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체스터에서 보내는 아빠의 편지
사랑하는 올리비아.
아빠가 이곳 치체스터라는 지역에 처음 발을 디딘 일은, 어찌 보면 우연이었고, 또 어찌 보면 필연이었다.
몇 갈래의 사연들이 서로를 끌어당기듯 얽혀 나를 이 영국 남단 바다 마을로 이끌어 온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처음 몇 달은 참으로 힘들었다.
주말부부가 되어 너와 엄마와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 아팠고, 무엇보다도 일요일 저녁마다 너에게 작별 인사를 하며 너를 안아 줄 때, 서러움에 흔들리는 너를 토닥이며 “아빠가 금요일 저녁에 오니까, 우리 사랑스러운 딸, 그때까지 조금만 참자”라고 말해야 했던 순간이 가장 어려웠다.
그 말을 온전히 받아들이기에는 여섯 살이었던 너에게 그 시간은 감당하기에 어려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지금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가야 했다.
치체스터의 저녁 하늘 아래서 불쑥불쑥 너와 엄마, 선혜의 얼굴이 떠올랐다.
마치 내 앞에 펼쳐지는 마술처럼, 예고 없이.
매주 월요일 저녁이면 아빠는 너에게 편지를 써서 우편으로 보냈다. 그 기억이 남아 있을지 모르겠구나.
한 자 한 자, 나의 그리움과 올리비아 너를 향한 자랑스러움, 그리고 엄마의 희생에 대한 고마움이 차곡차곡 담긴 편지들이었지.
그러나 그 편지들은 일 년을 채 넘기지 못했다.
낭만적인 마음, 아빠의 사랑이 전해질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어느 순간부터 아빠는 내 편지를 받아 들고 아파하는 네 마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때 이후로는 더 이상 우표가 붙은 편지를 부칠 수가 없었다.
그 뒤로 아빠는 하나의 다짐을 했다.
아빠인 나조차 감당하기 벅찼던 ‘그리움’이라는 단어에 날개를 달아, 훗날 그 마음이 온전히 전해질 편지들을 노트를 한 칸씩 채워 가기로.
그렇게 써 내려가다 보면 그 그리움도 시간의 흔적 속에 하나의 기억으로 남지 않을까 하는 물음과 함께.
그렇게 노트들이 채워져 간다면, 외롭던 치체스터에서의 삶도 조금은 덜 헛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처음 치체스터에 발을 디뎠을 때 아빠는 탕미어(Tangmere)라고 하는 작은 마을에 싱글룸 한 칸을 얻어 머물렀다.
그곳에는 주인아줌마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나처럼 주말부부 생활을 하던 한 남성이 한 명 함께 살고 있었다.
적은 영국의 컬리지의 선생님 (렉쳐러) 월급으로 빠듯하게 버텨야 했던 우리 가족을 생각하며 나름 규모를 최소화 한 방을 골랐던 거야.
쪽방 같은 싱글룸 한켠에 놓인
작은 책상은
어려움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한 인간의 성장’이라는 씨앗을
키워 내던 자리였다.
그리고 아빠는
한 글자씩 글을 적어 내려갔어.
그 당시 아빤 치체스터의 하루하루를 컬리지라는 직장과 탕미어에서 보내며 일기를 썼고, 올리비아 너에게 보내는 편지를 노트에 이어 갔다.
가끔 동네를 지나며 가족들이 집에 옹기종기 모여 텔레비전을 같이 보고 혹은 식사도 하며,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들고 유튜브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모습을 지나치며 집에 왔었다.
다른 사람들은 가벼운 약속 자리에 나갔을지도 모를 그때에, 아빠는 온전히 그렇게 펜과 노트로 채운 하루의 끝자락을 책상 위 스탠드에 기대어 보냈다.
되돌아보면, 치체스터에서의 시간들은 어려울 때가 많았다. 그러나 어느 하루도 헛되이 흘러가지는 않은 것 같구나. 내 인생의 한 구간을 무너지지 않으며 통과하게 해 준, 조용하지만 선명했던 그 8년이라는 시기.
지금도 가끔 그 시절의 길을 떠올린다. 일요일 저녁, 다시 혼자가 되는 마음으로 런던을 떠나 치체스터로 향하던 두 시간 남짓의 여정. 그 길 위에서 나는 현실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리고 강해져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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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올리비아.
지난해 아빠는 한글 읽는 것에 익숙지 않은 올리비아에게 62편의 편지 속에 엄마와 아빠 삶 전반을 엮어 영어로 된 한 권의 책을 이곳 영국에서 출판을 했다.
올리비아의 18살 생일에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2년이나 빨리 나와 아빠도 놀랐다.
책상 위에 얹힌 나의 이름으로 쓰인 책 ‘From Korea To Britain, With Love’를 보니 한편으로 마음 한구석이 찡해왔다. 많은 나의 편지들의 일부가 그 안에 담겨 엄마와 아빠의 삶과 올리비아를 세상에 맞이하며 엮어진 그 종이들의 집합 앞에 마음이 찡했다.
사랑스러운 올리비아,
너라는 딸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그 의미들 앞에, 나와 나를 아껴 준 사람들, 혹은 한 사람의 삶이 궁금했을 누군가에게도 조용한 울림이 되기를 바라는 작업이단다.
이제, 아빠의 인생에 적지 않은 시간을 보냈던 치체스터에서의 순간들과 이야기들, 우리 인생에서 만났던 인연들을 통해 만들어 온 삶을 조금 더 풀어 너에게 다음 편지들을 쓰려한다.
올리비아, 아빠가 치체스터에 막 발을 디뎠을 때, 너는 참 어렸다.
너무도 어린 나이였다. 그때 매일 곁에 있어 주지 못한 것이 지금도 마음 시리게 한다.
하지만 올리비아,
우리의 인생은 순간순간 아픔을 지나 자라 왔다. 크던 작던.
그 시간들을 건너 지금의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앞으로 마주할 수많은 날들 앞에 우리는 늘 겸손하게 여전히 배운다.
너의 조용한 응원과 위로를 마음에 담고, 언젠가 아빠의 한글 편지도 읽으며 이해할 그날을 생각하며,
이 편지를 그렇게 다시 시작해 본다.
사랑하는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