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멈추게 하는가? : 안데르센

비가 내리는 오덴세에서 그를 만나다.

by 헨리 월터
20250609_092002.jpg 티볼리 공원을 바라보고 있는 안데르센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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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펜하겐에 있는 인어공주의 동상. 똑같은 대상임에도 막상 육안으로 볼 때의 느낌은 전혀 달랐다.

미운오리새끼, 인어공주, 성냥팔이소녀, 엄지공주. 모두 한 번쯤은 동화책으로 읽어보았을 안데르센의 작품들이다. 흔히 '동화의 아버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그의 흔적은 덴마크의 수도인 코펜하겐과 생가가 있는 오덴세에 남아서 말없이 관람객을 반기고 있다. 그리고 안데르센은 개인적으로 덴마크를 거쳐야 할 장소 중의 하나로 잡은 이유기도 하였다. 코펜하겐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안데르센의 흔적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덴마크에서 오래된 유원지인 티볼리공원 앞의 안데르센 동상이었고, 다른 하나는 카스텔레 요새 근처에 있는 인어공주 동상이었다. 특히 후자는 많은 사람들이 아는 것처럼 사진 속 모습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큰데, 막상 육안으로 보았을 때는 나 역시 실소를 멈출 수 없는 곳 중 하나였다.


1. 박물관 곳곳에 녹아든 동화의 단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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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박물관의 외관은 부싯돌(원제목은 Tinbox)이라는 동화를 모티프로 만들었고(좌), 오디오가이드로 내용 설명을 들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우)

그렇지만 위의 코펜하겐보다 더 강하게 끌리는 곳은 안데르센의 유년기가 녹아든 오덴세였다. 이와 같은 나의 마음에 이끌려 덴마크에 도착하고 나흘째가 된 지난 6월 10일, 나는 코펜하겐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오덴세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약 1시간 반이 지나고 나서 안데르센박물관이 빗속에서 관람객들을 조용히 맞고 있었다. 이 박물관의 주제는 역시 한스 크리스찬 안데르센의 일대기였고, 주요 내용은 3일차의 레지스탕스 박물관에서처럼 오디오가이드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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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관람하다 보면 작품의 제목 혹은 내용을 연상하게 만드는 삽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각각 벌거벗은 임금님과 눈의 여왕을 연상하게 하는 모습이다.

개인적으로 안데르센의 생애는 나의 흥미를 크게 자극하지는 못하였다. 대신 동화가 전시실에서 어떤 식으로 표현되었는지가 나의 이목을 자극하였다. 전시를 관람하는 중에 내가 느꼈던 이 박물관의 장점이자 차별성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전시실 벽면에 표현된 삽화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다는 점이었다. 두꺼비에게 납치되었다가 구조된 후 풀숲에 숨은 엄지공주의 모습이나, 벌거벗은 채 군중들 사이를 행차하는 허영심 많은 임금의 모습, 눈의 여왕에게 잡혀간 카이를 구하고자 순록의 도움을 받아 여왕의 성 근처에 도착한 겔더 등이 표현되었다. 그 외에도 마녀의 부탁으로 고목으로 올라가서 돈과 부싯돌을 챙기려는 군인의 모습이나, 얼굴이 가려진 채 성냥이 담긴 작은 바구니를 든 소녀의 모습 등도 잘 표현되어 있었다. 만약 안데르센의 주요 작품 속 내용을 알고 전시를 관람한다면 절대 그냥 지나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어린 시절에 애니메이션 혹은 구연동화 등을 통해 접한 동화 속 내용과는 어떻게 다른지도 비교할 수 있지 않을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동화 속 모습과 실제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은 작은 것 같으면서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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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객이 성냥 조형물을 당기면 화면에 소녀의 마지막 순간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인어공주를 상상하며 바위 모양의 쿠션에 잠시 앉거나 누워볼 수도 있다.

