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동료들과 “점심 가볍게 먹자”는 말이 나올 때,
나는 이 샌드위치 가게를 종종 떠올린다.
여기서 주문을 할 때는 괜히 말이 길어진다.
나만 그런가.
빵을 고르고, 야채를 고르고, 소스를 고른다.
선택지가 많다 보니,
우리 아빠는 아마 주문도 못 하고 서 있을 것 같다.
나는 이곳에 자주 간다.
주문할 때만큼은 꽤나 계획적이다.
그들이 만드는 데 방해되지 않게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빠르게 말하고, 빠르게 빠진다. 보통
이 일도 몇 해 전의 일이다.
나는 생오이 특유의 식감이 싫어서
오이를 빼달라고 말했다. 분명히.
그런데 바로 내 샌드위치에
오이를 넣으려 했다.
첫 번째로 눈썹이 올라간 순간이었다.
다음은 소스였다.
나에게 묻지도 않은 채
뒷사람에게 먼저 물었고,
그 사람이 고른 소스를
내 샌드위치에 뿌리려 했다.
나는 그때 멈춰 세웠다.
“그거, 제 샌드위치인데요.”
마지막으로 아르바이트생은
내 샌드위치에 소스도 뿌리지 않은 채
그대로 접으려 했다.
공들여 말한 주문이
전혀 소용없어졌던 순간이었다.
경청이라고 부를 만한 건
그 어디에도 없었다.
물론 그날 밤,
나는 앱을 다운로드하여 글을 남겼고
사과를 받았다.
하지만 이곳은
고객과 소통하며 바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맞춤형 DIY 샌드위치 가게가 아닌가.
누군가는
눈앞에서 만들어지는 샌드위치를 보며
‘선택하는 경험’을 하러 이곳에 온다.
중간에서 듣지 않고,
확인하지 않으면
그건 그냥 편의점 샌드위치보다 못하다.
이 일을 두고
나를 까다롭다고 할 수 있을까.
불편함을 말하는 사람은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라,
대화가 끊긴 걸 알아차린 사람일지도 모른다.
우리 아빠가
이 가게를 어려워하는 이유는
메뉴 때문이 아니다.
주문이
‘대화’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