정신이상자인 나. 어린 시절부터 엄마는 훈계라는 제목으로 방에서 책읽고 있는 내게 찾아왔다. 엄마가 눈알이 돌아서 나에게 소리지르고 욕하는 것을 숨죽이고 지켜보았던 동생은 살아야 했다. 그렇기에 자신을 먼저 생각해야 했고, 태어날때부터 원하지 않게 가족의 불행이 자신에게 혹처럼 따라왔음을 끔찍하게 생각하며 분노를 평생 응축해왔다. 그 분노의 깊이와 크기는 평소에 누르고 있을 뿐 감히 짐작할수 없다.
3.
엄마도 빚만 가득한 맞벌이 집안에서 3교대 근무와 두 아이의 육아까지 하느라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 내 나이였을 어린 나이에, 근데 그럼 왜 그랬어, 왜 나를 낳았어?
동생은 요리와 강아지 산책을 좋아한다. 평온한 것일수록 좋아한다.
아빠의 포지션은 이런 모든 분란을 감당하고 인내하는 일이다. 지옥이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으나 오랜시간 이미 감내하였고 이제는 많이 지쳤다. 하지만 책임감과 오랜 시간 함께한 사랑, 그리고 가족이라는 사회적 분류가 있다. 아빠는 그것을 어떻게든 지키고 싶은 가장이며, 혹시나 모를 실날같은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낭만가이기도 하다. 자신도 어느순간 죽을지 모를정도로 많이 병들어버렸으나, 모두의 단점을 혼자 품고, 서로를 떠나면 어디에 의지할곳 없을 각자가 뿔뿔이 흩어지는 것만은 막아본다.
4.
그래서 우리 가족의 포지션은 모두 피해자이다.
식물인간이 된 외할머니를 1년 넘게 간호하고 있는 엄마는, 엄마도 이상한 사람이지만, 어쩌면 나의 천성이 그렇듯 엄마도 원래는 착하고 순진하고 잘 웃는 그런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도 외할아버지의 학대라는 한과 분노 그리고 아픔을 오랜시간동안 품고 있었고, 결국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를 미워하기로 했다.
하지만 엄마도 천성이 마음이 약하고 착한지라 할머니한테 그렇게 한게 많이 후회가 되었나보더라. 자신이 평생 해왔고 할수 있는 간호사 일로 자신의 어머니를 지키고, 천천히 마지막 이별을 준비하고 있으니까.
아무도 누군가를 학대하지 말고 살았으면 좋겠다.
내 가족들은 학대라는 말을 질리도록 싫어해서, 이 단어는 어디에도 꺼내지 않으려 했으나 대물림되고 대물림된 이 현상은 이 단어가 딱 어울린다.
5.
청춘인 여자애인 내가 스물다섯 먹고 연애도 한번 못하고 있다.
내 겉모습을 보거나 보이는 모습만 보고 다가왓던 이성들은 내가 불안정하고 애정결핍인 모습을 보고 모두 떠난다. 최근에는 부작용이 심하던 정신과 약을 끊으면서 이런 부분 많이 고치고 달라졌는데, 아직 너무 어렵고 세상에 사랑할수 있는 사람이나 있을까 싶다.
어쩌면 우리 가족은 소소하게 행복하고 싶었던 사람들이다.
도통 보이지 않는 희망을 아직은 품고 살아가기에 아직은 삶을 지속하고 있는거 같다.
다른거 같지만 잘 살펴보고 이해해보면 모두 같다. 피가 섞인 가족이라서.
번외.
맨날 남자만나기에 실패하고 차이는 내게 동생이 그랬다.
'사람은 발굴하는 맛이 있어야 된다.
주저리주저리하면 매력없다 '
아빠가 그랬다.
'처음 만나서 온갖 말 하지말고 좀 무겁고 진중한 모습 보이라'
동생이 또 그랬다.
' 너가 파리지옥처럼 입벌리고잇다가 딱 들어오면 냉큼 집어삼킬려고 도사리고잇는거같아보여서
너 차인거다'
과연 나 평생 연애라도 할수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