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온통 카타르 월드컵 이야기지만 투자자인 저는 CNBC에서 진행하는 주식 월드컵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월드컵처럼 전 세계 32개 기업이 출전하고 예선전 없이 바로 토터먼트를 벌립니다. CNBC는 전 세계 주식 전문가들에게 단 하나의 질문을 던집니다. 어느 종목이 지금부터 1년 뒤에 당신의 호주머니를 더 두둑하게 불려줄 것인가죠. 최근 8강전의 두 경기가 벌어졌는데 놀랍게도 강력한 우승후보인 테슬라가 대만의 TSMC에게 졌습니다. TSMC는 루이비통과 닌텐도의 승자와 결승행을 놓고 격돌합니다. 아쉽게도 국내 유일한 출전 기업 삼성전자는 32강에서 숙적 애플에게 패했습니다. 애플도 16강에서 JP 모건에게 져 8강 진출도 못했죠. 이변의 연속입니다. 참고로 TSMC는 32강에서 엔비디아를 16강에서는 알리바바를 꺾었습니다. 대만과 중국의 양안 간의 갈등을 고려하면 세계 투자자들은 적어도 1년 동안의 TSMC의 미래를 아주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대만게 젠슨 황이 있는 엔비디아와 마윈의 알리바바를 차례로 꺾었다는 점에서 대진표에 어떤 의도가 있는 게 아닌가 의심이 되지만 여하튼 TSMC의 미래는 객관적으로 밝아 보인다는 말이겠죠.
2022년 현재 TSMC의 주가는 삼성전자 시총보다 150조 원이 더 많고 파운드리 시장의 점유율도 여전히 54%로 절반을 넘습니다. 삼성전자가 2위지만 17%로 격차는 전혀 줄고 있지 않습니다. 비메모리만 한정 지을 때 아직 매출액 면에서도 삼성전자는 TSMC의 3분의 1 수준입니다. 물론 비메모리 반도체만 그렇다는 이야기죠. 3분기에는 사상 처음으로 반도체 전체 매출에서 TSMC가 삼성전자를 이겼다고 합니다. 이건희 회장이 사활을 걸고 시작한 비메로리에서 TSMC는 영업이익으로 따져도 TSMC는 6조 원으로 세계 1위, 비메모리 종가나 다름없는 인텔은 4조 원입니다. 삼성전자는 비메모리에 분야에서는 3조 원 정도의 이익을 내고 있습니다. 30년 동안 이어진 전 세계 넘버 1 삼성전자는 정말 강력한 적을 만남 셈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건희 회장이 일본이 아닌 대만이 자신의 제국의 경쟁자가 될 것이며 그 상대는 TSMC의 모리스 창이 될 거라고 예측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건희 회장은 89년 모리스 창 회장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했습니다. 당시는 여전히 일본이 세계 최강이었던 상황에서 시작을 막 한 대만이 자신의 강력한 라이벌이 될 것을 내다본 겁니다. 즉 모리스 창이 반도체 회사릃 설립하기 전에 막으려고 했던 거고 모리스 창도 정확히 의중을 읽고 고사를 했다고 합니다. 당시 모리스 창은 58세의 나이였고 아무리 전문가라고 해도 도무지 현업에서 일할 것처럼 보이지 않았을 텐데 말이지요.
모리스 창도 놀라운 사실은 삼성전자가 일본을 추월할 것을 이미 그때부터 예측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일본의 반도체 기업들 히타치 도시바 NEC 미쓰비시 등은 모두 집단지도체제와 전문경영인 체제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는 구조였기 때문이라는 거죠. 반도체 산업은 무엇보다도 리더의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고 이건희 회장은 그것을 갖춘 CEO임을 한눈에 파악했기 때문이죠.
국내에는 모리스 창과 관련된 책이 한 권 번역돼 있습니다. ‘TSMC 반도체 제국’으로 그 책에 보면 2017년 은퇴한 그가 두 명의 CEO를 앉혀 놓고 여전히 배후에서 모든 걸 조정한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대만이 망하지 않는 한 TSMC=모리스 창인 셈입니다.
일본이 자신만만했던 반도체에서 한국은 물론 대만에도 추월당한 이유는 강력한 리더십의 부재로 투자 타이밍을 잘 못 잡았기 때문입니다. 모리스 창과 이건희 회장은 반도체 시장이 아주 안 좋았을 때 투자를 늘렸고 은행의 투자자를 먼저 생각하는 일본 반도체 기업의 CEO들은 불황에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호황 때 투자를 늘렸다가 사이클 곡선에서 가격 하락기를 만나 가격 공세에 나선 삼성전자에게 완전히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리스 창은 분명히 적인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배웠다는 게 맞는 표현이겠죠. 사실 삼성전자도 사내 문화가 힘들기로 유명한데 TSMC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근무 시간에는 휴대폰도 못 쓰게 합니다. 직원들은 회사 서류를 개인 메일로 못 보내게 하는 등 보안도 철저하죠. 모리스 창은 무엇보다 고객의 신뢰를 강조했고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철통 보안을 실시한 겁니다. 화장실에 갈 때도 카드를 찍어야 합니다. 이런 규정을 몇 번 어기면 직속상관이 아닌 모리스 창 회장에게 보고가 갈 정도입니다.
TSMC는 파운드리만 하죠. 즉 설계는 하지 않고 주문 생산만 합니다. 퀄컴이나 엔비디아 AT&T 같은 세계 최고의 회사들이 자신의 설계도를 믿고 TSMC에 보내는 것은 이런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거죠. 어마 모리스 창도 설계도를 훔쳐 파운드리 아닌 전체 반도체 시장을 독점하고 싶은 유혹이 없었겠냐만 그는 장기 이익을 위해 신뢰를 선택한 거죠.
중국이 대만을 공격해서라도 통일하고 싶은 이유도 TSMC 때문이고 그것이 불가능한 이유도 TSMC 때문입니다. 공격했다가는 모든 제조업의 공급 라인이 끊기는 미국이 전면전을 각오하고라도 개입할 것을 시진핑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진핑은 절대 승산 없는 전쟁을 벌일 인간이 아니죠. 그래서 대만 사람들은 모리스 창을 회장이 아닌 장군으로 부른답니다. 자신들을 중국으로부터 지켜주는 건 대만의 미사일이나 공군이 아니라 TSMC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제가 남의 나라 기업과 CEO를 너무 칭찬했네요. 저는 사실 삼성전자 투자자이자 애국자로 삼성전자가 TSCM를 꼭 꺾어주기를 바랍니다. 이건희 회장의 선견지명을 이재용 회장도 타고났기를 또한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제가 볼 때 이건희 회장의 또 다른 장점은 절대 안주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변화와 혁신 두 가지 키워드로 경영철학을 정의할 수 있겠죠. 이재용 회장은 아버지 할아버지로부터 배운 대로만 행동하면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