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넷플릭스를 알게 된 것은 지금부터 20년 전입니다. 당시 저는 IT기자였는데 넷플릭스라는 업체가 DVD를 우편으로 대여하는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기사를 제가 직접 썼습니다. 당시 저는 미국 출장 갈 때마다 블록버스터에서 DVD를 구입하고 이미 아마존을 통해서 제가 좋아하는 존 워터스 감독의 희귀 영화까지 구입해 본 영화 마니아였죠. DVD 배달이라는 수익 모델이 독특해 관심을 갖고 주시했습니다. 그리고 넷플릭스가 미국 나스닥에 상장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당시 상장 가는 1달러였던 거로 기억합니다. 월 스트리트는 거의 신경도 쓰지 않는 분위기였죠. 그러다 기자를 접고 논술 강사로 전업 하면서 한동안 잊고 살다가 넷플릭스가 스트리밍 사업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당시 스트리밍은 음악에서는 리얼 오디오 등으로 존재했지만 영화나 드라마를 다운로드가 아닌 스트리밍으로 본다는 것은 시기상조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만큼 인터넷 속도가 빠르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넷플릭스 주가가 오르기 시작한 시점은 그 누구도 시도조차 못하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가장 먼저 시작한 이후입니다. 그때도 10달러 대였을 겁니다. 그 후부터 죽죽 올라가던 넷플릭스 주가는 코로나 팬데믹을 맞아 그야말로 폭등 분위기였고 1년 전인 2021년 11월 700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초기에 들어가 20년간 장기 보유했다면 700배를 먹었다는 이야기죠.
넷플릭스 주식을 초기에 못 산 저지만 넷플릭스 콘텐츠를 일찍부터 즐겨 봤습니다. 제 기억에 따르면 2016년부터였을 겁니다. 처음에는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주로 보았는데 언제부터인가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넷플릭스 전용 작품들을 보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났습니다. 제가 처음 본 넷플릭스 오리지널은 브런치 북 ‘넷플릭스로 철학하기’의 스타트를 끊은 ‘디스커버리 :이번 생은 망했어(제가 붙인 부제)’입니다. 그리고 올해 작고한 엘리자베스 여황의 전기인 ‘크라운’ 시즌 1을 보았죠. 그때끼지는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압도적이지는 않았습니다. “넷플릭스=오리지널”이 된 계기는 디즈니가 디즈니 플러스를 시작하면서 마블 영화를 전부 철수하고 나서입니다. 위기가 기회가 된 거죠. 다들 넷플릭스로 마블 영화들을 보다가 어느 순간부터 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는 콘텐츠만 보게 됐죠. 제가 한 달에 보는 넷플릭스 작품 중 90%는 넷플릭스 오리지널입니다. 제가 브런치 북에 연재한 리뷰 중에 넷플릭스 전용 작품이 아닌 작품은 NBC에서 제작한 ‘타임리스’입니다.
저는 넷플릭스 중독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저는 넷플릭스 중독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면서도 지혜로운 중독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 다섯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순서대로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넷플릭스에서 얻는 건 재미와 킬링 타임만이 아닙니다. 지식이 늘어납니다. 지식과 동시에 세상을 보는 눈도 함께 키울 수 있다는 장점이죠. 넷플릭스는 바보상자가 아니라 통찰력 상자입니다. 넷플릭스에는 역사 과학 경제 예술 등 분야별로 양질의 콘텐츠가 정말 많습니다. 책을 정말 좋아하는 저지만 때로는 이런 생각도 들 정도였습니다. “넷플릭스만 꾸준히 봐도 어디서 무식하다는 소리는 안 듣겠어.” 모든 지식을 책으로만 얻는 시대는 확실히 끝났습니다. 유튜브가 그 대안이었다가 지금은 넷플릭스의 드라마와 다큐 영화가 유튜브보다 더 많은 지식과 교양을 줍니다.
두 번째 이유는 볼거리만큼 생각거리가 많아서 두뇌의 근육을 키우는 데 넷플릭스가 으뜸 매체이기 때문입니다. 넷플릭스 특히 넷플릭스가 자체 제작한 드라마나 영화에는 철학적 화두가 언제나 숨겨 있습니다. 보고 나서 생각하는 시간을 반드시 갖도록 유도하죠. 슬로브예 지젝이 매트릭스로 철학하기를 썼다면 누군가는 ‘넷플릭스로 철학하기’를 써야 할 시점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제 브런치 첫 번째 책이 ‘넷플릭스로 철학하기’가 된 겁니다.
세 번째 이유는 끝없는 혁신입니다. 영화든 드라마든 다큐든 넷플릭스는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합니다. 그 혁신이 모든 사람에게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고 항상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관객들에게 매달 내는 구독료 이상을 넷플릭스에서 얻어내고 있다는 만족감을 항상 느끼게 합니다. 특히 넷플릭스에는 상상력을 극한까지 발휘한 컬트적인 SF작품들이 많습니다. 얼마 전 개봉된 시즌 3 ‘러브 데스 로봇’이 대표적이죠. 그 짧은 시간의 애니메이션에 그 많은 이야기를 매 에피소드마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달하는 참신함과 세련됨에 감동받았습니다. 또 얼마 전 공개된 앤디 워홀에 관한 다큐이면서 영화이기도 한 ‘앤디 워홀의 일기’에서는 죽은 앤디 워홀과 똑같은 목소리를 AI 성우가 내는 놀라운 일을 시연해냈습니다. 넷플릭스의 혁신은 그 자신을 미래지향적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구독자들의 생각 또한 과거에서 미래로 바꿉니다. 과거가 아닌 미래에 좀 더 관심을 갖는다면 사람들은 발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네 번째 이유는 다양성입니다. 이제 세계는 미국과 중국만 알아서는 안 됩니다. 넷플릭스의 바다에는 미국 한국 일본 중국뿐 아니라 러시아 우크라이나 브라질 태국까지 콘텐츠가 있습니다. 이들 국가들을 이해하는 데 이들 국가가 만든 시리즈나 영화나 다큐를 보는 것은 이들 국가들에게 대한 지식을 넓히는 일일 뿐만 아니라 다양성과 다문화의 힘을 느껴보면서 자신을 오픈 마인드로 만드는 지름길입니다.
마지막 이유는 취향 저격의 알고리즘입니다. 저는 한 달에 영화를 수십 편 보는 영화광이지만 저도 모르는 영화나 드라마들을 척척 권하면서 거의 모든 작품에서 제 눈높이를 맞춰주는 넷플릭스의 알고리즘에 놀라웠고 결국 반했습니다. 넷플릭스는 유저가 많으면 많을수록 관객들의 취향을 분석해 패턴을 찾아낸 뒤 수 만 편의 콘텐츠 중에서 최선의 대안을 반드시 제시합니다. 이 알고리즘은 디즈니도 애플도 아마존도 어찌할 수 없는 넷플릭스만의 고유한 장점이죠. 넷플릭스를 보면서 나 자신의 취향도 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취향도 깨닫게 되죠. 현대 사회에서 특히 MZ세대에게는 취향이 곧 돈입니다.
결국 한 마디로 넷플릭스를 정의한다면 볼거리와 생각 거리의 보석함 정도가 되겠네요. 그 보석함은 인류가 영화나 드라마와 다큐 등 시각 매체를 버리지 않는 한 영원히 반짝반짝 빛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