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투자 성향에 가장 많은 영형을 미친 인물은 최근에는 캐시 우드고 그 이전에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서학 개미들은 미국 주식을 철저하게 성장주 4차 산업혁명 관련 주식에 투자하는 편인데, 캐시 우드와 손정의는 체급은 다르지만 성장주를 정말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지요. 캐시 우드가 투자한 종목에는 대부분 소프트뱅크가 들어가 있습니다. 차이는 비트코인에 있죠. 잘 아시는 대로 손회장은 비트코인으로 별 재미를 못 보았습니다. 너무 늦게 들어간 탓이죠. 손정의 회장은 자신이 정말 확실하게 이해한 종목에 투자했을 때 성공을 합니다. 저는 손 회장이 암호화폐에 반신반의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해 봅니다. 반면 캐시 우드는 테슬라와 줌 텔라닥과 비트코인이 가장 많이 투자한 4 종목입니다.
제가 IT기자 시절인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일본은 미국 다음으로 여전히 잘 나가던 시절이라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인기가 지금보다는 높았습니다. 그와 오가 노리오라는 소니의 전성기를 이끈 전 회장이 대담한 ‘감성의 승리’는 제가 90년대에 읽은 최고의 책이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손 회장과 관련된 책(거의 전부가 일본 작가가 쓴 책이지만)을 전부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손 회장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를 해왔는데 가장 최근에 나온 ‘손정의 평전 : 뜻을 높게’를 보면서 손 회장에 대해서 제가 몰랐던 사실, 그리고 그가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시계열을 길게 보는 장기적인 투자자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그는 자신을 투자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돈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라 미래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자본가라는 말을 정말 좋아합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소프트뱅크 손회장은 아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제가 볼 때 그는 미래를 읽는 선견지명이 있는 대단한 사업가는 맞지만 솔직히 암을 인수한 것은 그가 너무 나간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죠. 그는 2016년 한국 돈으로 33조 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들여 암을 인수했습니다. 암은 잘 알려진 대로 반도체 설계의 독보적인 업체죠. 그런데 인수하기에는 너무나 덩치가 큭 기업이고 그 기업을 되팔 때 마땅한 상대가 업습니다. 까놓고 이야기하면 삼성전자 아이면 TSMC죠. 책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손정의 회장은 젠슨 황에게 암을 팔 생각으로 인수를 했더군요. 암을 인수하자마자 손 회장은 샌프란시스코로 달려가 4시간 동안 젠슨 황 회장과 와인을 곁들인 저녁 식사를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앞으로 AI 세상을 생각하면 엔비디아의 GPU와 암의 CPU를 같이 설계해서 시스템 온 칩처럼 하나의 칩 안에 융합된 형태인 AI칩으로 업그레이드가 필요합니다.”
손정희 회장은 81년 소프트뱅크를 일본에서 시작했을 때 컴퓨터에 빠져 있었죠. 그 후 90년대 야후에 투자했을 때는 인터넷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2000년부터는 일본 내 초고속 인터넷을 보급하는 망 사업자로 변신하면서 브로드밴드에 매료되었죠. 그리고 2014년 페퍼를 만들 때부터 AI를 외쳐 왔습니다. 원래 그가 그린 그림은 AI 최강자로 우뚝 설 엔비디아를 통째로 사는 거였는데 그동안 엔비디아는 너무 덩치가 커져 버렸죠. 그래서 암을 인수해 엔비디아에 판 뒤 인수 대금의 일부를 엔비디아 주식으로 받아 엔비디아 보유 주식을 늘려가려는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처음에 중국 정부를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암의 인수를 정면에서 제동을 건 장본인은 믿었던 미국이었습니다. 