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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잭슨이 밝혀 낸 비틀스의 창의력의 뿌리

by 신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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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 이어 결국 디즈니 플러스까지 구독해서 보게 되었네요. 디즈니 플러스에서 제 첫 번째 선택은 마블 영화가 아니라 반지의 재왕의 감독 피터 잭슨이 연출한 화제의 비틀스 다큐 ‘겟 백’이었습니다. 3부작이지만 무려 8시간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 때문에 극장 개봉은 되지 못하고 비틀스의 마지막 콘서트인 루트 탑 콘서트 하이라이트 부분만 아이맥스 개봉이 됐죠. 비틀스의 마지막 앨범 ‘렛 잇 비’와 ‘애비 로드’는 거의 동시에 녹음됐는데 이 두 녹음을 마치고 멤버들이 그냥 애플사 옥상에 올라가서 공연한 게 이들의 마지막 공연입니다.

19세기까지 음악 하면 클래식 그리고 베토벤과 모차르트를 떠올렸다면 20세기는 비틀스라는 사실을 그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대중음악은 솔직히 60년대 비틀스 이후에 인기와 음악성 양 면에서 아직 이들과 비교될 그 어느 누구도 만들지 못했습니다. 61년 뉴질랜드에서 태어난 피터 잭슨은 비틀스의 음악을 아마 10대 시절 은퇴한 이후에 들었을 겁니다. 67년생인 저 역시 그러니까요. 그러나 저는 비틀스 외에 미국의 포크 락 영국과 유럽의 프로그래시브 락 아방 그라드 음악 그리고 미국의 쓰래시 메탈 하드 코어 음악까지 다 섭력해도 역시 비틀스가 최고인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모 외고 학생 학생부에서 음악 세특에 비틀스의 음악 이야기를 쓴 친구가 있어 비틀스가 좋니 BTS가 좋니? 물으니 1초의 고민도 없이 비틀스라고 답하더군요.

저야 음악은 성장기에 듣는 추억의 매개체이며 어디까지나 취향의 문제라 수준의 높낮이를 논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지만 비틀스는 그냥 그들이 함께 모여 연습하고 대화하는 내용만 갖고 다큐를 만들어도 그 위대함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이 다큐를 보면서 느낀 몇 가지가 있어서 그것을 공유할까 합니다. 바로 그것은 창의성이 어떻게 탄생하는지에 대한 영감이죠. 비틀스의 음악은 창의성에 관한 수많은 책에서 단골로 언급되기도 했습니다. 비틀스의 노래 예스터데이의 제목을 따서 이 노래와 비틀스라는 그룹이 존재하지 않았던 평행우주로 건너간 한 인도계 영국인 남자가 비틀스의 음악을 대히트시켜 최고의 스타가 된 후 자신은 실은 이 우주에서는 존재하지 않지만 다른 우주에서는 그 누구도 위대함을 나는 스타 비틀스의 존 조지 폴의 음악을 베꼈다고 양심선언하는 장면이 나오죠.

저는 실로 클래식 팝 가요 국악 등 많은 음악을 들었지만 적어도 비틀스의 3대 히트곡 ‘예스터대이’, ‘헤이 주드’, ‘렛 잇 비’ 만큼은 정말 인간이 이런 음악을 작곡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위대함의 경이로움을 느낍니다. 놀랍게도 이 세 곡 모두 폴 매카트니의 곡을 실은 저는 존 래넌의 광팬인데도 말이죠.

비틀스의 마지막 콘서트를 위해 비틀스 멤버들이 함께 모여 연습한 3주 정도의 기간이 이 다큐의 시간적 배경인데요, 이 3주 종안 비틀스의 가장 위대하고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곡 ‘렛 잇 비’가 만들어졌죠. 그리고 이때 ‘겟 백’. ‘롱 앤 와인딩 로드’, ‘애비 로드 메들리’, ‘맥스웰 실버 해머’ 등도 함께 만들어졌습니다.

인류 최대의 히트곡인 ‘렛 잇 비’의 멜로디는 비틀스의 4 멤버들이 다른 음악을 연주하는 중간에 영감이 떠오른(아마 불쑥 폴 매카트니의 머리에 어렸을 때 유방암으로 작고한 어머니 매라 매카트니가 등장했을 수도 있습니다.) 폴이 렛 잇 비의 가장 심금을 울리는 테마를 반복적으로 피아노 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음악이 나오기 전이니 다른 세 멤버나 음반 프로듀서 조지 마틴 등도 처음에는 좋은 음악이다 정도로만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각자 자신들이 생각하는 라이브에 담길 신곡들을 연주하면서 협업보다는 개인플레이를 먼저 하던 시점이었죠. 그런데 존과 폴 때문에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던 조지가 탈퇴를 고민하는 순간(즉 비틀스가 해체될 가능성이 있는), 이 극도의 스트레스 속에서 폴이 처음 떠올랐던 멜로디를 피아노로 치면서 즉석에서 가사를 만드는 장면이 나옵니다. 대니 보일 감독의 영화에서도 생전 처음 듣는 ‘렛 잇 비’를 주인공이 여친 아버지 앞에서 연주하니 두 사람 모두 감동을 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 당시 재벌 중의 재벌이었던 코닥 필름의 창업자 이스트만의 외동딸이자 매카트니의 부인(69년은 여친입니다.)이 너무나도 감동을 받아 자신의 아버지가 만든 카메라로 연신 폴의 피아노 치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찍는 거였어요. 그리고 카메라 렌즈 넘어서 보이지 않는 린다의 눈에는 “내가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세상에서 최고의 천재였구나”라는 감동과 사랑의 뒤범벅이 보이는 것 있죠. 아마 린다는 폴의 이 음악을 들었을 때 결혼을 결심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 이전에 이미 완벽한 커플로 둘의 결혼을 언론이 예상했지만 이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린다는 아마 폴이 한센병 꼽추라고 해도 이 음악 하나만으로도 결혼을 결심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폴은 아주 귀여운 얼굴이죠.

창의성이 개인적인지 사회적인지에 대한 논쟁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적어도 폴이 ‘렛 잇 비’를 창조하게 된 데에는 세 가지 감정이 숨어 있습니다. 일단 어린 시절 자신에게서 영영 떠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고요, 그리고 일생을 사랑할 여자 린다 매카트니에 대한 진정한 사랑입니다. 그리고 존과 조지 링고와 함께 한 비틀스에 대한 사랑이 있었겠죠. 비틀스가 해체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위기의 순간에 이 아음다운 멜로디가 떠올랐으니 어쩌면 세 번째가 가장 중요한 감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점에서 렛 잇 비의 창의성은 폴 매카트니의 개인적 경험과 어머니, 여친 그리고 친구인 세 멤버 그리고 요절한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 등과의 기억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이기도 합니다. 음악이든 과학이든 어떤 분야에서도 창의성은 오롯이 개인적이지도 않고 또 반드시 협력을 통해서만 탄생하는 것도 아닙니다. 피터 잭슨의 다큐는 위대한 비틀스의 위대한 기록이지만 창의성의 통찰에 대해서 피터 잭슨이라서 던질 수 있는 그런 높은 수준의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어 비틀스의 팬인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나 K팝 외에도 다른 음악에 관심을 가져보고 싶은 젊은 사람 모두에게 추천할 만합니다. 다만 너무 시간이 기니 시간이 없으신 분들은 루프 탑 라이브가 모두 담겨 있는 시즌 3만 보시는 것도 한 방법이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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