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균 쇠와 사피엔스 급의 책으로 이번에는 문화심리학의 관점에서 그동안 근대화와 산업화를 주도해 온 유럽인들의 사고와 심리를 역사적으로 고찰한 멋진 책이 출간됐습니다. 바로 조지프 헨릭 하버드대 생물학과 교수의 ‘위어드’인데요, 저자의 이름보다 추천사를 써준 인물들이 끝내줍니다. 넛지의 캐스 선스타인, 역사의 종말의 저자 프랜시스 후쿠야마, 하버드대 심리학과 조슈아 그린 교수, 생각의 지도의 저자 리처드 니스벳 등 헌사를 써준 이들이 더 화려하죠.
헨릭 교수는 이 책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같이 이끈 서구인들을 위어드로 묘사합니다. 각각 서구인, 잘 교육받은, 산업화된, 부자인, 민주적인의 약자를 따서 WEIRD라고 읽습니다. 저자는 문화심리학의 관점에서 그리고 결혼 및 종교 제도란 두 독립 변수로서 위어드가 다른 민족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수많은 도표와 통계 그리고 문화심리학 실험을 통해 그는 위어드가 동양과 이슬람 그리고 아프리카와 중남미의 원주민을 어떻게 정복했는지를 설명합니다.
출발은 인간이 태어나면서 가장 먼저 만나는 제도인 결혼에서 시작합니다. 위어드는 거의 인류 역사 최초로 일부일처제를 실현한 집단입니다. 우리는 일부일처제가 자연스럽지만 19세기까지는 아닙니다. 현재도 전 세계에서 일부일처제를 실시하는 국가의 국민을 합치면 15%로 아직 일부일처제가 인류 결혼 제도의 기본값이 된 것은 아닙니다. 일부일처제는 일부다처제에 발생하는 결혼 못 한 남성들(하위 40%)을 잉여 남성으로 만드는 구조에서 벗어나 이들의 생산력을 사회 발전에 사용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입니다. 일부일처제의 사회는 사람들을 보다 더 분석적으로 만들고 낯선 이에 대한 신뢰 지수를 높이고 협력의 기회를 늘림으로써 더욱 사회 발전을 가속화시켰죠. 국가는 개인의 권리와 인권을 보호하는 법을 제도화하고 사유재산권을 보장받은 위어드는 자신의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줌으로써 부를 더욱 불려 나갔습니다. 사회적으로 신뢰가 넘쳐나면 그 사회는 활력이 넘치고 그 활력은 창의성으로 이어집니다. 위어드의 강점이죠. 반면 동아시아처럼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낯선 이에 대해 불신하며 사회적으로 혁신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지기 어렵습니다. 물론 집단주의 사회는 집단주의 사회대로 장점이 있겠지만 적어도 산업화라는 측면에서는 위어드가 우수할 수 있었던 비결은 개인주의에 있습니다. 위어드가 만들어낸 도시화 또한 사회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낯선 도시에서는 친족이 아닌 낯선 사람을 보다 자주 만날 수밖에 없고 이들과 경쟁하고 협력하면서 도시인의 뇌 크기를 키웠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내집단에 함몰된 다른 문명권과 달리 내집단과 외집단을 넘나들면서 경쟁하고 협력한 위어드들이 혁신의 힘을 스스로 키운 거죠.
위어드가 부자가 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인내심 때문입니다. 저자는 한 나라의 이자율이 인내심과 관계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노르웨이나 스웨덴처럼 인내심이 강한 나라는 당장 한 끼의 식사보다 장기 저축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시도가 자연스러울 수이고 부의 축적에서 위어드가 타 지역보다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입니다.
21세기 총 균 쇠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는 찬사가 전혀 과장이 아닌 역사와 심리학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적극 추천할 만한 좋은 책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