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곽해용 Mar 31. 2023

이립(而立)과 이순(耳順). 그럼에도

공자는 논어의 위정 편에서 나이 서른을 이립(而立)이라고 했다. 열다섯에 배움에 뜻을 두고(十有五而志干學, 십유오이지간학) 서른에 자립했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不惑) 마흔 나이도 이미 훅 지나버린 나는 벌써 ‘귀가 순해진다’는 이순(耳順)’의 예순조차 지났다. 그리고, 현실은 결혼과 주택 그리고 취업 준비 등 만만하지 않은 세상살이로 이립(而立)조차 어려운 서른 즈음의 딸, 아들들과 함께 아직도 한 지붕 아래에서 동고동락하고 있다. 남의 말에 아직 고분고분하지 않고 할 말은 꼭 하고 싶은 이순(耳順)의 나도 함께 말이다.     


2023년에 발표한 우리 국민의 기대수명은 82.7세로 10년 전(80.0세)보다 2.7세나 증가했다고 한다. 2026년에는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20% 이상인 초고령사회가 된다. 이 통계 추세라면 지금 이순(耳順)을 넘긴 나는 대략 90세 정도는 살 것 같다. 그렇다면 앞으로 아이들과 만날 수 있는 시간도 지금까지 함께 살아온 30년 정도가 될 수 있다. 물론 내가 치매나 파킨슨, 알츠하이머 등으로 제대로 상대를 알아보지 못할 병에 걸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어머니도 파킨슨병으로 돌아가셨다. 파킨슨은 뇌 속에서 운동에 필요한 도파민이라는 신경세포의 소실(消失)로 발생한다. 처음에는 동작이 느리다가 손발이 떨리고 꾸부정한 자세가 되면서 결국 치매로 연결되는 흔한 노인성 질환이다. 나도 그렇게 되기 싫어서 평소에 운동을 습관처럼 하려고 노력한다. 산책하고 운동하려 한다. 오래 살고 싶다기보다는 건강하게 살아서 자녀들에게 짐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결국 내 인생 여정은 결혼 전 30년과 결혼하고 자녀들과 함께한 30년 그리고 앞으로 남은 30년 정도로 구분되는 듯하다.     


공직에서 퇴직하여 한결 여유가 생겼을 때 처음에는 아들딸들과 그동안 바빠서 함께 누리지 못했던 알콩달콩한 시간도 맘껏 갖고 싶고, 즐거운 여행도 함께 가고 싶었다. 그런데 이젠 이들이 내게 허용해 줄 여유가 그다지 없는 듯하다. 이립(而立)의 나이에는 누구나 바쁘기 마련이다. 결국 내게 남은 30년(불확실하지만). 소중한 시간. 내가 소화하고 내가 결정해서 보내야 한다. 그 시간도 달리 할 일이 없다면 그럭저럭 긴 시간이지만 남은 게 그것뿐이라고 생각하면 짧고도 짧은 시간이다. 아직도 내게는 계속 성장과 동시에 이제는 베풂의 시간이 남아 있다. 나도 재취업으로 다시 여유로운 시간은 잠시 줄었지만, 마음만은 오히려 더 여유로움도 생겼다.  이 시간 동안 이순(耳順)의 나는 이립(而立)의 아이들에게 내가 경험한 좋은 것을 최대한 많이 알려주고 싶다.  


적어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      


이스라엘 탈무드에 나오는 지혜처럼. 비록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적어도 내가 이립(而立) 시절에 이순(耳順) 어른들로부터 받았던 것보다는 더 많이 베풀고 떠나고 싶다. 딱 그만큼만 나아가면 되겠다. 서로 바빠서 말로 소통할 여유조차 부족하다면 책으로라도 많이 남겨서 그들이 어느 날 문득 내가 그리울 때 책 페이지라도 넘겨 가며 읽어보도록 하고 싶다.   

  

이립(而立)과 이순(耳順). 한세대의 격차다. 어울릴 듯 어울리기가 쉽지 않은 관계. 그럼에도 서로 존중해야 하는 사이. 이립(而立)의 젊은이가 이순(耳順)의 어른 말에 무조건 따르고 존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도 일종의 나이 갑질이다. 이립(而立) 나이를 지나온 이순(耳順)의 어른은 조건 없는 배려와 포용의 나이이다. 먼저 경험했다고 훈계쯤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당연함은 더더욱 아니다.     


이제는 아들딸들이 가끔 나의 실수를 지적할 때면 반발하지 않고 즉시 인정하고 받아들이려 한다. 어쩌면 공자가 말한 나이에 대한 정의에는 결국 어른은 더 어른다워야 한다는 어른다운 지혜가 담겨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도 착각 속에 빠져 살고 싶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