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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프리카부자언니 Sep 03. 2022

여섯. 할머니 - 엄마 - 시어머니

할머니가 가르쳐 준 엄마, 그리고 시어머니

할머니.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단어. 할머니.

가장 그리운 말. 할머니.

가장 보고 싶은 사람. 할머니


태어나서 기억이 있기 시작했을 때부터 함께였던 할머니.

나에 대한 할머니의 사랑은 각별했고, 할머니에 대한 내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아프리카에서 첫 출근하던 날, 지사장님께 드린 부탁은 하나였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지만 할머니께서 위독하시다거나 부고 소식이 들린다면 전 그날 바로 한국으로 가겠습니다.”

 

할머니는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의 엄마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산골짜기에서 삼 남매를 키워내고 시어머니를 모시고 아버지 일을 도와주셨던 엄마의 하루는 꼭두새벽에 시작해서 자정이 되도록 끝나지 않았다. 엄마는 늘 바빴고 내 것이 아니었으며 항상 화를 내고 계셨다. 맏이였던 나는 어린 마음에 내가 말썽을 부리면  엄마가 더 힘들어 진다고, 항상 엄마를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첫 아이를 낳고 친정에서 6개월가량을 살 때 엄마를 처음 만났다.

동생들과 나누지 않고 내가 오롯이 차지한 엄마.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이제야 조금씩 이해하게 된 엄마라는 존재. 그래서 그랬을까. 난 괜스레 할머니를 마음속에서 밀어내기 시작했다. 마치 마음속으로 흠모하던 새 친구를 사귀고 오랫동안 곁에 있어 주던 친구를 멀리하는 것처럼.

 

결혼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며느리’ 입장에서 할머니를 ‘시어머니’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괜스레 할머니가 미워졌다. 우리 할머니 같은 시어머니는 세상에 없는데 말이다. 나는 그렇게 할머니를 ‘엄마의 시어머니’로 대하기 시작했고, 할머니에 대한 내 마음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다.



어느 날, 평생 건강하게 함께 해 주실 줄 알았던 할머니가 떠나셨다. 죽음마저 깔끔하고 대쪽같은 할머니 성미를 닮았다.


몇 달을 울었다. 매일 샤워를 하러 들어가면 “할머니 미안해….”하고 엉엉 울기 일쑤였다. 할머니는 마지막 몇 달이 서운하셨는지 단 한 번도 꿈속에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셨다.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는 더이상 볼 수가 없다는 사실이 너무 슬퍼서 울었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아. 이래서 죽음이 슬픈 거구나. 다시는 그 사람을 만날 수 없어서.



몇 년이 지났다. 아이가 커간다. 문득 내가 자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을 때, 귀를 만질 때, 등을 쓸어줄 때, 발을 만질 때. 나는 엄마가 아닌 할머니의 손길을 떠올린다.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하는 모든 사랑이 담긴 행위는 할머니한테 배운 것이었다. 그제야 때 늦은 깨달음이 온다.


아… 나한테 엄마는 할머니였구나. 그래서 내가 그렇게 할머니를 사랑했구나.



할머니의 죽음 후 배우게 된 또 다른 한 가지.

할머니는 나한테 할머니셨지만, 아버지에게는 엄마였다. 엄마를 잃은 아버지는 얼마나 슬플까…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내가 부담스러워하는 시어머니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엄마다. 내게 우리 엄마가 소중하고 금쪽같은 것처럼, 남편에게도 엄마는 그런 존재일 것이다. 그 생각이 들자, 문득 시어머니에 대한 부담이 많이 줄었다. 며느리인 나의 시어머니가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남자의 엄마로서 그 분을 다시 보게 된 것이다.  



뒤늦게 회한의 눈물을 흘려 본 들. 할머니는 아마 내 꿈에 찾아오지 않으실 거다.

어릴 때 유난히 겁이 많고 귀신을 무서워해서 화장실도 혼자 못 가던 걸, 할머니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근데 할머니… 나 이제 귀신 안 무서워해. 그러니까 이제 와도 돼. 보고 싶어 할머니.


할머니라고 쓰고 엄마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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