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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네스 Feb 15. 2022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를 다듬고 조각할까?

- 무스의 끝없는 질문

“무스의 끝없는 질문(Les mille et une questions de Mouss)"은 프랑스 그림책으로 디안느 바르바라(Diane Barbara)가 글을 쓰고 알리스 샤르뱅(Alice Charbin)이 그림을 그려 2002년 소르비에 출판사에서 출판했다. 이 그림책은 “무스는 이미 항해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는 10여 권의 시리즈 중의 한 권이다. ‘무스(mousse)’, 라는 이름은 프랑스어로 항해사이다. 배를 타고 먼먼 바다를 여행하며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만날 수 있는 항해사, 무스는 마치 어린이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5살 무스가 만나는 일상은 어른들과 같다. 어린이라고 해서 어른들이 겪는 일상이 비켜 가지 않는다. 할머니의 죽음, 느닷없이 다가온 사랑, 동생의 출생, 크리스마스 축제, 학교 동급생의 괴롭힘 등, 모든 게 새롭고 낯설고 불편하다. 그러나 무스는 그에게 다가온 삶의 문제들에 대해 늘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다. 그림책 시리즈에서 무스가 만나는 일상을 통해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특히 자기 자신을 조각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평등한 관계에서 어린이를 발견한다     

먼저, 어린이책에서 작가는 일반적으로 어린이의 대변자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작가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속한 문화와 환경의 특별한 가치를 어린이책 속에 자기만의 고유한 언어로 녹여낸다. 작가의 개인적인 생각, 견해를 혹 어린이를 대표하는 마음으로서 말이다. 그러나 어린이의 대변자로서가 아니라 어린이가 작가의 대변자가 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 자신의 견해를 아이에게 주입 강요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린이는 어린이만의 고유한 생각과 견해가 있다.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단지 어린이와 주변 사람들의 관계를 어떻게 표현하는가에 따라 어린이 고유의 견해가 드러날 수도 아닐 수 있다. 그것은 어린이책 작가의 예술적인 과제이고 도전이랄 수 있다.      

무스 시리즈 그림책의 작가 디안느 바르바르는 섣불리 어린이의 대변자 역할을 하지 않는다. 그는 어린이와 어린이를 둘러싼 어른 등의 부모와의 평등한 관계를 그리는데 서슴지 않는다. 어린이 고유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 세상에 당연한 것없다     

무스는 궁금한 게 많다. 무스에게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가장 안전한 관계일 것 같은 엄마한테서 궁금한 것들이 한 올 한 올 피어난다. 무스의 질문은 그렇게 시작된다. 무스의 엄마는 무스의 질문에 어떻게 반응할까? 

어른들에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울 것 같은 일상이 어린이에게 호기심과 궁금함의 연속이다. 또한 관계에서 생긴 궁금함은 그때 그때 해소되지 않으면 그것이 후에 트라우마나 컴플렉스로 작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때문에 아이에게 단순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곧 자신을 조각하는 통과의례이기도 하다. 관계에서 비롯한 궁금증이 어린이와 어른 모두의 삶에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무스의 “끝없는 질문”을 통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무스는 토요일을 기다린다. 그날은 엄마와 단둘이 시장에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엄마에겐 일주일치 장을 봐야 하는 시간이지만, 무스에겐 장을 보면서 시장에서 넉넉한 상인들이 건네주는 치즈를 맛볼 수 있고, 동시에 일주일 동안 엄마와 늘 같이 있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아쉬운 시간을 만회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다. 엄마와 무스의 목표가 살짝 다르지만, 그러나 둘만의 오붓한 시간임엔 틀림이 없다.      

 

토요일 장을 보는 시간은 무스와 엄마 모두에게 오붓한 시간이다. 

질문은 자신을 조각하는 도구이다      

« 엄마는 왜 일을 해? » « 우리는 왜 학교에 가? » « 엄마가 우리를 집에서 가르칠 수 있지 않아? » 등…. 무스의 질문이다. 일상에서 이미 익숙해진 사람들에겐 무척 당연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아이에겐 그렇지 않다. 모든 것이 낯설다. 무스의 엄마는 어떻게 대답할까? 

