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라는 존재는 가끔 우리에게 시간의 유한을 깨닫게 해 준다. 간간이 들려오는 누군가의 부고(訃告) 소식은 삶이 언제까지나 영원하지 않다는 당연한 사실과 여생(餘生)을 더욱 간절하고 의미 있게 살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며칠 전, 동기생의 갑작스러운 부고를 받았다. 야외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한다. 직장동료 부친도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돌아가셔서 조문 다녀온 지 하루만이었다. 어제는 암투병 중이던 옛 전우의 아내가 죽어서 문상을 다녀왔다. 앞으로도 이런 부고는 계속 전해질 것이다.
누구나 그러하듯 장례식장을 다녀오고 나면 늘 마음이 편하지 않다. 평소 죽음이라는 존재를 잊고 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고, 유족이 지탱해야 할 삶의 무게가 슬퍼 보여서인지 모르겠다. 하여튼 가까운 이와의 이별은 특히 가슴 아픈 법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당시 반장이었던 나를 무척 아껴주시던 담임선생님이 당직근무 중 갑자기 돌아가셔서 내가 조사(弔詞)라는 것을 낭독하게 되었는데, 준비한 문장 두어줄 읽고는 울음이 북받쳐 통곡하고야 말았다. 전 학생과 교직원 모든 이들이 함께 울었던 슬픈 기억이 떠오른다. 우리는 이런 직간접 경험을 통해 죽음에 대한 사실성과 두려움을 조금씩 이해하고, 애써 극복해 나가기보다는 그냥 그대로 죽음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살아오면서 내가 목격한 죽음의 현장들은 그러하였다.
하루 일을 끝내고 주무시듯 간밤에 편히 돌아가신 할머니의 시신을 자그마한 관으로 직접 옮기면서(당시 나는 양손으로 발목을 붙잡고) 차가운 시신에서도 할머니의 사랑이 오롯이 전해옴을 느꼈다. 오랫동안 홀로 사시다가 돌아가신 강건하셨던 할아버지도 할머니를 이미 보낸 후라 편안한 마음으로 보내드릴 수 있었다.
갑자기 뇌출혈로 요양원에 입원하셔서 얼마 뒤 바로 돌아가신 아버지. 치매 증상으로 요양병원에 입원하여 몇 달 뒤에는 가족조차 알아보지 못하고 무심히 떠난 어머니. 암 판정으로 회복 중이다가 다른 부위로 전이되어 결국 집에서 아무 말씀도 못 하시고 한순간에 돌아가신 장인어른. 누구는 고향 선산에, 누구는 원하신 대로 화장하여 바다에 뿌려졌다.
군 생활하면서 전우를 먼저 보낸 기억도 있다. 졸업 열흘 정도 남겨두고 성당에서 행사 준비를 하다가 안전사고로 먼저 떠난 동기생, 중위 때 부대 퇴근 후 사고로 사망한 PX 관리병. 홀로 사는 모친에게 통보하였으나, 평소 워낙 말썽꾸러기였고 집에도 거의 들어오지 않았으니 “부대에서 알아서 처리”하라고. “화장시킬 돈도 없다.”라며. 공동묘지에 가서 안장하고 다시 찾아갔더니 그때서야 대성통곡하던 모친. 대령 때 예하 대대에서 병사가 취침 중에 원인불명으로 사망하여 부검 끝에 부모 동의로 부대장(部隊葬)으로 보냈던 기억. 당시에는 참으로 안타깝고 가슴 먹먹하고 힘들었다. 삶의 소중함과 동시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실감하였다.
내가 단편적으로 보았던 이들의 죽음은 그들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맞이하는 방식이나 죽음 후 처리되는 과정은 모두 달랐다. 타살 여부를 따지는 과학수사대의 갑작스러운 출동이나 119구급차의 등장 등. 누구나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과 뒤에 남겨지는 것은 결코 똑같이 아니하고 다양하였다.
죽음을 처리하고 관장하는 우리 사회의 장례문화 인식도 이미 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도심지 아파트의 발달로 병원 위주의 장례 절차로 진행되어 불과 몇십 년 전과는 많이 다르다. 상여를 메고 선산으로 이동하여 매장하던 풍습에서 바로 화장하여 납골당이나 가족 봉안묘 등으로. 이미 사이버 추모관과 사이버 묘지도 등장하고 있다. 점점 도심지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요양원과 요양병원의 형태도 그러하고, 우리도 이제는 연명 의료(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를 거부하는 존엄사 허용에서 나아가 스위스,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벨기에 등 일부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의 적극적인 안락사를 논의해야 할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20년 넘게 방송작가로 활동하며 <KBS 파노라마> “우리는 어떻게 죽는가”를 방영하고 취재했던 경험으로 쓴 『그렇게 죽지 않는다』의 저자 홍영아 작가도 “그렇게 죽지 않는다”라고 말한 이유는 죽음을 에워싼 장벽, 무지로 인한 두려움을 가급적 현명하게 우회하여 개별적 죽음의 사실성에 접근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의외로 죽음이라는 사실을 회피하고 외면하려는 이들이 많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때로 개인적으로 신앙을 통해 위안과 치유를 받기도 하지만, 대체로 우리는 죽음 자체를 고통으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사후세계를 잘 알지 못하기에 살아있는 동안은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으로 채우고 싶어서 모든 것이 단절되는 죽음과 애써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생명의 탄생이 위대하듯이 우리가 맞이할 죽음도 결코 허무하고 비루하게만 바라볼 것은 아닌 듯싶다. “생겨나고 죽는 것은 자연스러운” 도(道)의 일부로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랐던 노자의 철학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행복한 웰다잉(Well-dying)까지는 굳이 꿈꾸지 않더라도, 죽음도 하나의 일상일 뿐. 나이 듦을 인정하듯 담담히 직시(直視)하고 받아들이면 되지 않을까.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는 없지만,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행동과 선택이 하루하루 남겨지는 여백의 삶 속에서 의미와 가치를 결정한다는 사실은 대체로 동의하는 듯하다. 언젠가 요양병원에서도 꽃동네에서도 거의 100세 가까운 환자분들이 침대에 누워 인공호흡기로 수명만 연장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무조건 오래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이것은 삶에 대한 또 다른 부조리이며, 죄악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누구나 그러하듯, 나 또한 소풍 나온 듯 아름다운 이 지구에서 내게 주어진 소중한 삶을 만끽하며 의미 있게 즐기면서 살고 싶다. 어느 스님의 말씀처럼 "천방지축(天方地軸)으로, 기고만장(氣高萬丈) 잘난 척만 하다가 허장성세(虛張聲勢)"로 저무는 삶의 끄트머리에서도 가능하다면, 원한만큼 잘살다가 잠을 자듯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만일, 불가피하게 질병의 고통 속에서 수명만 연장하여 의미 없이 살아가야 한다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정도는 꼭 미리 작성하여 나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더 이상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
죽음도 우리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죽음이라는 존재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삶을 더 소중하고 더 후회 없이 살게 해주는 지혜의 등댓불로 삼으면 좋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