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마지막 회만 남았네요. 재벌집 막내아들 정말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오늘이면 끝이네요. 사람들은 모두 주인공 송준기보다 할아버지 이성민의 명연기를 칭찬하는데 배우 연기 연출 각본 뭐 하나 빠질 게 없는 드라마입니다. 한국 사회 애정과 증오를 동사애 받고 있는 재벌이란 존재에 대해 이렇게 깊이 있게 성찰한 드라마가 있었던가 싶고 그 드라마가 재벌빕 막내아들의 모델이 된 순양과 100% 유사한 삼성가에서 만든 JTBC라는 사실도 놀랍습니다. 실은 중앙일보와 TBC를 만든 이는 이병철 회장이지만 초대 사장인 이건희 회장의 장인인 홍진기 전 내무부장관이었고 이건희 회장이 삼성에 취업했을 때 첫 직장도 중앙일보였습니다. 지금이야 삼성에서 떨어져 나간 범 삼성계열 그룹으로 묶일 수 있지만 JTBC는 이병철 이건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죠. 그런 JTBC가 삼성가를 다룬 드라마를 찍는다? 사람들은 결국 미화로 갈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87년부터 2004년까지 벌어진 정경유착과 문어발식 경영, 불법 승계, 비자금 등은 비판을 하면서도 대한민국 경제를 끌어올린 그 주인공으로서 삼성 즉 순양의 역할을 부정하지는 않았습니다. 국민 다수도 비슷한 생각일 텐데요, 삼성은 사실 그룹 명부터 미츠비시(세 개의 마름)에서 영감을 얻었고 친일 기업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이 일본을 오가며 일본에서 현지처를 두고 일본인 처 사이에서 혼외자식을 두었다는 점 그리고 한국 전챙이 한창일 때 군대 갈 자식들을 일본에 도피시켜 놓고 전쟁터에 안 보낸 사실 등을 모르는 기성세대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일본에게 배워 일본을 이긴 것도 결국 삼성 덕분이었으며 우리를 지금 이 나라로 만든 반도체 신화 역시 삼성 특히 이병철과 이건희의 리더십이 없었더라면 존재하기 어려웠다는 점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공과 과를 바교하다면 적어도 공이 과의 두 배는 넘는다고 생각합니다. 덩샤오핑이 마오쩌둥에 대해 평가하면서 공칠과삼이라고 했던 말은 삼성그룹의 두 리더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 모두에게 해당할 겁니다.
각본을 쓴 작가(아마 원작 웹툰작가도)가 삼성을 떠올리는 것을 여기저기에 배치해 놓고 사람들에게 숨은 그림 찾기를 시키는 잔재미도 있는데 그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게 이병철 회장의 사주 관상 즉 동양 철학(철학자들이 들으면 기겁을 할 태니 동양 운명론이 적절하겠습니다.)의 신봉자이며 면접 자리에 관상쟁이를 대동했다는 유명한 일화를 모르는 분은 없을 겁니다. 삼성이 한국 반도체를 인수하고 미국과 일본에서 공부한 인재들을 영입할 때 그 모든 인터뷰 순가에 호암은 있었습니다. 황창규 전 KT회장도 분명히 기억하더군요. 소문대로 진짜 배신할 상인지 아닌지를 본 건지, 아니면 학생부 종합 전형처럼 인성 발전 가능성 역량 등을 종합적으호 평가하려고 한 건자 모르겠지만 황 회장의 후일담에 따르면 이병철 회장이 그에게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이건희 회장과 대화를 유심히 듣기만 했답니다. 그때는 이미 이 회장이 위암 판정을 받고 실무에서 조금씩 손을 뗄 시점이었죠.
호암의 운명에 대한 관심이 작품 속에서는 2남 진동기 사장의 최측근인 백상무에게서 드러납니다. 마침 15편의 백미가 백상무가 결국 진동기 사장을 배신하고 주인으로 모셨던 진동기 사장이 관재수가 있음을 예지 하는 대목이었는데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저는 작가가 운명이라는 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진도준이 두 번씩이나 교통사고를 겪게 되는 장면에서 그런 생각이 굳어졌습니다.
동양의 운명은 서양의 운명과 조금 다릅니다. 운명은 한자로 보면 정해진 명과 행운의 운이 결합된 단어입니다. 서양에서 생각하는 운명은 운명보다는 명에 가까운 거죠. 그런데 동양에서는 운명이라고 해서 사람에게는 정해진 길이 있기는 하지만(그것이 사주팔자 그리고 관상도 포함될 수 있겠죠.) 그대로를 운전하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그 사주를 지닌 사람이며 길을 건널 때에는 다양한 변수 즉 운을 만나 사주팔자와 전혀 다른 삶을 살 수도 있다고 인정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사주팔자를 미신이나 그래봐야 운명론이락 폄하하기보다는 대로와 운전 그리고 운전자의 운전이라는 세 가지 변수로 나눠서 생각하면 의외의 심오함이 눈에 들어올 겁니다. 분명히 데카르트 못지않게 자유의지를 인정하고 있으며 명리학은 지금 내가 달릴 도로의 컨디션이 어떤지 알려주고 내가 만날 수도 있는 변수(벼락이든지 교통사고 같은)를 미리 알려줌으로써 대비할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데이터 과학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했습니다. 물론 환생이나 환생도 지난 시절의 기억을 모두 안고 태어난다는 설정 자체는 비과학적이라기보다는 과학으로는 절대 검증할 수 없는 영역이기는 하지만 작품이 운명이란 것에 대해서 보여주고 있는 메시지는 저에게는 과학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동양철학 아니 명리학도 운명은 자신의 선택일 수도 있다는 점을 분명히 강조합니다. 명리학을 공부하다 보면 사고나 감옥행을 뜻하는 인사신이 동시에 출세와 승진을 가리키기도 한다는 이중성에 놀랄 때가 있습니다. 명리학에서 볼 때는 형사나 조폭이나 태어난 기운은 똑같습니다. 다만 그 둘이 전혀 다른 운명을 만나게 되는 것은 자신들의 선택과 그 결과라는 점을 인정합니다.
이 작품은 운명론적으로 보면 진영기 회장이 아버지의 심복인 이항재 실장에게 한 말, 평생 마름으로 살다 갈 수는 없으니 나도 주인이 되고 싶다는 그 말에 한 답변이 전체적인 메시지를 웅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럼 다시 태어나던가?”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진도준은 재벌 3세로 태어나서 과거를 모두 기억하기에 승승장구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도 전생에서 몰랐던 숱한 변수들을 만나 고전을 하면서 최종적으로 옳은 선택을 한 결과 순양 그룹의 진정한 상속자가 된 것이죠. 아무리 미래를 아는 인간이 있다고 해도 미래에 일어날 모든 변수들을 모두 통제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게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진도준의 성공에는 미래를 안다는 사실 외에도 예측 못할 변수에 대한 대응력도 분명히 포함되어 있습니다. 결국 ‘이번 생은 어려워, 다시 재벌집 막내아들로 태어나고 싶어’만을 바라는 사람들의 심리가 이 드라마 때문에 더욱 커질 것 같지만 이 메시지 외에 운명이란 건 정해진 고속도로를 내 운전 능력(물론 차의 종류도 중요하겠죠. 무슨 차를 탔느냐가 결국 유전자일 겁니다.)과 올바른 선택에 따라 상당 부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재미와 함께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재벌집 막내아들이 끝나면 이제 무엇을 보면서 주말을 보내야 할까요? 그게 실은 가장 큰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