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결코 작지 않았던 나라의 서울에서
지금 당장이라도 유럽의 나라 중 하나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가장 먼저 어디부터 떠올릴 수 있을까? 아마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영국이나 프랑스, 이탈리아 혹은 이베리아 반도의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을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북유럽에 대해 질문을 받는다면 무엇을 떠올릴 수 있을까? 아마 서유럽에 비해 떠오르는 것이 더욱 한정적이지 않을까 싶다. 그림 속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아담한 집들이 알록달록 칠해진 상태에서 쭉 이어진 거리나 겨울 밤하늘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오로라, 혹은 눈으로 덮인 땅 등을 떠올리기 쉬울 것이다. 조금 더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안데르센이 태어난 나라, 레고의 고향 등까지 연상해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틀린 내용은 아니지만, 사실 덴마크는 그러한 소수의 요소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나라가 맞다. 어떤 점에서는 한국과 비슷한 지점이 있으면서도 어떤 지점에서는 한국과 반대되는 형태로 장점과 단점이 드러나기도 한다. 첫 순서는 덴마크의 수도인 코펜하겐에서 보았던 단면들이다.
덴마크에 도착한 후 2일째 되는 날 나는 전체 일정 중 두 번째이자 그날의 첫 장소로 전쟁박물관을 찾았고, 그곳은 유태인박물관 및 왕립도서관과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박물관에서 전쟁과 관련된 소재를 전시에 활용한다고 하였을 때, 가장 먼저 사람들이 떠올리는 모습은 멋지면서 세련된 모습이 더 부각되고는 한다. 그리고 전쟁이나 군대에 대한 수많은 개인의 생각은 쉽게 조국과 민족이라는 거대한 틀 앞에서 쉽게 묻히고는 한다. 나 역시 그와 같은 전시를 많이 보았던지라 이곳도 그리 다르지는 않을 것으로 막연하게 생각하였다.
그렇지만 나를 말없이 반겼던 전시는 내가 생각한 것과는 결이 달랐다. 전시를 다루는 데 있어서 부각된 점은 멋있는 모습보다는 전쟁이 얼마나 참혹할 수 있는지였다. 특히 전쟁터에서 피폭을 당한 지프차 전시는 나에게 충분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직접 입수해서 복원하였든, 남은 자료를 가지고 재구성하였든 그 자체로도 대단한 시도였다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여전히 먹혀드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라는 타이틀보다는 군 복무 중의 생활이 제대 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무게가 실려 있었다. 물론 긍정적인 내용이 중심이었다 보니 근본적인 한계는 있겠지만, 한국에서 보았던 것과는 확실히 결이 달랐다.
1층과 다르게 2층의 전시는 군사사가 중심이었다. 2층 전시실에서 내게 신선한 충격을 던졌던 지점 중 하나는 국제관계를 짐작할 수 있는 전시물이었다. 덴마크의 위치를 보면 영국과 프랑스, 독일에 둘러싸여 있다. 그와 같은 지리적인 입지를 근거로 나는 덴마크가 역사적으로 이들 세 나라와의 관계가 깊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렇지만 정작 전시는 오히려 노르웨이나 스웨덴과의 갈등에 더욱 무게가 실려 있었다. 이는 크리스티안보로 궁전에서도 마찬가지였던 것이 기마 자세를 한 초상화 속 인물은 스웨덴 사람이었다.
그 이외에도 해군의 열악함을 알 수 있었던 모형과 화포를 직접 장전하는 체험을 할 수 있는 모의 공간도 개인적으로는 참 좋았다. 그러한 지점과는 별도로 함선의 장식이나 다양한 초상화는 무엇을 말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대부분 그대로 지나쳤다. 덴마크의 역사를 알았더라면 조금 더 진지하게 음미할 수 있지 않았을지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남는다. 전쟁박물관의 전시를 둘러보고 나오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았다. 과연 우리에게 전쟁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앞으로 살면서 전쟁을 어떤 식으로 대해야 할까? 한 가지 확신한 점이 있다면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게임이나 영화를 즐기듯 다루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정도다.
이 글을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다소 뼈아프게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국립 덴마크박물관의 상설전시실에 있었던 유물들에서 이를 잘 느낄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한국 고대사 이전의 역사를 다루는 전시실을 들어가 보면 가장 먼저 보이는 글귀 중 하나는 양식일 것이다. 즉 모 지역에서는 어떤 모양의 그릇이 있고, 모 지역은 어떤 모양의 청동기가 발굴되었고 교류의 흔적을 생각해볼 수 있다더라 식의 내용들이 줄을 잇는 것이다.
