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멈추게 하는가? : 불쾌했던 입국 순간

코펜하겐에서 베를린으로 이동하며

by 헨리 월터
20180127_122248.jpg 2018년 1월 27일 베를린에 도착하였을 때의 모습. 그때 나는 쇠네펠트 공항을 통해 베를린으로 들어왔다.

자유 여행을 명목으로 돌아본 독일을 떠난 지 7년하고도 4개월 만에 나는 다시 독일 땅을 밟았다. 차이점이 있었다면 독일을 다시 찾기 전에 체류하였던 곳이 러시아가 아닌 덴마크였다는 점이고, 입국한 곳도 쇠네펠트 공항이 아닌 빌리브란트 국제공항으로 바뀌었다는 정도다.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는 고향에 돌아온 것과 같았다. 짧은 말이나 글만으로 표현하기는 어려운 익숙하면서도 어색한 느낌 그 자체였다. 아마 장소가 바뀌었기에 더더욱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겠다.


모처럼 독일 땅을 다시 밟았을 때 뭔가 익숙하면서도 여전히 이질적인 느낌의 공기가 나를 반겼다. 그 분위기 속에서 나는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티켓을 구매하였다. 이번에는 베를린에 머무는 동안 전에는 가지 못했던 상수시 궁전을 다녀올 생각에 포츠담에서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3일권 티켓을 구매하였다. 그렇지만 쎄한 느낌의 불쾌한 순간이 생각 외로 빠르게 찾아올 것이라고는 이때만 하더라도 전혀 생각하지 못하였다.


티켓 구매가 끝나자 나는 공항 안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었고, 그 즉시 열차를 타고 숙소가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헤이셔마크트 역으로부터 걸어서 약 20분 떨어진 곳) 그리고 열차 안에서 작지만 큰 사달이 났다. 열차를 타고 가던 중 보안관 명목으로 조끼만 걸친 사복 차림의 까무잡잡한 사람 여럿이 들어와서는 표를 검사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내 표를 보더니 딴지를 걸었다. 그리고는 나와 다른 관광객 한 명을 붙잡아서 역 밖으로 끌고 나왔다. 이유인즉 나의 차표에 문제가 있어서 자기들이 압수하겠단다. 그리고 벌금 60유로, 즉 한화로 약 10만원을 자신들에게 주면 새로 표를 끊어주겠단다. 물론 거절하면 경찰을 부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이게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인지 싶었다. 정당하게 표를 구매한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고 그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며칠 전 우연히 발견하였던 인터넷 여행 후기 게시물 중 하나를 떠올렸다. 간혹 열차 보안관을 빙자하며 토종 백인을 제외한 관광객이나 다른 유색인종의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고 돈을 뜯어내는 아랍 계열 사람들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심지어 그들에 대한 인식은 독일 현지의 경찰들조차 귀찮게 여겨서 자신들과 동급으로 취급조차 않을 정도로 부정적이란다. 동시에 결정적으로 7년 전 검표관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복이 아닌 말끔한 제복 차림이었던 그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고, 용기를 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처음에 나는 왜 멋대로 남의 것을 뺏어가냐고 돌려달라고 살짝 날을 세웠다. 그렇지만 그들은 '네가 불법을 저질렀으니까 안 된다!'고 딱 잡아떼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 배째라는 식으로 강경하게 그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왜 멋대로 나의 표를 뺏어가냐고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느냐고 발악한 것이었다. 내가 그렇게 하자 그들 중 하나는 그저 '너 이거 범죄야. 소리 좀 그만질러' 식으로 앵무새처럼 말할 뿐이었다. 내가 그렇게 나온 것과 반대로 나와 함께 끌려나왔던 다른 미국인 관광객은 표를 압수당한 것은 물론이고 60유로를 그들의 손에 쥐어주었다. 진짜 말 그대로 눈 뜬 상태에서 그 사람은 제 귀와 코를 내어준 것이다. 당연히 그들은 선심을 쓰듯 새 표를 끊어서 그 사람에게 쥐어주었고, 나에게는 어떤 해코지도 하지 않은 채 돌려보냈다. 어쩌면 그들은 최소한의 이익을 챙겼으니 미친 개 하나를 건드려 보았자 좋을 것이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20250611_185032.jpg 입국 후 구매한 올해 첫 베를린 패스. 내가 끊은 패스는 포츠담까지 가는 데 필요한 교통비가 포함된 것이었고, 베를린에 있는 박물관과 문화시설에서는 할인만 적용된다.

그렇게 한 편의 드라마와 같았던 순간은 지나갔고 나는 다시 숙소로 가는 전철에 몸을 실었다. 결론적으로는 보안관을 빙자한 불량배들에게 한 푼도 빼앗기지 않았고, 3일 동안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교통권까지 모두 지켜냈다. 하마터면 그 사람들에게 눈 뜨고 귀와 코를 내어줬을 뻔한 순간을 생각해 보면 지금도 등골이 서늘하다. 그리고 무슨 용기에서 그렇게 하였는지는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스스로에게 대견함을 느끼면서 미소를 짓게 된다.


#독일 #베를린 #교통권 #불량배 #사기 #호구 #불쾌감 #발악

keyword
이전 06화무엇이 멈추게 하는가? : 기타(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