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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네스 May 29. 2023

샐리가 해리를 만날 때

<샐리가 해리를 만날 때>


“해리가 샐리를 만날 때”를 1989년 롭 라이너(Rob Reiner) 감독의 영화로 만날 수 있었다면, 2023년엔 작은 강아지 샐리가 아기 해리를 만나는 이야기를 그린 그림책 폴레트 브르즈Paulette Bourgeois)의 글, 브르크 케리건(Brooke Kerrigan)의 그림의 “샐리가 해리를 만날 때”(Quand Sally rencontre Harry)를 만날 수 있다. 이미 한 가족 구성원으로 살고 있었던 '샐리'는 새로 태어난 아기 '해리'를 어떻게 가족의 새로운 구성원으로 맞이할까?   

   

그림책 <샐리가 해리를 만날 때>는 황금색 털북숭이 강아지의 이야기이다. 샐리는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았던 강아지였다고 회상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작고 사랑스러운 털 복숭이였었다고 말이다.   


주인 부부는 샐리인 ‘나’에게 늘 ‘귀여운 아기’라며 그들의 품에서 떼지 않았고 잠도 같은 침대에서 잤다. ‘내’가 뭘 해도, 옷가지를 물어뜯고 바닥에 토해놔도 야단치지 않았고, 마당에서 다람쥐를 잡을 뻔한 적에는 ‘최고’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또한 쓰레기통을 뒤지는 것은 ‘나’에게 세상을 발견하는 또 하나의 기쁨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안에 중요한 일이 생길 것이라는 직감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넌 아주 멋진 언니가 될 거야, 그렇지, 샐리? ”였다. 아기가 생길 거라는 소식을 공원에 있는 친구 강아지들에게 전했더니, 강아지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나’를 애처롭게 바라보며 “곧 모든 게 변할 거야” 한다. 어느 날 아기 ‘해리’는 집에 왔고, 집은 늘 소음에 난리 법석이었다. 어느 날 밤, 다행스럽게 집 뒷문이 열려있어 ‘난’ 그 난장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주인 부부는 ‘내’ 게 아기 냄새가 나는 얇은 담요 한 장과 찍찍 소리 나는 다람쥐 장난감을 던져줬을 뿐이다. 해리에겐 커다랗고 예쁜 토끼 인형을 주면서 말이다. 그렇게 친구들이 예견한 ‘변화’는 하나씩 현실로 다가왔다.      
해리에게서는 늘 응가 냄새, 시큼한 우유냄새 그리고 파우더 냄새가 났다. 그래도 난 해리를 따뜻하게 해주고 싶어서 해리를 둥글게 감싸 안아 웅크리고, 핥았다. 그러나 어디선가 돌아오는 말은 « 저리 가 샐리! » 였다. 주인 부부는 해리와 산책을 다녀서 늘 피곤해했다. ‘나’만 빼고 말이다. ‘난’ 산책을 시켜주는 사람에게 따로 맡겨졌다. 잠도 해리는 엄마 아빠와 함께 잔다. 어느 날 “우리 예쁜 아기! ”라는 말이 들려왔다. 난 기뻐 어쩔 줄 몰라 꼬리를 흔들며 신나 왕왕 짓으며 대답했다. 그러나 “조용히 해!”라는 외침이 가슴을 쳤다. 해리는 세상의 중심에 있다. ‘나’도 슈퍼 히어로였는데 말이다. 해리를 이웃집 고양이에게서 구할 수 있고, 만약 해리가 커다란 토끼인형의 무게에 눌려 있다면, 역시 해리를 구할 수 있다. 주인 부부가 ‘나’를 예전처럼 다시 좋아할 수만 있다면 난 뭐든 할 텐데. 
어느 날 밤, 해리는 끊임없이 울었다. 너무 시끄러워 귀가 따가웠지만 맘도 아팠다. 해리 부모는 아기를 담요에 감싸 안았다. 우유를 주고 노래를 불러주고 달랬지만 소용없었다. 그때 ‘난’ 해리에게 눈 맞춤하고, ‘내’가 해리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렸다. 해리는 울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봤다. ‘내’ 코에 작은 손을 대었다. 해리가 ‘내’ 게 첫 미소를 보냈다. 강아지들은 미소를 지을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최선을 다해 해리에게 ‘내’ 미소가 온전히 전해지도록 애썼다. 그랬다. 그들은 나를 여전히 좋아하고 있었다. ‘우리’는 산책을 같이 했다. ‘난’ 태어날 두 번째 아기도 사랑할 거다.   

강아지 ‘샐리’의 독백이 예사롭지 않다. 주인부부는 애초 샐리에게 ‘우리 예쁜 아기’라며 샐리가 뭘 해도 늘 사랑스럽다고 했는데, 웬걸... 아기 ‘해리’가 온 후로는 ‘우리 예쁜 아기’는 순식간에 바뀌어, 샐리는 유령 취급을 받을 뿐 아니라 외려 구박덩어리가 된다. 샐리 역시 주인 부부를 '엄마'나 '아빠' 혹은 '부모'로 칭하지 않는다. 줄곧 '인간들'이라고 칭한다. 부부가 샐리를 '우리 예쁜 아기'라고 칭할 때도 말이다. 강아지 샐리의 '거리두기'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샐리는 자신과 인간들 사이의 차이를 발견하면서도 함께 사는 존재로서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샐리는 애초 사랑을 받는 존재로 머물러 있었다면, 점점 가족이 되려고 애쓰며 새로운 가족 구성원인 아기를 사랑하려고 애쓰는 능동성을 적극적으로 보여준다. 샐리가 아기 '해리'와 눈맞춤할 때는 '사랑'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그림책에서 강아지 샐리는 각 페이지마다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대부분의 그림책 이미지들이 강아지 샐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그들의 눈높이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샐리의 황금빛이 도는 부드러운 털이 가득해 절로 만지고 싶을 정도로 탐스러운 그림은그림책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림책을 두 손안에 잡고 있을 땐 마치 강아지 샐리를 안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이다.  

    

강아지 그리고 고양이 등 어느새 우리는 그들과 함께 사는데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어떻게? 반려견, 반려묘들도 자신들과 사람들이 같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생김새도 언어도 말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언어를 들으려고 애쓰고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이 그림책에서는 강아지 샐리가 사람들이 느끼는 갖가지 감정들, 욕구들을 그때그때 느끼고 있는 것을 아주 섬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눈 높이에서 그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그림책이다. 그래서 더 사랑스럽고 애착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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