그렇지만 덴마크의 선사시대 유물은 그러한 관념들과는 정 반대였다. 시신이나 인골을 활용한 전시물을 예로 들었을 때, 사람의 성별과 나이는 물론이고, 사망 당시의 나이와 사인 등이 전시 패널에 적혀 있었다. 그리고 금속 유물과 관련된 전시를 예로 들 때는 당시의 덴마크에는 무엇이 풍족하고 부족하였는지 등이 설명에 적히기도 하였다. 아마 한국이었다면 거푸집이나 청동기 유물이 나왔다고 쳤을 때, '찬란한 민족문화의 증거' 식의 미사여구가 붙고 세부적인 고증은 쉽게 외면되거나 일부만 파헤쳐지지 않았을까? 이 지점을 기준으로 덴마크 상설전시실의 유물을 바라보니, 이렇게 세심하면서도 사람들의 지식에 대한 흥미를 자극하는 이곳 사람들의 태도가 부럽기까지 하였다. 그 외에도 중세 말의 대포를 활용할 때 버튼을 누르면 가상으로 발사되는 화면이 나오고 그 뒤에 유물 설명이 간략히 나오는 전시 방법도 개인적으로 꽤 기억에 잘 남았다. 소위 '밀덕'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물론이고 다른 관람객들의 흥미도 끌 수 있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국립 덴마크박물관에 아쉬움이 남는다면 재입장이 안 되었다는 것이다. (덴마크의 거의 모든 박물관은 연중무휴로 아침 10시에 문을 열고 오후 5시가 되면 닫는다.) 3일권 코펜하겐 티켓으로 처음에는 무료로 입장할 수 있었지만, 마감 시간에 걸려서 중세 유물까지만 보고 돌아서야 했다. 4일째 되는 날에는 코펜하겐 티켓 사용 시간이 조금 남아서 오후에 들어가려고 시도하였지만, 재입장은 불가능하다면서 막혔다. 다시 들어가고 싶다면 돈을 내야 했고, 입장료는 한화로 32,000원이 넘어서 글립토테크 미술관으로 대신하였다. 보지 못했던 전시물이 많았는데, 다 내버려두고 떠나야 했던 것이 지금도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오늘날까지도 대다수의 한국 사람들에게 일제강점기 35년은 대화 주제로 삼기에 여전히 민감하고 아픈 부분이다. 근래에는 일본과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역사를 정쟁의 도구로 사용하는 일부 사람들이 악용함에 따라 상처를 덧내고 있다. 그래서인지 80년이 지난 지금도 이 부분에서는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덴마크에서도 80주년은 꽤 특별하고 무겁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2차 세계대전이 지속된 동안 덴마크 또한 독일에 의해 점령된 나라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이를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던 공간은 코펜하겐 3일차에 방문하였던 레지스탕스 박물관이었다.
이 박물관에 도착하였을 때 관람객들은 오디오가이드를 하나씩 받아서 지하의 전시실로 들어간다. 오디오가이드를 헤드셋 모양의 QR코드에 스캔 후 재생 버튼을 누르면 그림자 처리된 가상의 인물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를 통해 관람객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덴마크의 모습이 어떠하였는지를 상상할 수 있다. 이러한 방법 외에도 암호를 해독하거나 방송을 도청하는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전시실 내에 마련되어 있었고,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였다.
이와 같은 전시실의 특징과는 별도로 2차 세계대전 시기의 덴마크와 관련된 내용은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덴마크는 2차 세계대전의 발발 초기에 독일에 의해 점령된 나라 중 하나였다. 덴마크는 무고한 민간인 희생을 우려하여 전쟁에 소극적으로 대응하였다. 그리고 독일 3제국은 덴마크를 점령한 후 주권을 유지시킨 대신, 자국에 식량을 공급하는 보급창고로 활용하였다. 독일의 점령기 동안 덴마크 내에서 실업률은 줄었고, 그 과정에서 나치에 협력하는 부역자들의 수는 적지 않았단다. 그렇지만 엄혹한 상황 중에도 덴마크 사람들은 고분고분 순종하지 않았고, 레지스탕스를 비롯한 다양한 방법으로 독일에 끊임없이 저항하였단다. 물론 저항 과정에서 덴마크에 살던 유태인들 중 일부도 연대하였고, 반 독일 활동에 몸을 담은 이들 중 수많은 사람들이 독일군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전쟁이 말기로 갈수록 덴마크 사람들의 저항은 강해졌고, 결국 연합군의 승리와 함께 해방될 수 있었다고 정리한다.
솔직히 나는 덴마크의 역사와 관련된 내용을 전혀 알지 못한 상태에서 전시를 관람하였다. 그리고 오디오가이드에 의존하다 보니 체력도 많이 빠져서 전시를 온전하게 소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렇더라도 한 가지만큼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덴마크 사람들에게도 외세의 압제에서 벗어난 지 80주년인 올해가 한국인들이 느끼는 못지않게 각별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짧은 시간동안이나마 나는 협소한 반도에서 발을 뗄 수 있었고, 한 가지의 의문이 들었다.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생각이 나라별로 다를 것임은 자명하지만, 과연 다른 나라들은 당시에 어떤 식으로 저항하였을까? 혹은 가해자를 위한 부역자로 순응하는 우를 범하였을까? 그리고 지금의 나라들은 자국의 아픈 과거를 어떤 형태로 기억하고 있을까? 그렇게 시야를 확장한다면 다른 나라의 사람들과 폭넓게 소통할 수 있는 출발이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