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멈추게 하는가 : 기타(2)

예술이 된 옛이야기

by 헨리 월터


20250609_104618.jpg 북유럽 신화에서 언급되는 발키리 모습의 조각상

여타 유럽의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덴마크 내에서도 신화 속 내용을 상상할 수 있는 단면들이 야외 조형이나 미술관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아밀리엔보로 궁전에서 조금 떨어진 공원에서 본 발키리 조형도 있었지만,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것이 물소리와 함께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바로 4마리의 소를 모는 모습의 여신이 표현된 게피온 분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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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대상이지만 다른 느낌의 게피온분수. 왼쪽이 사납게 전방으로 돌진하는 느낌이라면 오른쪽은 시선이 약간 비스듬히 틀어진 것처럼 보이는 느낌을 받았다.

게피온 분수는 어디서 사진을 찍느냐에 따라 받는 느낌이 조금씩 달랐다는 점에서 이곳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았다. 거리를 살짝 둔 상태에서 정면을 마주본 채 찍으면 마치 4필의 황소를 몰고 여신이 돌진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만약 조금 가까이 가서 측면에서 찍었을 경우, 금방이라도 소를 오른쪽으로 몰아서 돌진할 것 같은 느낌을 받게 하였다. 그리고 측면에서 조금 떨어져 알반스 교회 건물이 나오도록 찍었을 때는, 그 표적이 마치 교회인 것인지 싶은 느낌을 받게 하였다.

게피온 분수는 단지 이러한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느낌 수준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 조각상과 관련된 하나의 신화가 얽혀 있는데, 알고 보게 되면 참 흥미롭다. 스웨덴의 국왕 길피가 어느 날 허름한 나그네의 모습으로 거리를 돌던 중, 우연히 길에서 거지 노파를 만난다. 밤늦도록 그녀와 즐겁게 시간을 보낸 왕은 헤어지기 전에 자신의 정체를 밝히며 노파에게 소원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노파는 농사지을 땅을 요구하였고, 왕은 4마리의 소로 하룻동안 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를 주겠다고 약속한 채 돌아갔다. 국왕이 사라지자 노파는 자신의 진짜 모습으로 돌아왔다. 바로 풍요의 여신인 게피온이었던 것이다. 게피온은 자신의 아들 넷을 모두 황소로 변신시킨 후 아들들이 쟁기를 끌게 한다. 그런데 넷의 힘이 얼마나 강하였는지 하루가 끝나갈 무렵 쟁기날이 땅을 깊이 갈아엎는 것도 모자라 결국 떼어낸 상태로 바다를 건넜다고 한다. 그 섬은 셀란이고, 현재 덴마크의 수도인 코펜하겐이 있는 곳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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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립토테크 미술관 안에서 보았던 오딘(좌)과 토르 조각상(우) 오른쪽 사진의 팔 아래를 자세히 보면 망치가 표시되어 있다.

신화가 깃들어 있는 공간은 단지 이곳에 국한되지 않았다. 나흘째 되는 날 오후에 찾은 글립토테크 미술관에서도 신화의 냄새를 확인할 수 있었다. 게피온보다는 그 힘이 약한 편이었지만, 이곳에는 신들의 왕으로 불린 오딘과 함께 천둥의 신 토르 조각상이 진열장 안에서 관람객을 반기고 있었다. 둘 다 대표적인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신들이라는 점과 더불어 최후의 전쟁으로 불리는 라그나로크 때 모두 희생되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리스 신화와 다르게 북유럽 신화의 신들은 수명이 정해져 있고, 때가 되면 죽는다. 그래서 황금빛의 사과를 먹고 젊음을 회복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20250610_151240.jpg 술에 취한 삼손의 머리를 자르는 델릴라의 모습

