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시지프
우리 삶에는 예기치 못한 상황이 늘 도사리고 있다.
때로는 그런 상황들이 우리를 압도하고, 우리는 그것을 피하려 한다. 하지만 모든 상황을 피할 수만은 없다.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의 심장 전문의사 로버트 엘리엇의『스트레스에서 건강으로 – 마음의 짐을 덜고 건강한 삶을 사는 법』에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If you can’t avoid it, enjoy it).”라는 말이 나온다. 예비역이면 군대에서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말이다. 이 말은 우리에게 아무리 힘든 상황이지만,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으라고 가르친다.
사노라면 실패는 누구에게나 흔히 찾아오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실패를 통해 우리는 배우고 또 성장한다. 피할 수 없는 실패를 경험한 후에는 그것을 분석하고, 다음에는 더 나은 방법을 찾아 시도할 수 있다. 실패를 즐길 것은 아니지만, 실패에서 교훈을 찾고, 그 과정을 즐길 수 있다면, 우리는 더 강해질 수 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이 말했던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를 즐겨라. 너희들의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도 결국 그런 맥락이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도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는 것이 최상이다. 피할 수 없으니 당연히 즐길 수도 없을 때가 있다. 느닷없이 불청객 암이 찾아왔을 때, 가족이나 친한 친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거나, 마음의 준비도 안 되었는데 애인이 예기치 못한 이별을 알려올 때, 나이는 들어가는데 이루어놓은 것은 없고 당장 무엇이라도 할 수 없을 때도 그럴 것이다. 내 잘못이 아님에도 내 탓 인양 자책만 한다. 그럴 때가 있다. 이럴 때는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자신에게 좀 너그러워지자.
아무리 죽을 것 같은 순간도 다 지나가게 되어있고, 그렇게 살아간다. 모든 상황에서 굳이 즐거움을 찾으려고 스스로 압박하지 않아도 된다. 따뜻한 차 한 잔, 친구의 격려 등 작은 것에 감사하고, 미래에 대한 걱정이나 과거의 후회보다는 현재 이 순간에 집중하면서 나를 토닥이고 산책이나 목욕, 스트레칭, 휴식 등으로 자기 자신을 우선 돌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힘들겠지만, 지금보다 더 느긋하게 세상을 관조하는 삶의 태도는 나를 더 유연하면서도 더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나름대로 어떤 의미와 본질을 찾아보려 무진 애를 써보지만, 현실에서는 턱도 없이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현장들을 자주 만난다. 인생의 경험이 쌓이면서 혼자서는 아무리 애를 써봐도 세상의 질서를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는 사실도 절감한다. 자신에게 닥치는 역경은 피하고 싶지만, 뜻대로 잘되지 않는다. 누구나 자기만의 묵직한 바윗덩어리를 안고 살아간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조차 말 못 할 사연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러한 곳이다.
알베르 카뮈는『시지프 신화』에서, 산 정상까지 바윗덩어리를 굴러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벌을 반복하는 시지프조차도 한없이 슬프고 불행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행복해질 수 있다고 강변한다. 곧 숨이 끊어질 듯한 운명이지만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고, 오히려 산에서 내려오는 동안에는 자기반성과 성실함을 유지하다 보면 반복되는 서글픈 일상에서도 나름대로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은 결국 인간 자신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스스로 살아가는 날들의 주인이다. 이 부조리한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은 자신의 고통을 제대로 똑바로 응시할 때만이 비로소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그 방법이 보인다.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직시(直視)하자! 그리고 이 현실을 인정하고 그냥 온전히 받아들이자. 마치 군인이 보초를 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적보다 먼저 발견해야 대처가 가능한 것처럼, 눈앞에 놓여있는 현실을 두 눈 부릅뜨고 잘 살피자. 그러면 희미한 가운데서도 표적이 선명해지듯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이 보일 것이다.
물론, 때로 종교에 의지도 해보고, 세상을 향해 아무리 울부짖어 보아도, 그 누구도 명쾌하게 내 존재의 의미와 본질에 대한 답을 가르쳐주지 않을 수 있다. 죽음의 신(神)을 속인 죄로 영원할 벌을 받는 시지프도 마음먹기에 따라 행복해질 수 있다는 데, 훨씬 무고한 우리는 왜 행복하지 못할까. 신은 죽었다고 하면서까지 인간 존재의 분명함을 외친 니체가 눈앞에서 어른거린다. 아무리 세상이 모순덩어리라고 해도 행복으로 승화시켜 나가는 인간의 열정과 긍정의 에너지, 분명한 자기 인식은 인간을 더 인간답게 만드는 자극제이며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내가 부닥친 이 상황을 미처 즐기지는 못하더라도, 지금처럼 힘내어서 성실하게 운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내 모든 열정을 다해 살아보는 것. 그냥 오늘 하루도 다람쥐 쳇바퀴같이 피할 수 없는 내 삶이겠지만, 감히 행복한 시지프가 되어보려 몸부림치는 것. 그것만이 지금을 제대로 살아가는 지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