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성 문제, 그리고 침탈과 복원의 2중주
선정릉은 문화유산을 경시하고 난개발을 일삼았을 때 어떤 비극이 다가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곳이 있다. 바로 성북구와 동대문구의 경계에 위치한 의릉이다. 의릉은 조선의 20대 임금인 경종과 그의 계비인 선의왕후가 잠든 곳으로, 이러한 능역 구조와 관련된 사실 외에도 흥미로운 지점을 품고 있다. 바로 오랜 기간 영조를 괴롭혔던 독살론과 관련된 인물이자, 능역이 국가에 의해 침탈당하였던 사실이 그것이다.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둔 사람들이라면 경종이 숙종과 희빈 장씨 사이에서 태어났음을 알 것이다. 그렇지만 경종의 왕세자 시절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그는 어린 나이에 생모였던 희빈 장씨가 강등된 것도 모자라 (자연히 경종은 인현왕후의 양아들로 들어가면서 차기 국왕 승계를 인정받았음)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하는 순간을 감수해야 하였다. 숙종의 뒤를 이어 즉위한 이후에는 자신을 이을 세자를 보지 못한 상태였다. 이에 따라 그는 대신들의 건의로 이복동생이었던 연잉군을 세제로 맞이하였다. 그리고 주요 신하들이 자신을 암살하려 한다는 목호룡의 고변과 이를 계기로 다수의 사람들이 희생되는(신임사화) 정치 풍파가 이어지는 속에서도 후계자는 자신의 동생으로 굳혀 두었다.
웃지 못할 해프닝은 경종의 재위 말년에 시작되었다. 한 번쯤은 사극 등을 통해 접하였다면 들어보았을 법한 그 내용이 맞다. 다시 말해 약을 달고 지내왔던 경종이 어느 날 수라상에 올라온 게장과 감을 맛있게 먹었고, 건강이 나빠져 얼마 못 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그렇게 이복동생이었던 연잉군은 차기 국왕으로 즉위하였고, 그가 바로 탕평책과 균역법, 그리고 비정한 아버지의 대명사로 알려진 영조다.
그렇지만 영조는 왕이 되고 나서도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하였다. 경종의 죽음 이면에는 권력을 향한 이복동생의 야욕이 있었고, 그것이 시해로 이어졌다는 논리가 그것이다. 영조 치세에 한쪽 붕당을 편애하지 않는 탕평 정치가 시행되고 있었음을 생각하고 불안정했던 왕위 계승 문제에 초점을 두었을 때 이는 영조에게 적지 않은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사실 영조는 경종과 마찬가지로 적장자가 아닌 하급 궁녀 출신의 후궁 소생이었다.) 이 스트레스가 어떤 식으로 드러났는지 많은 사람들은 알 것이다. 수시로 경종을 황형으로 칭하면서 우애를 강조하는가 하면, 아들에 대한 집착이 결국 비정한 아버지의 이미지로 변하면서 손자인 정조에게까지 그 불똥이 튄 것이 바로 그것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은 정통성 문제가 낳은 하나의 단면이 아니었을까? 능역을 보면서 지금까지 한 번은 다녔던 왕릉들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다시 끄집어내다 보니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진 순간이었다.
위의 역사적 사건과는 별도로 하나를 더 소환해야 하는데, 후대 권력자에 의해 능역이 침범을 당했던 시간이 그것이다. 선정릉이 일제강점기와 경제개발 과정에서 표출된 난개발로 주변 경관이 막히는 수난을 겪었다면 의릉은 1970년대에 중앙정보부(약칭 중정)의 주도로 능역이 침범을 당하였다. 그리고 후신인 국가안전기획부(약칭 안기부)에서도 중앙정보부가 주도하여 재구성하였던 공간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이곳은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보안 기관이라는 이유로 일반인들의 출입이 제한되었다. 자연히 능역은 그들만을 위한 '아주 특별한' 놀이터가 되었다. 원래 능역 중 일부로 자리하고 있었던 물길 자리에 인공 연못이 만들어졌고, 제례를 준비하는 공간인 재실은 홍유릉 근처의 영원으로 옮겨졌다. 또한 숲길이었던 능역의 서쪽에는 축구장이 들어서기도 하는 등 능역은 철저히 후손들의 손에 유린되었다.
그러한 파괴가 이어지는 속에서도 중앙정보부의 강당에서 중앙정보부장이 통일 관련 합의 사항을 발표하였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한 번은 들어보았을 통일 3원칙인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 그것이다. 그렇게 동족상잔의 아픔을 딛고 통일이 실현될 수 있겠다는 염원은 역풍을 맞았다. 엄혹한 유신체제와 주체사상이 사람들을 짓눌렀던 것이 그것이다. 이를 돌이켜 본다면 역사는 정말 알다가도 모를 순간들의 연속이기도 하다.
정보기관의 놀이터로 전락한 세월을 상징하는 콘크리트 건물과 축구장은 중앙정보부의 강당 건물을 제외하면 현재 모습을 감추었다. 물길 역시 인공 연못이 아닌 전통적인 형태로 돌아왔는데, 그와 같은 희소식 이면에는 정보기관의 위치 이전이 있었다. 그렇지만 역사는 지금도 말없이 경고하고 있다. 문화유산으로 호명되고 있는 영역이 한 번 심각하게 훼손되었을 때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음을. 특히 능역 주변에 들어선 낮은 콘크리트 건물과 지금은 숲길로 되었더라도 낮게 말뚝이 쳐진 공간들에서 수난을 음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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