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소설가 켄 그림우드가 쓴 ‘다시 한번 리플레이’의 주인공 제프는 마흔세 살에 죽습니다. 그런데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대학교 기숙사 안이었고, 열여덟 살의 봄을 다시 맞이하게 된 걸 발견하죠. 삶의 기억과 지식은 그대로 간직한 채 말입니다. 그때부터 다시 인생은 시작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두 알고 있던 그는 도박과 주식 등으로 대성공을 거두죠. 그러다 또 마흔세 살에 죽게 되고 다시 열여덟 살로 돌아옵니다.
‘재벌집 막내아들’과 참 비슷하죠. 아마 앱툰 원작작도 이 책을 읽었을 수 있습니다. 표절이라고 주장하는 게 조금 애매할 수도 있지만 일단 설정 자체는 너무나 비슷하죠. 하긴 환생이나 타임 슬립을 하는 이야기가 너무 흔하니 반드시 표절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겠지만 오리지낼리티가 그만큼 떨어진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런데 독창성이 반드시 재미를 보장하지만은 않습니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이성민의 신들린 연기와 80년대 90년대 시대상을 기억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TV 앞에 앉힐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모든 이가 마음 한 편에 평생 갖고 살면서 겉으로는 드러내고 싶지 않은 꿈 ‘나도 재벌집에서 태어났더라면…’이라는 욕망이 있는 한 사람들은 더 많이 TV 앞으로 모일 겁니다.
초반에 시청률이 8.8%면 앞으로 20%를 스카이 캐슬이나 부부의 세계 급으로 히트할 파괴력이 있다고 보입니다. 생각보다 같은 요일에 하던 전작 ‘엠파이어 : 법의 제국’이 너무나도 시청률이 낮게 나왔기 때문에 ‘재벌집 막내아들’도 바통을 이어받은 전작에 약간은 부정적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 드라마와 MBC의 ‘금수저’가 상당히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자는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부모가 바뀌는 거고, 후자는 의도로 부모를 바꾸는 거라는 차이가 있지만 시청자들의 마음은 똑같습니다. ‘나도 부잣집 아니 재벌집의 아들이나 딸로 태어났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기대 심리죠. 아마 결혼을 하기 전의 남녀 중 흙수저 100명에게 만약 태어나기 전으로 돌아가 부모를 바꿀 수 있다는 전제 아래 부모를 바꾸겠냐고 물으면 거의 90% 이상 바꾸겠다고 답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자식이 있다 보니 그런 상상을 못 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생에 어떤 시점에서는 그런 상상을 하는 시기가 반드시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이를 가족 로맨스라고 했죠. 100년 전에도 나의 부모는 틀림없이 바뀐 거야. 원래 내 부모는 부잣집 혹은 귀족집이고 언젠가는 나를 찾으러 올 거야 라는 상상을 어린 시절 안 해본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DNA란 게 이미 정해져 있고 부모에게 물려받은 이상 나라는 정체성을 유지한 채 나의 출발을 바꾼다는 건 불가능하죠. 나는 안 바뀌고 부모만 바뀔 수는 없는 거니까요. 살면서 느끼는 거지만 DNA는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삶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사람들은 언제 가족 로맨스를 끝낼까요? 흙수저들도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면서 더 사랑하는 자식을 낳을 때는 큰 희망과 기대를 갖게 되어요.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이 자신보다 못 사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인생에 희망이 생기는 순간, 대개 어린 시절의 자녀를 보면서 우리 딸, 우리 아들은 천재야 라고 잠시 착각하는 순간이 바로 근 순간이죠. 그 순간부터 가족 로맨스는 완전히 사라집니다. 그런데 한 번 사라진 가족 로맨스는 다시는 찾아오지 않습니다. 금수저’나 ‘재벌집 막내아들’ 모두 말도 안 된다는 걸 지켜보는 시청자들도 잘 알 겁니다. 그런데도 이런 말이 안 되는 드라마에 열광하는 이유는 살기가 특히 흙수저로 대한민국에서 살기가 정말 힘들기 때문입니다. 만약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 있다면 잠시 재벌이 되어보는 꿈이라도 돈 주고 꿔보고 싶은 게 보통 사람들의 심리 아닐까 싶습니다.
참고로 ‘다시 한번 리플레이’에서 다시 재생된 그의 삶은 똑같이 흘러가지 않습니다. 이전 생과는 다르게 살기로 결심한 덕분이죠. 그리고 그것이 인생을 바꿉니다. 인생에서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례죠. 저는 금수저로 태어나기를 꿈꾸는 것(사실은 꿈이 아니라 절망이고 원망이죠.) 보다 더 중요한 게 금수저 아니라면 동수저라도 나 스스로 노력해서 쟁취하겠다는 의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인생을 바꾸지 못하는 게 DNA 때문이라면 바꿀 수 있다는 증거는 의지가 되겠습니다. 저는 DNA보다 의지의 힘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