이 박물관만의 장점이자 차별성을 보여주는 다른 한 가지는 주요 동화 속 장면이나 소재를 중요한 전시 공간이자 아동을 위한 유희 공간으로 활용하였다는 점이다. 전시실 내에 있었던 동화작품으로는 엄지공주, 성냥팔이소녀, 벌거벗은 임금님, 부싯돌, 장난감병정 등이 있었다. 그 중 성냥팔이 소녀를 예로 들면 관람객이 성냥을 당겼을 때 스크린에는 추운 크리스마스 이브 밤에 어느 집의 문 앞에서 소녀가 성냥으로 몸을 녹이면서 본 것들이 영상으로 비치고 세상을 떠난 할머니를 만나는 것으로 끝났다. 혹은 인어공주를 예로 들자면 해변의 큰 바윗돌 위로 올라와서 쉬는 인어공주를 연상할 수 있는 체험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돌로 표현되어 있는 타원형 조형들은 모두 쿠션으로 되어 있었다. 이렇듯 특정한 동화를 테마로 한 전시 공간에서는 결말이나 전반적인 서사를 왜곡하지 않고 있었다. 단지 관람객 개인이 마치 동화 속 주인공과 같은 상황에 놓이게 하는 방법이 사용되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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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오리새끼 속 내용을 표현한 모습. 한 노파가 키우는 암탉과 고양이의 텃세에 시달리는 주인공의 모습과 백조가 되어 하늘을 나는 모습이 각각 벽면과 천장에 표현되었다
20250610_112815.jpg 백조를 반갑게 맞으며 두 팔을 벌린 안데르센의 모습을 표현한 그림.

물론 이 박물관의 전시에서 압도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 동화는 미운오리새끼였다. 미운오리새끼를 다룬 테마는 단지 안데르센의 일대기가 끝나갈 무렵에 맞추어 출구에 몰아주는 형태로만 국한되지 않았다. 안데르센의 생애 중 중반과 후반부터 삽화를 시작으로 하나씩 보이고 있었고, 다른 동화들을 테마로 한 공간 직전에 이르기까지 꽤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박물관에서 그와 같이 전시를 구성하였던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작품이라는 사실 외에도, 온갖 수난 끝에 모두의 시선을 받는 백조가 되는 서사가 70년에 이르는 안데르센의 일대기에 부합되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이와 같은 내 생각이 맞음을 증명하듯 안데르센과 백조가 조우하는 모습이 눈에 잘 밟혔다.


2. 작고 하찮을지라도 이야기는 깃들어 있다.

20250610_122042.jpg 오덴세에 있는 안데르센의 생가 외관.

안데르센 박물관에서 약 20분 정도를 걷다 보면 예쁘게 페인트칠이 되어 있는 작은 집 한 채가 나온다. 바로 안데르센이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던 공간이다. 실제로 그의 생가는 내부가 공개되어 있고, 일부는 카운터 및 기념품을 판매하는 가게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리고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영업하고 있는지라,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내부를 잠시나마 구경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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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의 유년기 환경을 생각할 수 있는 전시물. 그의 집안은 가난한 구두장인이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고, 캐비닛은 유년기 안데르센의 침대이기도 하였다.

개인적으로 안데르센이 유년기를 보냈던 생가를 둘러보면서 발견하였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안데르센의 집은 가난하였고, 구두 수선을 통해 생계를 이어갔다. 어린 안데르센은 구두 수선 후 남은 가죽으로 만들어진 장난감으로 놀았고, 침대가 아닌 캐비닛에서 자는 일상을 보냈다. (현재 남아 있는 건 후대에 복원한 형태라서 열리지는 않음) 안데르센의 아버지는 당시에 나폴레옹을 존경해서 전쟁에 참여한 적이 있었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어린 안데르센이 죽음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였을 때 눈의 여왕이 데려갔다는 식의 이야기가 있었고, 이것은 훗날 안데르센의 작품 중 하나인 눈의 여왕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계몽사의 위인전에서는 안데르센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무렵 창문에 짙게 성에가 낄 정도로 추운 날씨였는데, 창문을 본 그의 아버지가 '눈의 여왕이 날 데리러 왔구나.'라는 말을 남겼다고도 함.)


개인적으로는 오덴세를 당일치기로 다녀왔던 것이 그리 아깝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유년기의 추억 속에 젖을 수 있어서가 아니었다. 다소 식상할 수 있는 한 인물의 일대기에만 국한되지 않고 그의 동화까지 활용한 전시가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충분히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서였다. 비가 내리면서 쌀쌀하였고 기차표와 기념품이 무척 비싼 것은 사실이지만, 충분히 투자 가치가 있었던 전시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덴마크를 찾는 사람들에게 한 번쯤은 꼭 찾아가 보라고 권하고 싶다. 적어도 각박한 일상 속에서 오래도록 묻어두고 살았던 동심을 다시 찾고 잠시 그 안에 취할 수 있는 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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