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는 동양인가 서양인가? 오르한 파묵의 ‘페스트의 밤

by 신진상

오르한 파묵의 ‘페스트의 밤’을 읽었습니다. 페스트 때문에 봉쇄되고 격리된 20세기 초 오스만 튀르크 지배하의 한 섬(작가의 상상의 섬입니다.)이 현재 한 달 이상 고립돼 있는 중국의 상하이를 생각하면서 읽었습니다. 격리될까 봐 공포에 떨며 탈출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21세기의 대표적 독재국가 중국이나 19세기 후반부 이슬람 세계를 지배했던 전제주의 국가 오스만 튀르크나 매한가지라는 점에서 인간은 도대체 언제쯤 철이 들까 라는 생각이 우선 들었습니다. 770 페이지가 넘는 만만치 않은 두께에도 추리 소설 형식을 띤 플롯의 묘미 때문에 중간에 책을 접을 수가 없었습니다. 소설에도 나오지만 파묵은 확실히 아가사 크리스티나 코넌 도일 같은 영국의 추리 소설 작가의 영향을 확실히 받은 것 같아요. 제가 다른 터키 작가의 작품을 읽은 적이 없어서 일반화시키기는 어렵지만 파묵만큼은 동양의 영향보다는 서양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은 작가 같습니다. 파묵도 이런 질문을 심심치 않게 받은 듯해요. 그럴 때마다 그는 자신은 동양인도 아니고 서양인도 아닌 세계인이라는 답으로 우문에 현답으로 응수하곤 했죠. 사실 우리는 터키를 형제의 나라로 생각하고 돌궐 족을 투르크와 너무나 당연스럽게 연결시키지만 터키 사람들은 돌궐 족이나 그들의 사촌쯤 되는 위구르족과 외모가 완전히 다릅니다. 사실 이탈리아나 그리스 사람과 비슷한 거의 완전한 서양 안의 외모입니다. 돌궐 족이 투르크족이 되었다고 인정하죠. 그들이 서진해서 오스만 튀르크를 세워 그전에 터키 지역을 다스렸던 동로마 제국(비잔틴 제국)을 멸망시킨 것은 역사적 팩트 맞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당연히 피가 섞였겠죠. 그리고 동로마 제국 이전에도 로마를 세운 로물루스 형제가 지금의 터키에 있던 트로이의 후손이라는 설도 있는 만큼 터키는 범 서양 문화권에 속해 있던 시기가 훨씬 더 길었다고 봐야 합니다. 터키는 발칸 반도에 아직도 일부 영토를 지니고 있기에 자신들은 서양 즉 유럽이라고 주장하죠. 월드컵 예서도 유럽에 속해 있죠. 이슬람교는 주로 아시아에 있지만 터키는 다른 이슬람교도들과 조금 다른 정체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터키는 셀주크 투르크를 거쳐 오스만 튀르크로 이슬람 지역의 맹주를 자처하며 독일 오스트리아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유럽 국가들과 19세기까지는 대등하게 맞섰던 유일한 이슬람 국가입니다. 그래서 자존심도 상당한 편이죠. ‘페스트의 밤’의 배경인 1901년 중국의 베이징에서는 그 유명한 의화단의 난이 일어나 서양인과 기독교인의 학살이 있었는데, 당시 폭동을 주도했던 이가 중국의 무슬림이었습니다. 그들은 당시 이슬람 국가의 유일한 자존심이자 실질적인 맹주였던 오스만 튀르크의 지지를 원했죠. 오스만 튀르크의 술탄은 당시 막강한 서구의 힘을 의식해 노골적으로 지지하지는 못했습니다. 당시 유럽과 일본의 연합군은 기관총과 대포로 중국인과 중국의 무슬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습니다. 이를 버지니아 울프는 강력하게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청나라는 청일 전쟁의 패배 후 사실상 국가 통치 기능을 상실했고 한족들은 만주족 너희도 외국인 아니냐며 더 이상의 지배를 용인하지 않았죠.

‘페스트의 밤’에는 서구와 동양 사이에서 길항하는 터키의 운명 같은 게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핏줄로는 서양 쪽에 분명 가까워 보이는데 종교 때문에 자신들은 동양이라고 느끼는 이 모순적 상황은 파묵의 모든 소설에 등장하지만 ‘페스트의 밤’은 특히 강력하게 드러났던 것 같아요. 파묵은 제가 알기로는 터키의 민족주의 그리고 에르도안의 신돌궐 주의에 비판적인 입장으로 터키가 인류 역사에서 저지른 만행으로 몽골의 바그다드 학살과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가교를 잇는 아르메니아인의 학살을 주도했던 과거에 반성하는 지식인으로 느껴졌다면 ‘페스트의 밤’에서는 오스만 튀르크 시절에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정확히 절반을 차지하는 가상의 섬에서 종교와 민족을 초월해 재앙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숭고한 노력을 세밀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비판정신은 전보다 줄어들고 과거에 대한 포용의 자세는 더욱 강해졌다는 생각을 받았어요. 사람은 나이가 들면 보수적이 되어간다는 말이 위대한 작가 오르한 파묵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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