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텃밭을 가꾸다 보면 날마다 잡초와의 전쟁이 다반사다. 아무리 뽑고 뽑아도 나타나는 그 번식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시각으로 보면 불필요한 잡풀에 불과하지만, 가끔 아스팔트 타일조차 헤집고 나오는 그 생명의 강인함과 끈질긴 근성(根性)을 보고 또 한 번 놀란다.
골프장의 러프, 페어웨이, 그린에서는 잔디를 각기 다른 높이로 베어준다. 그런데 새포아풀이라는 잡초는 잔디가 깎이는 높이까지 자랐다가 잔디 깎기에 베이지 않도록 스스로 그 높이보다 더 낮은 위치에서 이삭을 맺는다고 한다.
잡초는 주변 환경에 맞추어 변화하면서 놀랍도록 잘 적응한다. 조건이 좋거나 나쁘거나 늘 최선을 다한다. 키 큰 옥수수와 함께 자라는 잡초는 그 높이만큼 크게 자라기도 한다.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생존한다.
일본의 대표적인 식물학자인 이나가키 히데히로는『전략가, 잡초』에서 연약한 잡초의 생존전략은 오히려 싸우지 않는 것이라 했다. 강한 식물이 자라는 곳은 피하고 경쟁 식물이 자라지 않는 곳만 골라서 터를 잡는다. 밟히면 일어서지도 않고, 밟히고 또 밟혀도 반드시 그곳에서 자신의 씨를 남긴다. 씨를 남기겠다는 목표가 있기에 어떻게든 버틴다.
잡초의 생존 철학을 보면 다양한 경쟁 속에서 반드시 이기는 것만 강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비즈니스나 스포츠 등 승부의 세계에서 챔피언은 한 명뿐이고 순위는 늘 변하게 마련이다.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다. 자신의 역량만큼, 연습한 만큼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다. 좀 잘못했다고 누구를 불평하거나 자신을 원망하기보다 그냥 그대로 수용하면 된다.
진정 최선을 다했다면 부끄러운 게 아니다. 당장 챔피언이 못 되었다고 모든 것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잡초 씨앗이 물 따라 바람 따라 어디론가 흘러가 뿌리내리고 곧바로 생존하듯 그렇게 살면 된다. 그러다가 운 좋으면 넘버원(Number One)도 될 수 있다. 능력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자신이 없으면 없는 대로 최선을 다하는 삶.
마치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퇴역 장교 슬레이드(알 파치노)가 “스텝이 엉키는 걸 두려워 마세요. 스텝이 엉키면 그게 바로 탱고니까요”라고 여인에게 말하는 것처럼. 살다가 좀 스텝이 엉키면 어떤가. 엉킨 대로 춤추면서 즐기면 되지. 능력이 좀 떨어지면 어떤가. 그럴 수도 있지.
“잡초는 아직 그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식물이다.” 랠프 왈도 에머슨가 말했듯이 우리도 아직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제대로 발견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잡초의 세계에서는 잘 나고 못남이 없다. 개성만 있을 뿐.
우리는 삶을 언제나 성공에서만 살아갈 이유를 찾고 있는지 모른다. 실패도, 미완성도 결국 나의 인생이다. 때때로 삶은 불공평하지만, 그래도 계속 이어진다. 포기하면 안 된다. 버티다 보면, 언젠가는 위로와 보상받을 시간이 찾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육사에 입교하기 전 한 달 동안 가혹한 군사훈련을 받는다. 간혹 이 과정을 통과하지 못해 탈락하는 이들이 있다. 퇴학당한 이들 가운데 훗날 또 다른 길에서 크게 성공하는 사례도 있다. 당시에는 현실 부적응자로 마치 인생의 패배자 인양 낙인찍혀서 크게 낙심했을지 몰라도, 선택한 길이 잘못되었음을 빨리 받아들이고 잘할 수 있는 또 다른 틈을 찾아 죽을힘을 다해 살았기 때문이리라.
오늘도 흔들리는 멘털을 다독이며 온 힘을 다해 살아가는 우리의 몸부림에서 골프장에서 날카로운 제초기의 칼날도 피해 가며 처절하게 생존하고 있는 새포아풀 잡초의 모습이 오버랩(overlap) 되어 보인다. 언제 어디에서나 최선을 다하는 우리에게 진심으로 힘찬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