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크로 꾹꾹 눌러써 내려가 나만의 인문학
요즘 아빠는 글쓰기를 밥 먹는 것보다 중요하게 생각을 하고 있단다.
근사한 작가나 시인은 아니지만, 매일의 일상의 삶을 써 내려가는 이 기록들이 바로 아빠만의 소중한 역사가 된다는 걸 깨달았거든.
아빠의 작은 천사 올리비아.
아주 사소한 하루를 글로 옮기다 보면, 어느새 반복되는 것 같지만 매일 다른 그 나름의 색깔을 지니고 있는 일상의 삶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할 보물 같은 것이 아닐까? 그 보물을 간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중 하나가 하루를 성찰의 눈으로 바라보고 써 내려가는 일기가 아닐까?
올리비아에게 쓰는 이 편지 글도 마찬가지지.
생각을 정리하고 문장을 고르는 동안,
아빠가 왜 살아가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던지곤 한단다.
펜촉이 사각거리며 종이를 스치는 소리.
그리고 잉크가 종이결을 따라 천천히 스며드는 자국을 남기는 것을 바라보는 일은 언제나 경이롭단다.
만년필의 느낌이 좋아, 일회용 만년필을 수십 개를 주문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그것을 모두 다 써버렸다니... 그들이 재활용이 되어 다행이다.
나의 글들이 장수를 채워가며 쌓이는 것을 보고 있으면, 마치 은행 통장에 잔고가 차곡차곡 쌓이는 것만큼이나 든든하고 뿌듯하지.
만약 '내 안의 나' 말고 또 다른 내가 존재한다면, 그건 남아 있는 만년필의 잉크의 외침이 아닐는지…
아직 많이 어린 딸 올리비아,
주말에 아빠와 같은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너를 보면, 일정 부분 나의 모습을 닮은 것 같아 마음이 흐뭇해진다.
아직 많이 서툰 글일지라도, 아빠의 감정과 생각이 빼곡히 담긴 이 기록들이 더 쌓여 한 장 한 장 읽을 날을 생각해 보면 기뻤던 혹은 슬펐던 날들알 회상할 것이다.
"그땐 이런 생각을 했었지, 참 그런 일도 있었어..." 하고 말이야.
이건 글을 소중히 다뤄본 사람만이 언젠가 경험할 수 있는 경이로운 세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단다.
창밖으로 소소하게 눈이 흩날리고 있다.
하얀 세상을 바라보니,
나에게 글쓰기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가려내는
날카로운 칼날이 아니라,
삶의 경험이 지금 창밖에
흩날리고 켜켜이 쌓이는
하얀 눈과 같은
인자함의 흔적이 아닐는지....
세상에 존재하는 감정과 인간의 이해라는 것은, 어떤 한 단어나 혹은 한 이론으로 정의하기가 참 어렵지.
그래서 우리는 인문학을 공부하고, 앞서 살다 간 선인들의 책과 예술의 힘을 빌려 그 의미를 겨우 이해하려 애쓰는 것일지 몰라.
아빠의 인생 또한 언젠가 이 글들을 통해 나만의 교양서, 나만의 인문학으로 남겠지.
언젠가 올리비아가 쓴 글과 아빠가 써 내려간 이 글들을 읽어보며 웃고 이야기할 그날을 기대해 본다.
올리비아를 사랑하는 아빠가 치체스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