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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네스 Apr 24. 2023

다시 읽는 <개구리 왕자>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전제하에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살 권리가 있다

다시 읽는 <개구리 왕자> 

옛이야기는 옛이야기 속 주인공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이 처한 사회 환경에 따라, 지위에 따라, 조건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공통적인 것은, 그들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산다는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그 시스템을 누리며 살고 있고, 일부는 그 시스템으로 인해 억눌린 삶을 산다. 또한 스스로 그 시스템에 젖은 채 살던 대로 당연한 듯 살기도 한다.      

‘결핍은 욕망을 부른다’라고 한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쟈크 라캉의 말을 빌리자면, 옛이야기는 사회의 약자들, 억압당한 자들의 욕망을 표현한 장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옛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의 가부장적인 시스템에 의해 발생한 결핍을 겪으며, 그들의 소망이 담긴 이야기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1815년 발행된 그림형제의 <개구리 왕자: le roi grenouille ou Henri-le ferre>를 보면, 이야기 속 주인공들이 살고 있던 사회가 가지고 있는 특성과 주인공들 각각에게 주어진 환경과 조건을 엿볼 수 있다. 또 어떻게 사회의 시스템들을 이용하며 자신의 욕망들을 표현하고 성취해나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이야기 속 주인공인 왕의 막내딸 공주인  '아이‘는 가부장제사회에서 어떤 억압을 느끼며, 어떻게 표현하고 살고 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림형제의 옛이야기 <개구리 왕자>는 여러 판본이 존재한다. 여러 판본에서 공통적인 이야기가 있는데 그 이야기 중심으로 주인공인 '아이'와 '개구리'의 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 둘은 처음 어떻게 만났고, 이후 어떤 관계를 만들어갔을까?  

     

왕의 세 딸 중의 막내딸은 공을 가지고 놀기를 좋아한다. 어느 날 연못가에서 공을 가지고 놀다가 물에 빠트렸다. 아이는 금방 울음을 텄트렸고, 그즈음 연못에서 개구리 한 마리가 나와 아이에게 묻는다. “너 왜 울어?” 아이는 공을 물에 빠트려서 운다고 하니, 개구리는 아이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자신이 공을 건져오면 무엇을 줄 수 있냐고 말이다. 아이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 줄 수 있는데, 진주, 보석 그리고 금으로 된 왕관마저도 개구리가 원하면 줄 수 있다고 한다.  

개구리는 그것 말고, 아이와 같은 식탁에서, 같은 접시에 담긴 음식을 먹고, 아이의 예쁜 침대에서 같이 자고 싶다고 한다. 아이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콧 방귀를 뀐다. 개구리가 어떻게 사람의 동반자가 될 수 있어? 라며. 그러나 아이는 그렇게 하겠다고 개구리와 약속을 한다. 개구리는 연못에서 아이의 공을 건져와 아이에게 준다. 아이는 기뻐하고 공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간다. 개구리는 까맣게 잊고 말이다. 다음날 개구리는 아이의 집을 찾아온다. 아이는 개구리가 너무 싫다. 그때 아이의 아빠인 왕이 개입한다. 왕은 아이에게 약속한 것을 지키라고 한다. 아이는 아빠의 말을 듣는 척하면서 쫓아오는 개구리를 벽을 향해 힘껏 던진다. 개구리는 그 참에 왕자로 변한다. 개구리 왕자의 마법이 풀리는 순간이다.      


어린이는 그를 둘러싼 모든 것들과 함께, 놀면서 자신 고유의 서사를 만든다    

 

아이는 왕의 세 딸 중 막내딸로 무척 예쁘다. 진주며, 보석이며 금으로 된 왕관까지... 가진 것도 많다. 특히 공을 가지고 놀기를 좋아하는데, 그 공을 연못에 빠트렸다. 그래서 엄청 운다.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한다. 어린이는 일반적으로 아이 주변의 모든 사람들 그리고 모든 물건들과 관계를 맺는데, 특히 놀면서 자신의 고유한 서사를 만든다. 아이는 자신의 공에 무척 애착을 갖는다. 당연하다. 아이가 가지고 놀던 공은 다른 공으로 대신할 수 없다. 그 공과 놀면서 아이 자신만의 서사를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진주나 다른 보석들이 많지만, 외모를 치장하는 것과 삶의 이야기를 함께 만든 ‘공’과 같을 수 없다. 이미 아이의 ‘공’은 아이의 ‘친구’이다. 그 친구를 연못에 빠트렸다. 아이는 친구를 잃어버렸다.  

