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그리스 신화 음미하기
베를린에 도착하고 다음 날 아침, 나는 내가 오래도록 기다렸던 상수시 궁전을 볼 생각에 포츠담으로 향하였다. 사이렌과 트램이 오가는 시끌벅쩍한 소음으로 잠을 많이 자지는 못하였지만, 그것이 나의 발목을 잡은 것은 아니었다. 10시가 조금 못 되었을 때 열차는 포츠담 중앙역에 도착하였고, 나는 시내를 걷다가 트램을 타고 상수시로 이동하였다.
내가 상수시 궁전 영역에 도착하였을 때 시간은 오전 10시 반 무렵이었다. 최고 기온이 아니었음에도 여름날 내리쬐는 햇살은 꽤 뜨거웠다. 햇살을 피해서 그늘진 방향을 지름길로 가려고 하였지만 막혀 있었다. 그래서 주변을 이리저리 돌아다닌 끝에 상수시 궁전 내부로 진입하였다. 이때만 하더라도 나는 상수시 궁전 본 건물 입구에 도착하였다고 생각하였지만, 사실 그곳은 회화 작품이 전시된 공간이었다. 막상 눈앞에 드러난 모습은 마치 긴 회랑과도 같았다. 그리고 궁궐 건물이 단층이었음에도 전반적인 분위기는 왕을 위한 공간 중 하나였음을 보여주듯 우아한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이는 상수시 궁전 본 건물에서도 마찬가지였음)
미술 작품 감상을 즐기지 않는 나를 잡았던 요소는 회화 작품으로 표현된 그리스신화 속 단면들이었다. 그 첫 번째 작품은 몰락한 트로이의 왕자였던 아이네이아스와 카르타고의 여왕 디도의 모습이었다. 아이네이아스와 관련된 이야기는 뮌헨의 알테 피나코테크를 이야기할 때 후술할 예정이고, 카르타고의 여왕인 디도를 위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디도는 권력 다툼에서 밀려서 카르타고를 세우게 되었는데, 여기서 전해지는 이야기 하나가 참 흥미롭다. 지금의 튀니지 북부 지역에 도착한 디도는 자신에게 땅을 줄 것을 요구하는데, 지역의 유력자는 쇠가죽만한 땅 하나밖에 줄 수 없다고 하며 그녀를 쫓아내려 하였다. 그렇지만 디도는 쇠가죽을 가늘고 얇게 찢은 후 그것을 하나로 길게 이어붙였다. 그렇게 디도는 자신의 땅을 얻을 수 있었고, 그곳이 곧 카르타고라는 곳이 되었다. 그 이후 디도 여왕은 정처없이 표류하던 아이네이아스 일행을 맞아들였고, 그와 사랑에 빠지지만 그 사랑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한다. 슬픔을 견디지 못한 여왕은 수평선 너머로 떠나가는 아이네이아스와 일행의 배를 보며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다음으로 눈에 밟혔던 것은 그림은 아폴론과 다프네를 표현한 것이었다. 에로스는 아폴론과 다프네에게 활을 쏘았는데, 아폴론에게는 사랑의 화살을 쏜 반면 다프네에게는 누구도 좋아하지 않게 만드는 납화살을 쏘았다. 그렇게 둘의 어긋난 만남이 이루어지고, 다프네에 대한 애정을 담은 아폴론에 대해 다프네는 겁을 먹고 도망다니던 끝에 자신의 아버지였던 강의 신에게 자신을 숨기거나 다른 모습으로 바꿔달라고 하였다. 그렇게 그녀는 아폴론이 보는 앞에서 월계나무로 변하였다는 내용이다.
그 이외에도 내 눈에 밟혔던 작품들은 몇 가지가 더 있었다. 위의 그림과 같이 그리스 판으로 표현된 로미오와 줄리엣을 표현한 퓨라모스와 티스베 간의 연정(오디 설화로 연결됨), 헤라클레스의 아내를 납치한 넷소스의 모습, 그리고 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 중 하나였던 아마존 여왕의 허리띠를 가져오는 것이나 스튁스에 어린 아킬레우스를 씻겨서 불사의 존재로 만들고 싶었던 테티스, 테세우스에게서 빼앗은 여인을 자신의 것을 삼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 등 신화 속 단면을 표현한 회화는 더 있었다. 그렇지만 사진으로 제대로 담지 못한 것들이 많았고, 설령 담았더라도 마음에 차지 않게 나오거나 큰 흥미를 끌지 못하였다. 단지 작품 속 인물이 누구인지 정도만 파악하는 선에서 그쳤던 것이다. 그렇게 긴 회랑을 한 바퀴 돌아본 후 나는 상수시 궁전 본관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내딛었다.
(사족 : 헤라클레스와 관련된 이야기는 뮌헨의 바이에른 국립박물관에서 본 조각들과 연계하는 식으로 한 번 더 정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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