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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네스 May 01. 2022

악어의 눈물

무엇이 가식이고 위선인가? 

악어의 눈물 (les larmes de crocodile) 

“악어의 눈물”은 프랑스의 앙드레 프랑스와 작가의 1956년 델피르 출판사에서 발행한 40쪽 분량의 이탈리아식 판형의 그림책이다. 

이탈리아식 판형은 가로로 긴 형태의 그림책을 말하는데, 악어의 긴 특성을 살리기에 적합한 그림책이라고 할 수 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시간 여행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책이다. 2007년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초상화에 잘 어울리는 가장 보편적인 판형이랄 수 있는 프랑스 식 판형으로  재 출간한 그림책과 현저히 비교가 된다. 다시 말해 그림책은 텍스트, 이미지, 그리고 책의 형태 등 그 모든 게 어우러진 종합적인 예술 작품이라는 것을 이탈리아 방식의 판형인 그림책 '악어의 눈물'에서 재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처음 출간한 그림 책판 본은 그것을 담는 상자가 있어 작가의 의도를 한 층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다.  

     

이탈리아식 판형으로 그림책이 케이스에 담겨있다. 
좌우로 길게 펼친 "악어의 눈물"이다.  악어의 몸통을 앞표지에서 악어의 얼굴을 표지 뒷면에서 만날 수 있다.  
프랑스식의 판형


   

‘악어의 눈물’은 관용어구로 쓰이는 말로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14세기 초 존 맨더빌의 여행기에서 처음으로 소개되었다고 한다. 악어가 먹이를 씹으며 먹히는 동물의 죽음을 애도해 눈물을 흘린다는 이야기에서 전래된 것으로, 패배한 정적 앞에서 흘리는 위선적 눈물을 가리킬 때 쓰인다, 고 한다. 거짓 눈물, 위선적인 눈물을 가리킬 때 흔히 ‘악어의 눈물’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프랑스 어린이 그림책 작가 앙드레 프랑스와는 그 관용어구를 그림책을 통해 아이들에게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림책으로 들어가 보면, 

아이는 어른에게 관용어구 ‘악어의 눈물’이 뭔지 묻는다. 울고 있는 아이에게 어른들은 말한다. ‘네가 흘리는 눈물이 악어의 눈물’이라고 말이다. 아이는 이해를 하지 못한다. 자기가 흘리는 눈물이 왜 악어의 눈물인지를... 그래서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한다.     

악어를 잡는 것은 아주 쉽다고 말문을 튼다. 나무로 된 긴 상자만 있으면 된다고 말이다. 그리고 배를 타고 이집트로 향한다. 거기에서 단봉낙타와 터키인들이 쓰는 모자를 구입한 후, 피라미드로 올라, 나일강에 유유히 잠겨있는 악어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이국적인 예쁜 새들도. 악어들을 안 보는 척하며 조용히 앉아있으면, 악어들은 저절로 긴 상자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때 악어가 들어있는 상자를 단봉낙타로 싣고 가는데, 상자에 있는 악어를 떠나지 않는 작은 새가 있다. 사람들에겐 '덤'이 아닐 수 없다. 새장에 가두어 같이 데려간다. 집에 도착해 상자에서 나온 악어는 만족해하며 점심도 같이 먹고, 악어새에 의해 양치도 하게 되고 미지근한 물이 담긴 욕조에 목욕도 한다. 가끔 호수로 나가 사람을 등에 태우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도, 학교에 가는 아이를 태우기도 한다. 그러나 만약에 악어의 꼬리를 밟기라도 하면, 악어는 엄청 화를 내고 사람을 무는데, 그런 악어를 사람들은 야단을 친다. 그에 뉘우치는 척하며 눈물을 흘리는데 바로 그 눈물이 '악어의 눈물'이라고.... 설명을 한다. 

