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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돈 Sep 17. 2022

경계의 단상

이미지 출처 :울산매일신문

올해 초까지 객지를 오르내릴 때의 일이다. 주말마다 집을 오르내리다 보면 일산 마두역 횡단보도 옆으로 10여 미터의 긴 줄이 늘어서 있는 풍경을 본지 오래다. 무심코 지나치다가 무언가 싶어 살펴봤더니 로또복권을 사려는 사람들이다. 전국 로또 판매점에서 1등 당첨이 5위 안에 드는 곳이란다. 1등 당첨 9번, 2등 당첨자가 26번 나온 곳이라는 문구가 객들의 발길을 멈춰 세운다. 나도 가끔은 과연 확률이 있을까 생각하면서도 심심풀이로 구매하곤 한다. 복권을 다룬 보고서들을 보면 비법이라고 소개되고 있는 소문들이 얼마나 비과학적인지 증명하고 있다. 또 당첨 확률을 높이는 유일한 비법은 여러 매를 사는 것이란 결론이다. 미국에서 주당 벼락 맞을 확률은 약 2,500만 분의 1인 데 비해 한국에서 주당 로또 맞을 확률은 약 800만 분의 1로 미국에서 벼락 맞기가 3배 정도 더 어렵다. 로또 맞을 희망은 1매당 판매가 1천 원 중 약 600원을 비용으로 지불하고 얻는 대가이다. 당첨에 매몰되지 않고 재미 삼아 구매하는 것은 샐러리맨들에게는 일주일간의 희망을 사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이 비과학적인 투자 판매대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노라면 요즘 삶이 제법 팍팍하다는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희끗희끗한 머리칼을 쓸어 넘기다 기분전환도 할 겸 처음으로 파머를 했다. 현직에서의 긴장감과 스스로를 다그치는 바운드리를 벗어나고 싶은 생각에서다. 어느 정도 새로운 업무에 적응해가며 앞으로 앞날을 설계하다 보면 문득문득 나를 찾는 회사들 앞에 줄을 서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이미 아이들이 사회 진출하는 것을 지켜보니 나이 들어가고 있는 이치를 잊음을 깨닫고 슬그머니 마음을 접는다.


지난주에는 나름 친한 동료의 부인상 부고가 날아들었다. 항상 밝은 얼굴만 보이는 친구인지라 그간의 사정을 알지 못했는데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서야 소식을 접했다. 요즘 부모상은 그려려니 하는 편인데 부인상은 잘 적응이 되지 않는다. 아직은 그럴 나이가 아니라는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큰가 보다. 문상을 나서는데 집사람이 잘 다녀오고 여전히 맞벌이라 얼굴을 대하지 못하는 마음을 전하란다. 버스를 타고 가는 차창에 이런저런 장면들이 오버랩된다. 문득 딸아이에게 안부전화를 걸었다. 여전히 밝은 아이 목소리를 위안삼아 마음을 추슬렀다.


하루를 살아낸다는 것, 그러나 아무 일 없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물처럼 흐른다는 것, 이것이 삶인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선 산책길, 그렇게 울어대던 늙은 매미 한 마리'' 바닥으로 떨어졌다. 순간 우주가 멈칫했다. 어느새 잊었던 귀또리 울음소리가 매미보내는 곡소리로 들린다. 현직과 물러남의 경계에 선 나는, 이생의 우주를 건너는 늙은 매미처럼  '쿨럭' 헛기침을 하며 뒷꿈치를 끈다. 샐러리맨의 오후가 이렇게 시간을 건너고 있다.

(2022.09.17. 맑은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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