    

무스의 엄마는 자기의 직업인 간호사로서의 일을 좋아하고, 돈을 벌어야 한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글을 읽거나 쓰는 것 그리고 다른 여러 가지 것들을 배우기 위해서 학교에 간다고 대답한다. 또한 가르치는 일은 자신의 일이 아니며, 학교 선생님들처럼 아이들을 가르칠 정도로 자신은 인내심이 많지 않다고 답한다. 그래서 자신은 무스를 가르칠 수 없다고 말이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어 보인다. 물론 정답을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정답은 아예 존재하지 않으니 말이다. 또 아이가 엄마랑 늘 함께 있길 원한다고 아이의 입맛에 맞는 대답을 할 수는 없다. 아이와 함께 있지 못해 미안함을 섞어서 애 둘러서 말할 이유도 없다. 아이가 엄마의 거짓말을 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무스는 자신에게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엄마에게 질문을 시작했고, 엄마의 대답으로 문제가 해결이 안 될 수도 있다. 어린이는 어른이 자신과 같은 것을 알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 질문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그들의 생각을 표현하는지 이해하기 위함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타인은 다르게 표현할 수 있다. 사람마다 표현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함인 것이다. 때문에, 엄마의 대답을 통해 엄마의 생각과 표현방식을 안 것만으로도 무스는 조금씩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이해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질문은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다

반면, 무스의 엄마는 무스의 계속되는 질문으로 인해 장을 보는 데 점점 집중할 수가 없다. 무스의 엄마는 무스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주일치 장을 보는 것을 소홀히 할 수 없다. 어린이가 질문을 연거푸 할 땐, 살짝 신경질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어린이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임을 이해한다면, 어린이의 질문에 대충 대답할 수 없다. 엄마는 무스에게 제안한다. 한 가지 질문만 더 하고 장을 모두 볼 때까지 질문을 멈춰달라고 말이다. 무스는 흔쾌히 받아들인다. 어른도 아이도 느끼는 감정은 같다. 관계에서 피곤할 수도, 짜증 날 수도 있다. 무스의 엄마의 지혜가 돋보이는 장면이다. 그것은 어린이에 대한 전통적인 편견, 즉 어린이의 세계는 근심도 걱정도 아무런 문제도 없다, 거나 어린이는 이해를 잘못하니 에둘러서 쉬운 말로 해야 한다거나 하는 등 에서 벗어났다. 어른과 어린이의 관계를 평등하게 표현한 작가의 관점이다.      

부모와 아이들, 가족관계에서 갈등이 가장 많이 생기는 게 사실이다. 작가, 디안느 바르바르는 질문하고, 정성껏 진솔하게 대답하는 것이 그것을 해소하는 방법의 하나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선 어린이에게는 이 세상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러나 때론 질문 자체가 관계의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 관계가 평등하지 않을 때가 그러하다. 이 그림책에 깊게 빠져들 수 있는 이유는 위계적이거나 권위적이지 않은 관계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스는 자신이 엄마뱃속에 있기 전에 어디에 있었는지 궁금하다

     

질문은 모두를 성장하게 한다     

무스는 약속한 마지막 질문으로, 자신은 엄마 뱃속에 있기 전에 어디에 있었는지를 물어본다. 무스의 엄마는 먼저 대답한다. ‘아주 어려운 질문’이라고 말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질문하고 대답하는 것이 일상이다. 간혹, 질문을 받았을 때, ‘아주 좋은 질문’이라고 말한다. 물론, 질문에는 ‘좋은’ 혹은 ‘나쁜’을 구별하지 않는다. 단지 그 질문을 받기 전까지 한 번도 해당 질문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의미다. 그래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질문이어서 ‘참 좋은 질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무스 엄마도 그렇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질문이어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라고 말한다. 한동안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말문을 연다. 무스가 엄마의 뱃속에 있기 전에, 무스는 이 세상에 없었다고 말이다. 단지 무스의 엄마와  아빠에게 꿈으로만 존재했었고, 그들이 이후 아이를 원했을 때 '무스의 지금의 몸과 무스가 가지고 있는 모든 질문들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말이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인가. 무스가 가지고 있는 모든 질문들은 무스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질문은 하나로 그치지 않는다. 질문은 또 다른 질문과 그다음 질문을 만든다. 바로 사람이 자기 자신을 조각하는 과정이다.     

질문을 하는 사람도, 질문을 받는 사람도 질문으로 인해 생각의 문이 열린다. 바로 성장의 기회이다. 살아온 대로, 주어진 대로 사는 것에서 벗어날 때 성장할 수 있다.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사는 우리이다. 몸만큼이나 생각도 변한다. 모든 것을 다 염두에 두고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또 기존의 생각들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다. 특히 질문을 받았을 때, 그때부터 생각의 문이 열리고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게 되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어른도 아이도 모두 그러하다.      


   

무스는 일상에서 만나는 새롭고 낯선 일들에 대해 하나하나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며 자신을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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