      

그림책의 이야기와 그림을 따라가다 보면,  프랑스의 제국주의적인 면모를 그대로 볼 수 있어서 무척 불편해진다. 위 그림책이 발간된 즈음인 1950년대는 제2차 대전이 끝났다고는 하나 서양의 제국주의는 끊임없이 그들의 권력을 넓혀간다. 프랑스는 알제리와의 전쟁 중이었으며, 특히 1956년엔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 통치권을 둘러싸고 전쟁을 일으킨다. 때문에 어린이책에서 조차 그들의 제국주의적인 면모를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집트에서의 악어를 잡는 게 아주 쉬운 일이라고 말문을 트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림책 '악어의 눈물'은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관용어구 '악어의 눈물'을 친절하게 설명하는 듯하나, 이면에는 제국주의의 위선과 가식 그리고 폭력을 꼬집는데 주저함이 없다. 

그림책은 자연을 상징하는 듯한 초록색과 제국주의의 권력을 상징하는 듯한 붉은색으로 일관한다. 예를 들면, 아이는 초록색의 티셔츠를 입고 있으나, 바지는 주홍빛이다. 편안한 초록색 안락의자에 앉은 어른 남자는 섞임이 없는 주홍빛 그 자체이다. 그 옆에 뜨개질을 하고 어른 여자는 초록색과 주홍색이 반반 섞인 원피스를 입고 있다. 권력의 분포도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아이는 자연의 특성에 가까우나 권력의 맛을 배울 수 있는 학교교육의 영향을 조금씩 받고 있으며, 여자는 억압받고 있는 약자이나, 동시에 상대에 따라 권력자로 자리이동이 가능함을 확인할 수 있다. 남자 어른은 설명이 필요 없다.  

그림책은 초록색과 붉은 색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림책의 텍스트는 이미지를 따라가고 있으며, 또한 각자의 고유한 방법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뿐만 아니라 텍스트를 구성하고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글자의 형태와 크기, 배치 등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요소이기도하다. 다시 말해 작가는 그가 이야기하고 싶은 주요 골자를 티포그라피를 활용해 텍스트와 이미지가 채 말하고 있지 않는 것을 강조하는데 게을리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이집트로 악어 사냥을 떠난 ‘사람’은 그곳에서 중동인들의 상징인 모자와 단봉낙타를 ‘구입’하는데, 작가는, 이집트인 그곳 ‘La’에서 중동인들의 모자인 ‘Fez’와 악어를 운반하기 위한 낙타 ‘Dromadaire’에 상징성을 부여하고 있다. 각 단어의 첫 글자에 대문자를 사용하고 있다.  LFD는 작가가 사용한 '말놀이'(jeu de mot) 기법이다. 그 제국주의의 정치적인 측면을 꼬집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작가는 사람이나 동물 즉, 존재가 느끼는 감정을 실제 행동의 상황 사이에 끼워 넣어 표현하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본 그림책의 텍스트를 글자 그대로 번역하자면, 아래와 같다.


예 1) 단봉낙타가 악어를 싣고 갈 때, 악어의 어머니는 

                              매우 슬퍼합니다 

             그리고 그 작은 새는 악어를 떠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첫 번째 예로, ‘사람’이 힘 안 들이고 악어를 나무로 된 상자에 넣은 후, 단봉낙타로 옮길 때, 악어가 담긴 상자를 힘없이 보내며 우는 악어가 있다. 바로 악어의 어머니이다. 손수건을 들고 눈물을 떨구고 있다. 상자 끝엔 악어새가 조용히 앉아있다. 작가는 이 장면의 텍스트에서, 두 실제 상황인 '단봉 나타가 악어를 싣고 갈 때'와 '작은 새는 악어를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사이에 '악어의 어머니는 매우 슬퍼했습니다'라고 어머니의 감정을 둘 사이에 끼워 수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람이나 동물이 느끼는 감정은 사실상 권력 앞에 자유롭지 못하다. 강한 의지로 드러나는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저절로 일어나는 게 감정이다. 따라서 악어 어머니의 감정은 수직적인 관점에서 아래와 위의 두 줄 사이에 갇혀있어 지극히 수동적일 수 있다. 그러나 어머니의 감정이 두 번째 줄인 한 줄에 홀로 흐르고 있다. 다른 관점 즉, 수평적인 측면에서 볼 수 있는데, 어떤 억압에서라도 자유로워지고 싶은 감정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사람과 동물, 살아있는 존재가 느끼는 감정은 어떤 억압에서도 지배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더욱이 악어 어머니의 수동적인 감정 다음에  ‘작은 새는 악어를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라며, 단어 '작은 새'에  ‘PETIT OISEAU’로 대문자를 사용함으로써 새의 크기는 작지만 실려가는 악어를 보내고 싶지 않고, 그를 떠나고 싶지 않다는, 새의 의지가 아주 강렬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기법은 텍스트, 이미지와 함께 그림책을 구성하는 중요한 기술 중의 하나인 티포그라피의 묘미라고 할 수 있어 그림책을 보는 즐거움을 한 층 더 높여주고 있다. 


