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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a Dragon Oct 17. 2024

아. 나의 보로메 섬

오늘처럼 이렇게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이면,

나의 보로메 섬으로 떠난다.     


그 섬에는 아무도 없다섬에 발을 내딛는 순간오직 햇빛과 바람과 파도의 속삭임만 들려온다섬은 나에게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을 돌려주고내 안에 숨어 있던 생각들이 천천히 드러나게 해준다인생의 갈림길에서 마주한 숱한 선택들그 선택이 남긴 흔적들섬을 탐험하면서 나는 잊고 있었던 추억들도 만난다어린 시절의 꿈사랑했던 이들의 기억 그리고 잃어버린 열정...     


한동안 매년 1~2회 정도는 제주도를 홀연히 다녀온 적이 있었다그냥 멀리서 한라산의 자태만 바라보아도 마음이 푸근했었다쉽게 다녀올 수 있는 한라산 영실코스를 특히 좋아했다마음이 메마를 때는 집 가까이 강화도의 마니산도 후딱 다녀왔다백령도와 연평도울릉도와 독도도 가보았지만하루에 다녀오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고 북한과 가까운 접경지역이라 마음도 심란해져서 쉽게 다가가기 어려웠다.     


내게 섬이란고독하지만 그 늪에서 빠져나오면 늘 든든한 힘이 되어 주고자아 발견을 하게 해주는 그런 존재바다 냄새와 갈매기 울음소리가 가까운 곳에서 태어난 나는 멀리 조그마한 무인도를 바라볼 때면무언가를 늘 그리워하고 그곳에 왠지 늘 가보고 싶었던그런 곳이다.     


어쩌면 우리 인생도 하나의 섬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인간의 눈에는 더없이 넓은 이 지구도 우주라는 광활한 차원에서 보면 한 점의 섬에 불과할지도우리가 보내는 하루라는 삶의 궤적도 회사또 어떤 장소로 이어지는 하나의 섬과 같은 모양기동이 불편한 노인이나 환자에게는 그들이 지내는 거주지가 곧 그들의 섬이다어떤 이는 평생 마음속에조차 섬 하나를 품고 지내는 이도 있다.     


우리가 섬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섬이 신비롭기도 하지만외로운 우리 인간을 너무 닮아 고독하게 보이기 때문이 아닐까하여튼 인간은 그 고독 속에서도 서로 연결되어 있고그 연결이 결국 삶의 의미를 새롭게 만든다는 사실도 뒤늦게 깨닫고 있다.     


알베르 카뮈의 고등학교 철학 스승이었던『섬』의 저자 장 그리니에는 “여행해서 무엇하겠는가? 산을 넘으면 또 산이요 들을 지나면 또 들이요 사막을 건너면 또 사막이다. 결국 절대로 끝이 없을 테고 나는 끝내 나의 둘시네아를 찾지 못할 것이니 그저 영광스러운 대용품들이나 찾을 수밖에 없다. 태양과 바다와 꽃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나에게는 보로메의 섬들이 될 것 같다.”라고 했다.     


나도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나만의 보로메 섬으로 훌쩍 떠날 것이다세상이 꼭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과 고독은 이제 더 방황과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나를 더 성장하게 해준다는 사실을 알았기에즐겨 찾는 집 앞 호수공원이든뒷산의 작은 언덕이든은은한 커피 향이 퍼지는 동네 커피점이든 내 마음을 잔잔하게 해주는 섬 같은 분위기가 나는 곳이면 다 좋다그곳이 나의 보로메 섬이다     


나의 보르메 섬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내 마음의 거울이다. 밤이 찾아오고 별들이 하늘을 수놓을 때면 그 신비로움에 다시 감탄한다이젠 더 붙잡을 수 없는 악수정답던 시선과 미소삶이 무거워 시()가 사라져버린 표정들삶의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별이 여전히 빛나고 있다는 것은 내겐 언제나 희망이고 위로다.     


별이 보이는 그 섬에서 나는 바다 냄새를 맡고햇살을 쪼이면서새들의 지저귐을 들으며 숱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새로운 시()를 발견하는 재미와 뒤늦게 알아차린 이 놀랍고 행복한 고독을 오래오래 즐기며 더 사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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