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하든 놀이가 되던 어린 시절을 지나 막상 어른이 되고 나면 누구와 만나더라도 처음에는 어색해서 낯을 가린다. 그래서 어른들은 누구와 만나게 되면 창피함을 잊으려 술을 먼저 마시나 보다.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은 대부분 골프가 어렵지만 즐겁다고 한다. 골프는 낯을 가리는 이들과도 5시간 정도는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게 해 주는 친화적인 어른의 놀이다.
언젠가 누군가가 “가장 재미없는 골프가 무엇인 줄 아느냐?”라고 물은 적이 있다. 정답은 “혼자 하는 골프다.”였다. 외국에 살면서 캐디도 없이 홀로 라운드를 해봤더니 아무 재미도 못 느끼겠고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고 한다. 어떤 이는 게임 요소(내기)가 없는 골프도 참 재미없다고 한다. 물론 지나친 도박골프는 문제가 되지만, 얼마씩 적절한 비용을 갹출해서 캐디피와 식사비로 내는 게임은 흥미롭다. 어느 정도 경쟁을 유도하고, 일말의 긴장감도 유지해 주면서 동기부여가 되어 때론 점수까지도 향상케 해 준다. 게임도 여럿이 하면 더 즐겁다.
국내에 있는 미군 골프장에 가보면 혼자 카트를 끌면서 공치는 플레이어들도 더러 있다. 혼자 해보는 것에도 무릇 의미가 있다. 살면서 혼자 무언가를 스스로 깨닫는 순간도 있다. 골프가 탄생한 배경도 양들이 한가하게 풀 뜯어먹고 있을 때 푸르른 잔디밭에서 목동이 그 지루함을 달래고 즐기기 위해 만든 놀이다. 원래는 무인도의 로빈손 크루소처럼 혼자 하는 게임이다. 홀로 큰소리치면서 해외 배낭여행을 떠났던 친구는 가끔 현지에서 외로움을 호소한다. 함께 여행하자면서. 혼자는 당연히 외로운 법이다. 더불어 함께하는 삶은 더 즐겁고 외로움도 더 잊게 해 주는 것은 분명하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혼자 소행성에서 공을 친다면 어땠을까. 해 저무는 석양을 바라보며 홀로 심오하게 고독을 즐기는 게 아무리 취미라 해도, 그 역시 그다지 재미없을 것이다. ‘어린 왕자’ 책에 나오는 여우의 말을 빌리면 ‘친구를 만나기 훨씬 이전부터 기다림으로 인해 안절부절 행복해진다’고 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설레었던 경우는 얼마나 될까. 설렘 없는 삶은 사막과 같다. 혼자보다는 친구와 함께 할 때 인생의 즐거움은 훨씬 커지는 법이다.
철학자 하이데거의 말처럼 실존(實存)은 ‘세계에 내던져진 불안한 존재’라 태생적으로 외롭고 그로 인해 집착하는 것일까. 때로 먹고살기 위해 바쁘다 보면 외로움조차 느낄 겨를이 없을 수도 있다. 노인이 되어서야 누구도 말동무되기를 피하는 외로움에 절어보면 구질구질 맨날 ‘외롭다’는 하소연만 입에 달고 살아간다.
혼자 하면 재미없는 것이 골프만은 아닐 것이다. 나 홀로공부, 혼식, 1인 개인 사업자 등. 세상에는 비록 재미는 못 느낄지라도 당연히 홀로 해야 할 것도 많다. 나이 들면 혼자 사는 것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굳이 많은 친구가 필요 없을 때도 있다. 어쩌면 인생에서 골프 동반자 정도의 친구만 있어도 행복한 사람일 거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가끔 나가는 필드이지만, 재미없이 나 홀로 하지 않아도 되는 3명의 적절한 동반자들이 아직은 곁에 있으니 삶의 한갓진 오후에 도착한 지금까지는 아직 나는 행복한 사람인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