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대중 물리학서는 미국 작가들의 놀이터였습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로 시작해 미치오 카쿠, 브라이언 그린 등의 책을 대중들은 흥미진진하게 읽으며 과학적 상상력을 키웠죠. 그중에서 카쿠는 평행우주를 그린은 초끈 이론을 일반 대중에게 각인시켰습니다. 대중보다 먼저 영화 제작자들이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평행우주, 초끈 이론은 SF영화에 최다 단골로 출연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시간 여행보다 더 흔한 소재가 평행 우주입니다. 평행우주는 정말 유행입니다. 특히 마블의 두 영화 ‘스파이더맨 노웨이 홈’과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 외에 다른 우주가 있다는 평행우주론을 마치 물리학적 진실인 것처럼 다룹니다. 고등학생들 학생부에서도 다중우주의 가능성에 대한 연구 등의 주제가 보이는 등 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입니다. 저희가 학교 다닐 때는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이 공은 미치오 카쿠에게 돌려야 마땅하죠. 그가 SF소설의 영역에 있던 평행우주를 물리학자들의 진지한 토론 대상으로 격상시킨 장본인이죠.
이탈리아에는 카를로 로벨리라는 전설적인 양자중력학자가 있죠. 시간은 없고 사건만이 있다는 주장을 하는 특이한 인물이죠. 신기하게도 양자중력이론을 주장한 같은 계열의 캐나다 물리학자 리 스몰린은 시간은 실재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이탈리아는 은근 물리학의 강국입니다. 로벨리 전에는 원폭을 실제로 만든 엔리코 패르미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바로 이 사람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아메데오 발비 로마 토르 베르가타 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로 2021년에는 아이작 아시모프상을 받아 미국에서도 인정받은 우주학자입니다. 그런 그가 새 책 ‘마지막 지평선’에서 일부 물리학자 특히 초끈 이론가들의 거의 도를 넘은 상상력에 찬물을 던집니다. 관찰 가능한 이 우주 말고 정말 다른 우주가 존재할까?
물론 그도 우리가 보는 것 외에 더 넓은 우주가 존재한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지평선 너머 배가 사라진다고 그 넘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이론물리학은 어느 순간부터 실험이 아닌 사고 실험으로 학문을 합니다. 이렇게 되면 물리학이 아닌 철학이 되는 건데요. 이런 사고 실험을 해보죠. 우리가 보는 우주 바깥의 우주가 무한대라고 가정해보죠. 그렇다면 무한대란 모든 가능한 것의 현실화입니다. 어떤 황당한 일도 가능성 제로가 아닙니다. 즉 무한대로 우주가 크다면 우주 어딘가에는 나와 똑 같이 생긴 또 다른 나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건 인간의 과학이 발전하면 알아낼 수 있습니다. 현재까지는 우주는 무한하지는 않다는 주장이 조금 더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관찰 가능한 우주는 과학이 발전하면서 점점 더 범위가 늘어날 것이고 그에 따라 우리가 생각했던 다중 우주론이 들어설 여지도 점차 줄어들 거라는 전망이죠.
다중우주를 지지하는 과학자들도 어떤 증거도 없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다중우주에 관한 비핀적 견해를 지닌 사람들은 이 개념이 단순성의 기준이나 가설의 경제성 기준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좋은 설명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다시 말해 우주의 원리를 설명하는 데 우리가 관측할 수 없는 우주의 원리를 설명하는 데 우리가 관측할 수 없는 다른 우주들로까지 확대함으로써 상황이 명확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복잡해진다는 것이다.”
과학은 상황을 단순화시키는 거죠. 오히려 복잡하게 만들면 그것은 과학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에 따르면 다중우주는 칼 포퍼의 반증 가능성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반증 자체는 물론 입증 자체가 불가능하니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 같은 진리가 될 수는 없다는 주장입니디. 이 우주 말고 또 다른 우주가 있다는 것은 SF 감독의 상상력을 자극시킬 수는 있지만 경험적 기준을 중시하는 과학자의 검증을 통과할 수는 없다는 거죠. 그는 다중우주는 아직 충분한 근거로 뒷받침되지 않은 추측에 의한 이론적 시나리오의 배경에서 나온 가능성일 뿐이라는 주장을 합니다. 그는 다중우주는 과학이라기보다는 철학적 선택으로 우리 인류에게는 지평선 너머 즉 관찰 가능한 우주 바깥에 무엇이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 주제를 놓고는 지지론자 반대론자 모두 결정적인 증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게 현실의 정확한 묘사인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발비는 예수의 상처에 손을 대고야 부활을 믿는 도마의 후예라는 생각이 들어요, 자신이 눈에 본 것 확실한 것만 물리적 진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죠. 그의 반대편에 있는 미치오 카쿠는 눈이 아니라 머리로 물리학을 하는 사람입니다. 초끈이론과 양자역학적으로 파고들다 보니까 이런 결론을 얻은 거죠. 세상에서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평행우주는 사고 실럼을 통해 가장 자연스럽게 세상의 진리를 드러낼 수 있는 두뇌 활동의 소산이다. 결국 미시의 세계로 들어가면 눈이 필요 없어지고 어찌 보면 상상력이 더 중요해지는 세상이 되는 것 같아서요. 상상력은 보이지 않는 것이 존재할 수 있다, 내가 모르는 것상 분명 존재한다는 믿음에 기인합니다. 저는 발비보다는 카쿠의 편을 들고 싶습니다. 이전과 달리 현대 물리학은 믿음과 상상력으로 더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죠. 눈앞에 있는 열매만 잡으려고 했다면 아마 상대성 이론부터 시작해 양자역학으로 완성된 현대 물리학의 기적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