그 외에도 눈에 밟혔던 조각상이 몇 점이 있었는데, 그 첫 번째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삼손의 모습었다. 삼손은 머리가 길고 힘이 장사였지만, 당시에 적국 블레셋의 여자인 델릴라를 사랑하였다. 그러자 블레셋의 사람들은 델릴라를 매수하여 삼손의 힘이 긴 머리에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가 술에 취해있을 때 머리를 짧게 자르고 옥에 가둔다. 내가 보았던 조각상은 바로 그 순간을 담고 있었다. 물론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삼손의 머리는 갇혀 있는 동안 다시 자랐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비웃는 적국의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괴력을 발휘하면서 그들을 모두 죽이고 자신도 산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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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눈에 비쳤던 것은 이오와 제우스를 표시한 작품이었다. 그리스 신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제우스가 상당한 바람둥이였음을 알고 있다. 정확히 누가 누구인지 구분하기는 어려웠지만, 몸집이 크게 표현된 남성과 여성이 각각 제우스와 헤라 같았고, 작게 표현된 여인이 이오 같았다. 그리고 둘의 뒤편으로 새겨진 물체를 통해 둘이 남몰래 사랑을 나누었음을 추측할 수 있었다. 나중에 헤라는 뭔가 수상함을 느끼고 제우스를 찾고(헤라는 불륜을 아주 혐오하는 여신), 제우스는 이오의 안전을 위해 그녀를 소로 변신시킨다. (이와 관련된 뒷이야기는 쾰른의 발라프 미술관에서 확인할 수 있으므로 자세한 내용은 그때 가서 다시 꺼낼 생각이다.)


20250610_154031.jpg 에로스와 프시케가 사랑을 나누는 모습

그 외에도 프시케에게 연정을 느끼게 된 에로스와, 백조로 변한 제우스가 레다를 유혹하는 모습도 내 눈길을 끌었다. 이 두 조각상 역시 겉모습만 볼 것이 아니라 관련된 신화 속 내용을 알면 참 흥미롭다. 사랑과 미의 여신이었던 아프로디테는 프시케를 질투하였고, 아들인 에로스를 보낸다. 사랑의 화살을 맞게 하고 아무 남자와 결혼을 하게 하려던 계산이었다. 그렇지만 도리어 에로스가 프시케의 미모에 반하면서 사랑의 화살을 자신의 몸에 쏘았다. 그날 이후 에로스는 매일 밤마다 프시케를 찾아왔고 자신의 정체를 모르게 한 상태에서 사랑을 나누었다. 물론 중도에 프시케가 남편의 정체를 의심하여 둘의 사이가 갈라지는 것 같았지만, 결국 둘은 결혼에 성공한다.


20250610_154740.jpg 백조의 모습을 한 제우스가 레다와 함께 있는 모습을 표현한 조각상

제우스와 레다의 조각상을 볼 때는 레다가 낳은 자녀와 관련된 내용이 떠올랐는데, 바로 클리타임네스트라와 헬레네였다. 클리타임네스트라와 헬레네는 각각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과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부인이었지만, 둘의 이야기는 참 묘하게 흘러간다. 신화 속에서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도움을 받아 메넬라오스의 부인 헬레네를 트로이로 데려갔고, 격분한 메넬라오스는 아가멤논을 찾아가 트로이 정벌을 논한다. 그렇게 약 10년에 걸쳐 트로이와 그리스 연합 국가들 사이에 피비린내나는 전쟁이 벌어졌고, 헬레네는 트로이의 몰락과 함께 다시 남편의 품으로 돌아간다. 이 시기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아이기스토스와 바람을 피웠고, 승전 직후에 돌아온 남편과 그가 데려온 트로이의 공주 카산드라를 제거한다. 나중에 아들인 오레스테스마저 죽이려 들지만 그는 탈출하였고, 신탁에 따라 둘을 제거한다. 이와 같은 아가멤논 가문의 서사를 다룬 작품이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다.


여담이지만 사실 미술관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최소한 유럽 문명의 근간이 되는 그리스 신화나 북유럽 신화와 관련된 내용을 얕게나마 알고 있는 상태에서 예술작품을 보니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비록 많은 파편으로 조각조각 흩어져 있을지라도 이것을 연결할 수 있었던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예술 작품이 던지는 재미에 잠시나마 깊이 취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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