반도체 설계를 대만계 미국인인 젠슨 황이 독점해버리면 미국이 구상하는 중국을 제외한 칩 4 동맹에도 부정적일 것이라고 생각한 게 암 인수 결렬의 명분이자 실제 이유였죠. 엔비디아의 인수가 물 건너가면서 암의 가격도 떨어진 상태였죠. 손정의 회장은 삼성전자를 찾았던 것으로 보이고 삼성전자는 관심을 보이는 척하다가 너무 높은 인수 가격(100조 원)때문에 인수 계획 자체를 없던 것으로 발표했습니다. 실제 손정의 회장이 엔비디어에 팔기로 한 가격이 45조 원 정도였는데 2년 사이에 가격이 더블로 뛴다는 게 말이 될까 싶기도 했는데 코로나 이후 공유경제가 치명타를 맞으면서 유동성 위기에 처한 손 회장으로서는 대안이 없었을 거란 생각도 듭니다. 이 책의 저자이자 일본의 IT 최고 전문 작가인 이오우에 아쓰오는 암이 2023년 나스닥에 직 상장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손정의 회장은 정말 미래를 보는 통찰력이 있습니다. 보니까 틱톡이 잘 나가기 전에 틱톡의 동영상만 보고 바이트 댄스에 투자를 결정했고 틱톡이 미국을 점령하기 전에 이미 지분을 늘릴 생각을 했었더라고요. 미중 무역 전쟁에도 불구하고 바이트 댄스는 잘 나갈 거라고 신뢰를 한 이유는 바이트 댄스가 지닌 퍼스널라이제이션의 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바이트 댄스를 이야기할 때 저력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사용자가 원하는 소식이나 콘텐츠를 유튜브나 페이스북보다 훨씬 더 쉽게 전달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에게 투자를 하면서 B2B 뿐 아니라 B2C, C2C로 사업을 확장하라고 조언해 알리바바를 아시아 최고의 전자상거래 업체로 만들게 한 인물도 손정의 회장입니다. 그는 최고의 자본가이면서 동시에 최고의 컨설턴트이기도 합니다.
손 회장은 우리가 알기로는 전형적인 공격형 사업가로 손정의 사전에는 방어가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손 회장은 자신은 공격과 도망을 동시에 생각하는 스타일이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 자신도 미래를 예측하려고 노력하지만 미래란 것이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끝없이 수정하며 선수를 쳐 나가는 수밖에 없다는 철학 때문입니다. 그가 20년 만에 일본의 IT 혁명을 주도하고 그 막강한 공룡 NTT도코모도 누르고 일본을 대표하는 IT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맞지만 그가 창업 40년 뒤면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던 300조 엔 시가 총액(3조 달러로 애플과 동급이죠.)에 달성하지 못했던 이유는 그도 인간인 한계 때문이고 어쩌면 암 인수는 그 자신이 했던 실패 중 가장 큰 실패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전형적인 싸움꾼이지만 도망갈 때는 확실하게 도망갈 줄 아는 지능적인 파이터입니다. 암 인수부터 엔비디아에게 팔 생각을 한 것이 그 전형적인 증거죠. 자신의 성공에는 자신의 판단력과 결단력만이 아닌 운도 작용하고 있으며 행운 뒤에는 반드시 불운이 찾아온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는 지혜로운 인물이라는 생각을 평전 곳곳에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어쩌면 그가 그렇게도 존경하는 사카모토 료마를 뛰어넘어 일본의 IT후진국으로 몰락하는 것을 방지한 인물로 일본 역사에 기록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자신 수차례 강조한 일본을 세계 최고의 IT대국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은 결국 실패했지만 이는 그의 능력 부족 때문이 아닙니다. 한 나라의 IT는 천재 한 명 신동 한 명의 탄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게 진짜 이유일 겁니다. 빌 게이츠 혼자서, 스티브 잡스 혼자서 미국을 세계 최강의 IT 대국으로 만든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죠. 그가 강조했듯이 성공을 위해서는 성공하기 위한 구조가 먼저 필요할 겁니다. 그러나 일본 특유의 폐쇄성과 하약한 러디십과 동의어가 되어버린 의원내각제 두 가지가 손정의 회장의 ‘뜻을 높게’가 어딘가 2% 부족한 제목이 되어버리도록 만든 것은 아닌가 하는 결론을 내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