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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프리카부자언니 Sep 01. 2022

넷째 날. 산골짜기 소년의 이야기

깊은 산속에 한 소년이 살았다. 

깊은 산골짜기에 사는 한 소년이 있었다. 

깡말랐으나 다부진 몸, 번뜩이는 눈빛과 총명한 이마는 이미 그가 사는 곳에서는 소문이 나 있었다. 


소년은 해가 뜨기 전에 산으로 갔다. 그가 두 번째 지게를 지고 내려와 아침 식사를 할 때쯤이면 그의 사촌 형이 느지막이 일어나 하품을 했다. 아직 첫 번째 짐도 해 오지 못한 그의 아들에게 큰 어머니는 니 사촌 동생 반이라도 닮으라며 등짝을 때리기 일쑤였다. 


소년은 그의 아버지가 쉰이 넘어 본 장남이었다. 

재혼으로 만난 마흔이 넘은 아내가 산으로 백일기도를 다니며 얻은 귀한 장손이었다. 


소년의 아버지는 늘 아팠다. 

소년의 아주 어린 기억부터 아버지는 늘 기침을 하셨다. 말씀을 하시다가도 기침이 나와 말을 다 잇는 경우가 드물 정도였다. 

겨울이면 소년은 잠을 잘 수 없었다. 끊이지 않는 기침소리에 혹여나 아버지가 돌아가실까 봐 늘 불안에 떨며 잠을 설쳤다. 


그의 아버지에게는 이상한 병이 있었다. 

무언가 본인 뜻대로 되지 않을 때면 가슴을 움켜쥐고 

“아이구.. 아이구…” 하며 방바닥을 기어 다니셨다. 화병이었다. 

급기야 말년에는 시력을 잃고 장님이 되었다. 


소년은 동네의 누구보다도 영특했지만 중학교에 갈 수가 없었다. 학교는 소년이 동이 트기 전 이른 새벽에 꼬박 몇 시간을 걸어야 하는 곳에 있었다. 학교가 끝나고 돌아오면 이미 한 밤 중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다리가 불편했다. 아주 천천히 걸을 수 있을 뿐, 달릴 수도, 쪼그려 앉을 수도 없었다. 

위로 셋인 누나는 모두 시집을 갔고, 아래로 돌봐야 할 어린 동생 두 명이 있을 뿐이었다. 

열두 살, 이제 막 소학교를 졸업한 나이에 그는 집안의 가장이 되어 있었다. 


잠시 서울에 있는 유복한 큰 누나 댁에서 살며 기술을 배운 적도 있었다. 

그러나 오래 있지 못했다. 피가 반 밖에 섞이지 않아 달갑지 않은 존재. 자기 아들과 불과 몇 살 차이도 나지 않는데 영특한 그의 존재는 눈에 가시 같았다. 맛있는 반찬은 모두 자기 아들 앞으로 밀어주었다. 소년은 이를 악물고 기술을 배웠던 가게에서 신문지와 박스를 깔고 자기도 했지만, 장남에 대한 그의 아버지의 우려는 결국 소년을 다시 시골로 불러들였다. 

결국 소년은 산골짜기로 내려와 농사를 지으며 부모님을 모신다. 


#창작소설 #시골소년 #최지영작가 #책과 강연 #백백7기 #아프리카부자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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