예 2) 만약에 악어의 꼬리를 밟는다면, 

                        악어는 무시무시하게 화를 내고 

                  물어버립니다      


마찬가지로, 두 번째 예에서, '만약에 악어의 꼬리를 밟는다면'과 '물어버립니다' 사이에 '악어는 무시무시하게 화를 내고'라는 악어의 감정이 두 줄 사이에 끼어있다. 수직적으로 보면 약자의 감정은 '위'라는 권력에 갇혀 소심하게 드러내어질 수밖에 없어도 다른 한편, 감정만큼은 누구의 지배도 받고 싶어 하지 않는 고유한 특성이라는 것을 숨김없이 보여주고 있다. 때문에 이어지는 행동이 강렬하고 단호할 수밖에 없다. 


끝으로 그림책의 표지는 볼 때마다 살짝 헷갈린다. 일반적으로 악어의 얼굴이 드러나는 부분을 표지 앞면이고 몸통 부분이 뒤표지라고 여겨지나, 그림책 '악어의 눈물'은 그런 선입견을 깨고 있다. 악어의 몸통이 앞면이고 그림책을 닫았을 때, 그의 얼굴을 만 날 수 있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관용어구에 따라 '악어'의 눈물에 대한 오래된 편견이 깨질 뿐 아니라, 인간의 감정, 존재의 감정이 매번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그가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무엇이 가식이고 위선인가                    

존재가 느끼는 감정을 위선으로 보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이가 운다. 그것을 ‘악어의 눈물’ 즉 거짓 눈물이라고 치부하는 어른들의 시선이 있다. 악어가 자신의 꼬리를 밟은 사람을 물어 사람에게서 호되게 야단맞는다. 그때 흘리는 눈물을 거짓으로 보는 시선이 있다. 눈물에 참과 거짓이 있다기보다는 눈물을 보는 시선에 양자가 있는 게 아닐까 의심해본다. 


차마 악어를 떠날 수 없던 새는 '사람'에겐 악어 사냥의 '덤'이 되어 새장에 갇혔다. 


작은 새가 다른 칫솔들과 함께 양치 컵에 담겨 있다 


또한 악어를 차마 떠날 수 없었던 악어새가 사람들에겐 악어 사냥에 ‘덤’으로,  집에 도착한 악어의 양치를 도맡아 하는 새가 다른 칫솔들과 같이 양치 컵에 담긴다. 작가는 사람들에게 한낱 도구로 전락한 새의 운명을 익살스럽게 표현하고 있지만 동시에 이미 일상화되고 있는 인간의 그러한 삶에 불편함을 절로 느끼게 된다. 

작가는 일상에서 흔히 쓰고 있는 관용어구를 그림책을 통해 아이들에게 그 의미를 설명하고 있지만, 우리가 자칫 놓치고 있는, '감정'의 표현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인간의 상실된 시선을 표현하는 것을 놓치지 않고 있다.  또한 그림책 “악어의 눈물”은 제국주의의 식민화 정책을 비판하는가 하면, 그에 협조할지라도 언제든 악어가 ‘그들’을 물 수 있듯이 그렇게 만만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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