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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프리카부자언니 Sep 02. 2022

다섯. 남편이 뿔났다

독박 살림 일주일 후 남편의 이혼 선언

"딸 3명을 키우는 것 같아!!!"

 

지난 주말부터 요리와 집안일을 해 주시는 분께서 휴가를 가셨다. 연말이니 기사님도 같이 휴가를 가시고 본격적으로 재택근무하는 남편의 독박 살림이 시작되었다.

 

허리디스크 탈출 3개월 후 극적의 귀국, 가족 상봉의 기쁨도 딱 일주일.

우리는 곧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오랜 비행시간 때문인지 허리와 방사통 최대 통증을 느끼며 평소에 먹지 않던 약 까지 먹으며 최대한 누워만 있다. 침대에 누워 있다가 밥 먹으라고 부르면 나가서 밥 먹고 오고, 아이들이랑 누워서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집안은 한국에서 가져온 짐들을 풀어놓고 정리를 못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난.장.판.

 

아침 식사는 간단하게 먹으니 내가 준비하고, 이 외 점심 저녁 빨래 청소와 설거지 등 모든 집안일은 남편이 하게 되었다.

 

재택근무로 미팅을 하다가도 11시 반이면 벌떡 일어나서 점심 준비하고 설거지하고 빨래 돌리고 다림질하고 청소하고… 반면 아이들 두 명은 빛의 속도로 어지럽히니 치워도 치운 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갑자기 밤에 얘기 좀 하자고 나를 식탁에 불러 앉혔다.

 

나 이렇게는 못 살 것 같아. 우리 Separation에 대해 생각해보자. 앞으로 나의 10년이 이렇게 된다면 나는 정말 돌아 버릴 것 같아”

 

남편은 장장 4시간 동안 그동안 쌓인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코로나로 2020년 3월부터 1년 9개월을 떨어져서 살았다. 남편은 결혼 후 몇 년 만에 싱글로 돌아가 엄마가 해 준 맛있는 밥을 먹고 자유를 즐기며 아주 편하게 즐겁게 사셨다. (테니스 실력이 코치를 압도할 수준으로 늘었음)

그러나, 헤어질 때는 애기였던 아이들이 2년 동안 훌쩍 커졌고, 마누라는 허리를 다치고 마님이 되어 돌아오셨다. 졸지에 돌쇠가 되어 버린 남편은 정신적 육체적으로도 힘들었다.

 

반면, 마님은 떨어져 있던 기간 동안 언제 돌아갈지 기약이 없어 집도 구하지 못하고 친정에서 보냈다.  육아는 전적으로 남편과 유모에게 의존하며 승승장구하던 워킹맘은 처음으로 전업주부가 되어 아이들 둘을 키우며 나름 고된 시간을 보냈다. 더구나 대학병원들의 수술 권유도 무시하고 가족과 함께하고 싶어 무리해서라도 돌아왔는데, 겨우 일주일 만에 이런 말을 하는 남편에게 조금의 서운함을 느꼈다.

 

10시에 시작된 이야기는 새벽 두 시까지 이어졌다. 결국 서로 이해하며 잘 살아보는 것으로 결론이 났으나,

남편은 맥주 3캔을 들고 거실로, 나는 위스키에 얼음을 담아 방으로 들어갔다.

 

이 생각 저 생각에 뒤척이다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 아이가 있는 집은 알람이 필요가 없다. 배 고프다고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 아침을 차려주고, 어제저녁에 쌓인 설거지를 했다. 계속 주무시는 남편님을 깨워 점심을 드리고 저녁에는 한우를 구워 드렸다. 남편은 맥주 3캔의 여파인지 하루 종일 저녁 8시까지 주무셨다.

한우를 드시고 난 남편은 그제야 본인 너무 잘 쉬었다고 고맙다며 안아 준다.

남편을 토닥이며 그동안 힘들었을 텐데 잘해줘서 고맙다고 칭찬해줬다. 그리고 저녁 설거지는 한우 많이 드신 남편이 하신다.  

 

 

지난밤 긴 시간을 이야기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부부간의 대화는 중요하다. 남편이 힘들어하는 것을 조금만 신경 써서 봐 주고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해 줬더라면 어땠을까. 아쉽다.

사람은 누구나 본인 입장에서만 생각한다. 내 손에 박힌 작은 가시가 더 아픈 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결혼 9년 차인 내가 많이 성장했다고 칭찬해 주고 싶었다. 결혼 초기 <이혼> 레퍼토리는 늘 내  몫 이었는데 이제는 칭얼대는(?) 남편을 토닥여 줄 수 있는 아내가 되었다. 그런 나에게 남편은 '마리아'냐고 묻는다.


어제 밤 남편에게 말했다.

"자기야. 당장 한 치 앞도 못 보는게 인생인데 우리가 50년을 함께 할지 어떻게 할지 그런건 생각하지 말자. 그냥 오늘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행복하자. 응?"


나도 내가 참 기특하다.

그리고 무려 4시간의 대화 속에서 단 한 번도 언성이 높아진 적 없는 우리는 나름 중견 부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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