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하든, 자연스럽게 놀이가 되고 누구나 쉽게 친구가 되던 어린 시절을 지나 막상 어른이 되고 나면 누구와 만나더라도 처음에는 어색해서 낯을 가린다. 그래서 어른들은 누구와 만나게 되면 창피함을 잊으려 술을 먼저 마시나 보다.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은 대부분 골프가 어렵지만 즐겁다고 한다. 가끔 조인방에서 부킹이 되어 낯선 이들과 라운드 할 때가 있다. 골프는 낯을 가리는 어른들이 처음 보는 이들과도 5시간 정도는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게 해주는 친화적인 어른의 놀이다.
언젠가 누가 “가장 재미없는 골프가 무엇인 줄 아느냐?”라고 물은 적이 있다.
정답은 “혼자 하는 골프다.”였다. 외국에서 캐디도 동반자도 없이 홀로 라운드를 해봤더니 재미도 별로 못 느끼겠고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고 한다.
어떤 이는 게임 요소(내기)가 없는 골프도 재미없다고 한다. 물론 지나친 도박 골프는 사회적 문제가 되지만, 얼마씩 적절한 비용을 갹출해서 캐디피와 식사비를 포함하는 게임은 흥미가 있는 게 사실이다. 어느 정도 경쟁을 유도하고, 일말의 긴장감도 유지해 주면서 동기부여가 되어 때론 실력까지도 향상케 해 준다.
결국 여럿이 함께하니까 더 즐거운 거다.
철학자 하이데거의 말처럼 실존(實存)은 세계에 내던져진 불안한 존재라 태생적으로 외롭고 그로 인해 집착하는 것일까. 때론 먹고살기 위해 바쁘다 보면 외로움조차 느낄 겨를이 없을 수 있다. 세월이 지나 노인이 되어서야 누구도 말동무되기를 피하는 외로움에 절어보면 구질구질 맨날 “외롭다”라는 하소연만 입에 달고 산다.
홀로 큰소리치면서 해외 배낭여행을 떠났던 친구도 가끔 현지에서 외로움을 호소한다. 함께 여행하자고 꼬시면서.
혼자는 당연히 외로운 법이다. 형제나 자매끼리도 싸울 때도 많지만 그래도 혼자보다는 덜 외로울 때가 많다. 함께 하는 삶은 더 즐겁고 외로움도 더 잊게 해 주고 나를 더 성장하게 해주는 것은 분명하다.
만일,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혼자 소행성에서 공을 친다면 어땠을까.
해 저무는 석양을 바라보며 홀로 심오하게 고독을 즐기는 게 아무리 취미라 해도, 그 역시 그다지 재미없을 것이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여우의 말을 빌리면 “친구를 만나기 훨씬 이전부터 기다림으로 인해 안절부절 행복해진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혼자서 설레는 경우가 있을까. 설렘 없는 삶은 사막과 같다.
친구와 함께할 때 인생의 설렘도 훨씬 더 커지는 법이다.
그런데, 국내에 있는 미군 골프장에 가보니까 혼자 카트를 끌면서 공치는 플레이어들도 더러 있었다. 혼자 해보는 것도 습관이 되면 그럭저럭 할 만할 것이다. 살면서 혼자 무언가를 스스로 깨닫는 순간도 있다. 골프가 탄생한 배경도 양들이 한가하게 풀 뜯어먹고 있을 때 푸르른 잔디밭에서 목동이 그 지루함을 달래고 즐기기 위해 만든 놀이다. 원래는 무인도의 로빈손 크루소처럼 혼자 하는 게임이다.
세상에는 비록 재미는 못 느낄지라도 당연히 홀로 해야 할 경우도 많다.
더군다나 나이가 들면 혼자 사는 것에도 어쩔 수 없이 익숙해져야 한다. 인간관계로 인해 상처를 입어 그 스트레스로 고생할 바야, 혼자서 잘 지내는 방법을 찾고 이제는 익숙해져야 한다. 언젠가는 사랑했던 이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보고 싶은 이들도 만날 수 없는 상황이 올 때면 어쩔 수 없겠지만.
난 아직은 여력이 있는 한 여럿이서 함께 즐기고 싶다. 웃으면서 서로 이기기 위해 땀을 뻘뻘 함께 할 수 있는 테니스 친구, 동반자 3명과 함께 하는 골프 친구, 북클럽을 함께 하는 독서 친구, 술 한잔하고 싶을 때 부르면 언제든지 올 수 있는 술친구, 등산이 무리하다 싶으면 올레길이라도 걸어줄 수 있는 등산 친구 등. 이런 취미활동에는 남녀노소가 중요하지 않다. 나이가 의미 없다. 즐겁게 함께 하는 데 더 의미가 있다.
언젠가 지금 누리는 달콤한 취미 생활도 홀로 해야 하는 것으로 조정할 날이 오겠지만, 아직은 함께 즐거움을 나누는 시간을 오래 붙들고 싶다. 삶의 한갓진 오후에 도착한 지금까지는 나는 그래도 행복한 사람인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