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들리 스콧 감독은 정말 다작이에요. ‘라스트 듀얼 : 최후의 결투’라는 신작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구찌’가 나왔고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본인이 일부를 연출하고 제작을 총지휘한 HBO의 미니 시리즈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Raised by Wolves)’ 총 18편을 찍었습니다. 80 가까운 나이에 젊은 여자와 세 번째 결혼을 해서 돈이 정말 필요할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피카소의 예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왕성한 창작력과 왕성한 성욕은 거의 등가물입니다.
리들리 스콧은 ‘에일리언’, ‘블레이드 러너’, ‘글래디에이터’, ‘마션’ 등의 걸작도 많지만 졸작이나 평범한 작품도 그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많은 감독입니다. 그가 아들과 함께 공동으로 연출하며 제작을 이끈 HBO 드라마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는 솔직히 지금까지 평가를 말씀드리자면 걸작은 아닌 것 같아요. 시리즈 1과 2의 집중력이 큰 차이가 나고, 갈수록 난해해집니다. 리들리 스콧 연출이라면 무조건 믿고 보는 제가 밤마다 시리즈 한 편씩 보면서 불면증을 치료하고 있다면 말 다했죠. 어쩌면 시작은 그렇게 장대하면서 갈수록 초라해지는지 너무 안타까운 심정이 들 정도입니다. 지금부터 120년 뒤 인류를 리들리 스콧은 어떻게 예측하고 있을까요?
1) 인간은 필연적으로 전쟁을 피할 수 없는 존재인가?
리들리 스콧 감독을 포함해 SF 영화를 주로 찍는 감독들은 사실상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영화에 도전하는 겁니다. 바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죠. SF 영화는 비대칭성이 압도적으로 크죠. 제가 아는 한 아이작 아시모프의 ‘바이센테니얼 맨’을 제외하면 그동안 나온 SF뮬의 95% 이상은 디스토피아인 듯합니다. 리들리 스콧 역시 후자에 속하죠. 생명공학의 발전이 인류에게 희망이 된다기보다 인류를 멸망시킬 바이러스 혹은 에일리언 같은 크리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감독입니다.
리들리 스콧이 그리는 인간은 미래를 배경으로 한 SF 영화든 과거를 배경으로 한 사극이든 같습니다. 폭력을 영원히 끊을 수 없는 공격성의 화신이 인간입니다. 인간은 문명 이전에는 부족끼리 문명 이후에는 국가와 국가 간의 피 말리는 전쟁이 있었습니다. 물론 전쟁보다 전염병이나 모기에 몰려 말라리라나 황열병, 뇌염으로 죽은 사람이 더 많겠지만 전쟁처럼 인간을 끔찍하게 비인간적으로 파괴한 일이 인류의 삶에서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21세기 휴머니즘이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시대에도 푸틴처럼 미치광이 독재자가 이웃 나라를 침범해 민간인을 학살하는 일이 벌어지는 세상입니다. 결국 인간은 언젠가는 전쟁으로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게 리들리 스콧 감독의 불길한 예언이고 그것을 예언화한 것이 바로 ‘레이즈드 바이 울브즈’의 기본 시나리오입니다.
2) 그렇다면 최후의 전쟁은 무신론자들과 유신론자들의 전쟁이 될 수밖에 없는가?
인류의 멸망을 가져 올 제3차 세계 대전은 어떻게 발발할까요? 푸틴 같은 미치광이가 자신도 죽고 인류도 죽는 공멸의 핵전쟁을 시작할까요? 아무리 미친 개라고 해도 쉬운 선택은 아닙니다. 그런 인간일수록 자신이 죽는다는 것은 끔찍이 무서워하는 법이니까요. 푸틴의 정신적 지주인 스탈린도 죽음을 그렇게 무서워해 자신을 잠재적으로 죽일지도 모르는 수많은 정적(그중에는 가족도 있고 최측근도 있습니다.)들을 미리 제거한 거니까요. 리들리 스콧 감독은 인류 최후의 전쟁을 놀랍게도 유신론자와 무신론자의 전쟁으로 그렸습니다. 영화에서는 기독교나 이슬람교 같은 특정 종교를 지칭하지 않고 태양신을 숭배하는 미트라교로 통용되지만 이 종교는 기독교와 이슬람교와 같이 아버지=태양=하늘이라는 일련의 연쇄에서 공유하고 있는 정신이 있다고 볼 수 있죠. 실제 미트라교는 고대에 있었던 종교입니다.