    

그때 개구리가 나타나 “왜 울어?” 하고 묻는다. 누군가 울고 있을 때, 옆에서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울지 마!’라고 하거나, ‘그러게 조심하지!’ 혹은 ‘왜 여기서 공을 가지고 놀아!’ ‘공은 또 사면 되지!’ 하지 않아서 무척 정겹다. 하루하루 살면서 예기치 못한 일을 만날 수 있다. 그럴 때 그 일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사람에 따라, 사회에 흐르는 편견에 따라 많이 다르다. 우리가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지난해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을 때, 어디 이태원 참사뿐인가마는, 그곳에서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맞이한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되돌아본다.      


아이는 개구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그런데, 개구리의 어어진 말은,  ‘내가 그 공을 건져다 주면, 넌 내게 뭘 줄 수 있어?’ 고 물으며, ‘너와 함께 밥을 먹고 너와 함께 자고 싶어! 그것을 약속한다면 공을 가져다줄게!’ 한다. 아이가 울 때 관심을 가진 개구리지만, 아이의 절실함을 알고는 자신이 바라는 것과 맞바꾸자고 한다.  아이는 개구리의 제안이 무모하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친구’인 공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에 선뜻 ‘그러마’하고 약속을 한다.      


정신분석학자 브르노 베텔하임은, 1999년에 발행한 자신의 저서 “옛이야기의 정신분석적 해석”에서, ‘항상 쾌락의 원칙에 움직이는 어린 소녀는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무엇이든 약속을 한다. 그러나 현실의 그렇지 않다’, 고 밝히지만, 이에 동의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먼저 일상에서 일반적으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아이에게 ‘친구가 되는 것’은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개구리가 공을 연못에서 건져주는 ‘대가’로 한 약속으로 개구리를 ‘동반자’로 삼는 것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아이가 공과 친구가 되었듯이 개구리와도 친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개구리는 다짜고짜 '동반자'로서의 관계를 요구한다. 또한 결과를 예측한다는 게 쉽지 않다. 사회는 개인이 혼자 사는 닫힌 공간이 아니다. 관계에서 발생하는 결과를 어떻게 쉽게 예측할 수 있을까, 독재자들이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우정사랑은 흥정과 거래의 대상이 아니다    

 

아이는 우정, 사랑 등 인간의 감정 그리고 몸을 흥정의 대상으로 둔갑시키지 않는다.  <개구리 왕자>의 '여자 아이'는 브르노 베텔하임의 말대로 ‘결과를 생각하지 않는 쾌락의 원칙만을 쫓는 여자 아이’가 아니다. 개구리가 비인간적인,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약속’을 했다는 이유로 인간의 감정과 정체성을 버리려 할 강요된 '약속'은 지키지 않아도 되고 외려 지킬 필요가 없다.      

우리는 두말할 나위 없이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그것도 과도한 자본주의 말이다. ‘인신매매’ 나 ‘사채시장’이 발달하는 이유가 개인의 절실함을 이용해서 사람의 몸을 담보로 이익을 얻고자 하는 행태이다. 누구나 그러하지만 살면서 절실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믿는 것은 더욱더 진한 인간미이다. ‘자본주의는 우리의 영혼을 악마에게 팔도록 부추긴다’라는 프랑스 표현 어구가 있다. 옛이야기 <개구리 왕자>에서 개구리가 마법에서 풀려나기 위한 개인의 이기적인 욕망을 해결하기 위해 아이에게 인간의 감정을 팔라고 부추기고 있다. 사람의 고유한 감정이나 몸을 상대로 거래를 요구하는 개구리가 사실상 극도의 자본주의 체제와 다를 게 없다. 깊은 물속에 들어가서 공을 꺼내는 일이 아이에겐 어려운 일이지만 개구리에겐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한 일로  ‘거래’ 혹은 ‘계약’를 요구하는 개구리와 아이와의 관계가 균등하지 않다. 

