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에게 강을 제외한 서울의 대표적인 하천을 묻는다면 청계천을 꼽을 것이다. 그리고 청계천의 일반적인 이미지는 맑은 물이 흐르고 고기가 살며 이따금씩 새들이 와서 쉬었다 가는 곳 정도로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그렇지만 불과 복개 이전만 하더라도 청게천은 절대 오늘날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마른 하천, 즉 건천에 가까웠고, 일제강점기 및 1950년대만 하더라도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더구나 비만 내렸다 하면 토사가 범람하여 하천의 흐름을 방해하고 주변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 영조 재위기 동안 청계천의 정비 사업을 두고 홍화문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는 등 관심을 기울였을 정도라면 청계천 주변의 환경이 그리 좋지 않았음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와 같았던 공간은 1950년대 후반이 되면서 달라졌다. 도시 경관 및 위생 문제 등을 이유로 청계천이 복개된 것이었다. (일제강점기에도 복개를 생각하였지만 최종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음) 복개가 덮인 후 청계천 위로 자동차들이 지나다녔고, 고가도로가 형성되기까지 하였다. 당연하게도 국가 주도의 고도 성장 과정에 있었던 평화시장 앞의 청계천도 위에 덮개가 씌워져 차가 다녔다. 그러다가 여러 문제를 이유로 이곳의 복개는 뜯어졌고, 청계천은 시민공원으로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광통교가 있었던 자리에는 신덕왕후가 잠든 정릉을 장식하였던 석물이 태종 때 광통교의 재료로 사용되었고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다는 점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도 한다.
오늘날 이해하기 쉽지 않겠지만 사실 한양 도성 시절의 서울에는 많은 개천이 있었다. 그 개천들은 모두 청계천으로 모여들었고, 다시 청계천의 물은 한강으로 흘러가는 형태였다. 경복궁의 금천을 예로 들자면, 지금은 마른 이곳에도 조선 시대에만 하더라도 인왕산에서 흘러 내려온 물이 거쳐갔고, 다시 청계천으로 빠져나갔다. 이렇게 청게천으로 모여든 물은 고금을 막론하고 한강의 지류와 만나게 되고 다시 한강의 일부가 되어 흐르고 있다. (오늘날 청계천은 중랑천의 일부로 합쳐진다.)
그렇지만 오늘날 옛 도성 구간을 걷다 보면 청계천으로 모여드는 수많은 개천들은 대부분 자취를 감추었다. 일제강점기와 고도 경제성장 시기를 거치면서 거의 복개되어 물길이 끊어진 탓이었다. 도성 내에 흐르던 물길들이 사라지는 문제는 단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바로 옛 도성의 수문도 그 기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본래 한양도성 내에는 배수의 역할을 담당하는 수문이 있었다.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법한 오간수문과 이간수문이 그 증거다. 그렇지만 일제강점기에 들어서 수문이 있었던 공간은 물길이 끊어짐에 따라 그 존재 의미가 약해졌다. 이곳은 다른 주변의 건물들의 부지와 함께 일제강점기에 운동장 부지로 재개발되었고 (오간수문은 아예 형체도 없이 사라진 채 모형으로만 남아 있음), 2008~2009년에 있었던 재개발 과정에서 발굴됨에 따라 지금은 역사공원의 형태로서 유지되고 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문화유산일까? 아니면 그 탈을 쓴 무덤일까?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를 찾을 여유도 없다고 하겠지만, 적어도 나로서는 천천히 주변을 걷는 동안 많은 생각이 돌았던 공간 중 일부였다.
오늘날의 청계천은 분명히 서울시를 대표하는 대표적인 하천이자, 국내외의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끄는 장소이다. 그리고 동시에 물이 항상 흐르고 천변에 풀이 자라나니 물고기나 새를 비롯한 다른 동물들이 한 번씩 눈에 뜨이는 점에서 누군가는 자연과의 조화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청계천과 그 주변의 모습들은 계속 바뀌어 왔고, 인식 또한 다양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와 급격한 경제성장 과정에서 많은 부분들이 사라졌다는 그림자 자체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오늘날 청계천은 무엇일까? 그리고 만약 후대에 물려준다면 어떤 모습으로서 청계천의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