무신론과 유신론자로 나뉘어 인류는 전면전을 치르는데요, 서로가 서로를 죽이기 위해 대량살상 무기를 만듭니다. 전쟁을 하는 이유가 이기기가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를 더 많이 죽이기 위해서로 전도된 거죠. 유신교 진영은 SF소설 제목이기도 한 네크로맨서라는 최악의 대량살상 무기를 만듭니다. 공중을 나는 여성 안드로이드로 공중에서 유기체가 들을 수 있는 끔찍한 음파를 보내 인류의 귀와 뇌를 처절하게 부수며 공포 속에서 죽게 만드는 아마겟돈이죠. 이 치명적 무기를 포획해 인류에게 생명과 사랑을 안겨주는 안드로이드 마더로 재탄생시킨 것은 무신론자 진영이었습니다. 무신론자 과학자는 아버지 역할에 충실한 안드로이드 파더를 만들어 마더라고 개명한 이 여성형 안드로이드와 함께 우주선에 태웁니다. 인간은 오랜 시간 우주선을 탈 수 없으니 배아 상태로 인간 유전자를 함께 운반해 인류가 살 수 있는 행성으로 보내 인류를 재건시키려 하죠. 지구는 너무 큰 전쟁과 환경 파괴로 더 이상 살 수가 없기 때문에 내린 고육지책이었습니다. 제목인 ‘레이즈드 바이 울브즈’는 로마를 만든 로물루스 형제들이 인간이 아니라 늑대에 의해 길러졌다는 전설에 기인한 거죠. 안드로이드 파더와 마더는 바로 로물루스 형제를 키운 늑대들이 되겠죠.
3)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 인류에게는 희망이 될까? 또 하나의 절망이 될까?
파더와 마더는 새 행성에서 6명의 아기를 낳죠. 그리고 위로 다섯을 잃습니다. 물론 안드로이드에는 최상의 과학 지식과 의료 지식과 기술이 내장돼 있었지만 아무리 기술이 좋더라도 장비가 없는 한 큰 병에서 살아남기 어렵죠. 여섯 번째 아이는 살아남아서 10대를 보냅니다. 시즌 1은 이 행성에 나중에 나타난 유신론교 잔당과 파더 마더 인드로이드가 맞서는 내용이고요, 시즌 2는 살아남은 무신론자 수백 명이 우주선에 타고 이 무인 행성에 나타나 남아 있는 유신론자들을 퇴치하려 하고, 여성 안드로이드 마더가 잉태한 일곱 번째 생명인 거대한 뱀과 싸우는 장면이 포함됩니다. 이 장면에서는 그가 계속해서 천착하는 주제인 에일리언 생명체를 떠올리게 하죠.
에일리언은 뱀을 닮은 외형으로 보는 순간 공포에 빠져들게 되어 있죠. 안드로이드가 잉태한 일곱 번째 생명이 뱀이라는 점에서 리들리 스콧의 의도는 뭐라고 파악할 수 있을까요? 인류가 새로운 생명을 낳는 행위가 인류의 희망이었던 것은 과거의 일일 수도 있고 인류는 어쩌면 자신을 파멸시킬 무서운 괴물을 직접 낳을 수도 있다는 지적 아닐까요? 실제 덩치와 흉측한 외모와 달리 온순한 성격으로 호박을 먹었던 거대한 뱀이 신비의 생명의 나무를 통째로 삼킨 뒤 무기화되어 인류를 파멸시킬 괴물이 되어버린 것은 핵기술이 결국 핵무기가 되어 인류를 파멸시킬지도 모르는 상황을 빗댄 것으로 풀이됩니다. 결국 여성성의 화신인 마더가 자신이 직접 낳은 일곱 번째 생명체를 제거한다는 점에서 인류의 미래 역시 여성성에 있음을 리들리 스콧 감독은 표현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어찌 보면 유신론자와 무신론자의 전쟁은 결국 남성성과 여성성의 대립으로 읽혔어요. 지금까지 인류를 지배해 온 폭력적인 남성 위주의 문화는 여성성의 문화로 대체되는 것이 인류는 물론 다른 생명체와 지구 전체에도 유리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리들리 스콧 감독은 전하고 싶었던 것으로 풀이됩니다. 특히 시즌 1 후반부에 등장해 시즌 2 마지막 회에서 새 행성의 첫 번째 아기를 출산하는 템페스트와 아기의 운명에 관심이 모여지는데요, 일단 2까지 드러난 스콧의 의도는 모성이 인류를 파멸로부터 구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여전히 열려 있습니다. 자신을 강간한 사람의 아이들 가진 템페스트는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보면 자신을 강간한 남자의 얼굴이 생각 나 모성 못지않게 증오도 생기기 쉽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모성이 이기는 것으로 끝나 제 예상이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해 줍니다.
문제는 롱런의 가능성입니다. 시즌 2로 갈수록 스토리가 꼬이고 상징도 늘어나면서 감독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시작은 제주도였는데 가다 보니 삼천포로 빠진 느낌입니다. 이는 시리즈 장기화의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시즌 3에서는 유신론자와 무신론자의 갈등의 본질을 다룰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렇게 난해해지면서 시청자들로부터 외면받기 시작하면 과연 시리즈가 스콧 감독이 예정한 대로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시즌 1은 아주 볼 만했고 시즌 2에서는 실망이 앞섰지만 어쩌면 그 실망이 더 이상의 ‘레이즈드 바이 울브즈’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실망으로 이어질까 염려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