   

아이에게 약속을 지키라고 강요하는 아이의 아버지 왕은 가부장제 사회의 전형이다.

      

왕은 아이에게 약속을 지키라고 명령한다. 약속을 했으면 그것을 지켜야 한다고 강요하는 아버지와 인신매매단 혹은 사채업자들과 뭐가 다를까... 왕은 왜 ‘약속’의 중요성만을 강요할까.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에 따르면, 가부장제는 가장인 남성이 강력한 가장권을 가지고 가족구성원을 통솔하는 가족형태 또는 가족구성원에 대한 가장의 지배를 뒷받침해 주는 사회체계를 일컫는 제도,라고 밝히고 있다. 아이의 아버지인 왕은 가부장제의 전형이다. 왕은 남성으로서 자신의 가장권을 유지하기 위해 가족구성원인 자신의 딸을 통솔하는 기능, 이외에는 하지 않고 있다. 자신의 딸이 ‘약속’을 지키므로 해서 그로 인해 자신의 ‘체면’이 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를 네 침대에 올려주지 않으면 네 아버지에게 이를 거야!’ 협박하는 개구리 역시 가부장제인 사회체제의 특성을 이용해 그에 힘을 받아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원칙만으로 아이를 억압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인간관계를 해치는 ‘대가’와 보상     


디즈니 에니매이션 <겨울왕국 1>을 보면, 주인공 엘자는 그의 아버지인 왕에 의해 강제로 마법을 감추고 숨기는데 여생을 보내게 된다. 엘자는 그의 부모가 죽은 후에야 속박에서 벗어나는데, 자유를 외치면서 부른 노랫말 중에 ‘추위는 나에게 자유에 대한 대가‘라고 한다. 노랫말에서 알 수 있듯이 '대가'는 자기 자신이 스스로에게 주는 것이다. 아버지인 왕의 강요로 그동안 갇혀있었지만, 스스로 눈의 여왕으로 거듭나면서 선택한 '자유'에 대해 '추위'를 대가로 겪겠다는 다짐이다.  어려움을 겪으면서 때론 잃는 것도 있고, 때론 얻는 것도 있다. 그 과정에서 자신만이 느끼는 상실과 배움을 이야기할 때 '대가' 혹은 '보상'을 이야기한다. 주는 게 있으면 당연히 받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보상과 대가가 인간관계를 흩트린다. 

아이가 연못가에서 공을 놀다가 떨어트려 울고 있을 때, 개구리가 아무런 보상을 요구하지 않고 아이를 도울 수는 없었을까,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아이는 왕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 가족을 하인과 같이 통솔, 지배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살고 있다. 아이가 아버지의 명령을 무시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자신의 바람과 정체성을 저버리지 않는다. '피곤하니까 네 침대에서 너처럼 자고 싶어, 나를 네 침대에 올려줘, 그렇지 않으면, 너의 아빠에게 다 이를 거야!'라고 하는 개구리를 아이는 있는 힘을 다해 벽에 던진다. 왕과 개구리의 부당한 요구에서 벗어나고 싶은, 가부장제 사회의 비인간적인 억압에서 벗어나고 싶은 아이의 저항이다. 


여러 각 편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아이가 개구리를 벽에 던지는 바람에 개구리는 잘 생긴 왕자로 변해, 아이와 개구리 왕자가 같이 잠을 자고 마차를 타고 결혼하기 위해 왕자의 성으로 떠난다는 이야기로 끝나거나, 개구리 왕자가 개구리로 변하는 마법에 걸리기 전에 왕자의 충신이었던 앙리 르페레의 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한다. 결국 '아이'는 왕인 아버지의 주도로 왕자와 결혼까지는 하는 것 같으나 이후 어떻게 살았는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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