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프랭클이 20세기 최고의 심리학자인 이유

by 신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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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인생의 책이며 제가 수많은 제자들에게 권유해서 최고의 극찬을 받은 책은 오스트리아 출신 신경정신과 의사이며 심리하자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였습니다. 이 책 외에도 국내에 출간된 빅터 프랭클의 책은 미친 듯이 탐독했는데요, 그가 60년 동안 썼던 논문들을 모은 책 ‘빅터 프랭클, 당신의 불안한 살에 답하다’도 아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물론 논문을 모은 책이어서 읽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전작을 통해서 드러나는 양대 축, 의미 치료와 로고 세러피의 이론적 배경 및 맥락에 대해서 자세한 지식과 통찰력을 얻을 수 있었는데요, 그의 이번 책은 1부는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에 대한 그의 비판적인 시각들을 모았고 2부에서는 실존과 로고 세러피라는 측면에서 의미심장한 글 네 편을 모았습니다. 오늘은 이 책을 통해 그가 왜 20세기 최고의 신경정신과 의사이며 심리학자로 불리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이유, 19세 때 논문을 쓴 천재였다

이 논문집에 실려 있지는 않지만 그는 19세 때 첫 논문 ‘표정이 말하는 긍정과 부정의 발생’을 ‘국제 정신분석 학회지’에 기고한 천재입니다. 그는 중학생 때부터 프로이트와 서신을 주고받은 심리학과 정신의학의 영재였습니다. 빈 의대 1학년 때는 국제 개인 심리학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기도 헸죠. 현재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입학사정관제가 있었다면 서울대 의대 수석 합격이 거의 확실시되는 인재였죠. 의지를 강조하는 그는 열등감을 강조하던 프로이트의 수석 제자 알프레드 아들러와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었고 마침내 그는 심리학회에서 아들러의 입김에 의해 제명되기도 합니다. 그때 나이가 23세였습니다. 우리 나이로는 대학원생 나이에 이미 프로이트와 아들러 급의 심리학자로 굳건히 자리를 매긴 셈이죠. 믿기 힘들지만 그가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나이는 세 살입니다.

두 번째 이유, 그의 이론은 아우슈비츠에서 생존을 통해 증명되었다

그의 이론은 로고 세러피와 의미 치료가 핵심이죠. 인생에서 내가 왜 사는지 그 이유를 알면 그는 어떤 고통도 이겨낼 수 있다는 니체의 말에서 영감을 얻은 그의 이론은 아우슈비츠에서 생존을 통해 증명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삶의 의미를 아는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의지를 얻습니다. 힘과 의지는 단순한 낙관이나 희망과는 다른 강한 영혼을 전제하죠. 그는 자신의 이론을 삶으로 증명해낸 셈인데요, 그는 삶을 통해서 그의 심리학을 철학과 연결시켜 한층 격을 높인 이론가 겸 실천가로 존경받아 마땅합니다.

세 번째 이유, 프로이트 아들러 알러스 등 선배들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종합했다.

프로이트 아들러 그리고 같은 유대계 오스트리아인 정신분석가로 유명한 루돌프 알러스까지 그는 유대인 선배 심리학자들의 사상을 받아들여 자신의 철학과 경험을 합쳐 20세기 최고의 정신분석 이론으로 승화시켰습니다. 그는 이번 책에서도 숱한 고전과 다른 논문들을 인용하며 박람강기의 진수를 보여주는데요, 그는 이론적 공부 외에 자연과학적 실험에 대한 열정을 끝까지 견지하면서 공허해질 수 있는 이론을 현실에 토대를 굳건히 세운 실사구시의 학문으로 바꿔 놓은 인물입니다.

네 번째 이유, 그는 이미 현대 산업 사회에서 우울증의 대유행을 예견했었다

우울증은 현대인들의 마음의 가장 무겁고 중대한 질병이죠. 마음의 감기로 시작해 결국은 마음의 암으로 끝납니다. 전체 우울증 환자의 거의 대부분이 불면을 호소하고 그중에 15%는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말기 암이 평균적으로 50%의 치사율을 보이는 상황에서 15%의 치사율은 어마 무시한 수치입니다. 우울증은 2차 세계대전 이전의 인류에는 그리 친숙하지 않은 질병이었습니다. 우울증은 프랭클의 표현을 빌리면 실존적 공허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무슨 일에서든 무의미 때문에 괴로운 질병이죠. 의미와 무의미의 싸움이 인류에게 가장 큰 숙제가 될 수 있음을 그는 진작에 짐작하고 아우슈비츠 생존 이후에는 무의미 그리고 무의미에 언제나 동반하는 불안과 싸우고 이에 대한 완벽한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그의 치료법인 역설 의도는 이런 메커니즘입니다. 정신과 환자들이 가장 크게 호소하는 고통이 불면증이죠. 이 불면증을 수면제로 치료하기 시작하면 수면제 그것도 용량을 늘리는 끝없는 악순환 속에서 환자의 영혼과 몸은 파괴됩니다. 그는 불면증 환자를 이렇게 치료합니다. 오늘 밤부터 절대 밤에 잠을 자지 않겠다고 저와 맹세하세요. 잠자리에서는 어떻게 하면 잠을 잘 수 있을지 고민하지 말고 반드시 깨어 있겠다고 다짐하며 잠이 들까 봐 걱정하세요. 그러면 불면증은 자연스럽게 치료됩니다.

다섯 번째 이유, 고통과 의미 삶의 목표 등 그는 인간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도스토옙스키 소설과 니체의 철학 등 인문학에 정통한 사람입니다. 인간에게 고통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삶의 의미가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의미는 삶의 목표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인간을 완벽히 이해하고 인간이 시간과 유한이라는 한계에 어떻게 노출돼 있는지를 깨달은 인물입니다. 무엇보다 인간의 정신적 고통이 몸과 마음에 어떻게 동시에 연결될 수 있는지 이해한 인물입니다. 아우슈비츠에서 하루 성인 평균 칼로리의 3분의 1도 안 되는 890 칼로리로 버티면서 그는 빵의 굶주림과 의미의 굶주림이 크게 상관되어 있는지 잘 알고 있었죠. 인간은 빵이 없이 살 수 없는 존재지만 빵만으로도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인간 존재의 모순성을 그보다 잘 알고 이를 자신의 치료법에 적용한 정신과 의사는 그 어느 누구도 그를 뛰어넘지 못합니다. 그보다 더 인간과 인생을 완벽히 이해하는, 경험과 지식과 실험을 통해 자신의 이론을 벼린 인물은 없습니다. 20세기를 끝내고 21세기도 벌써 5분의 1이 지난 지금 그를 뛰어넘는 정신분석학자를 인류가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저는 회의적입니다. 그 이유는 빅터 프랭클의 책을 한 권이라도 읽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죠.

여섯 번째 이유, 그는 이미 회복탄력성의 대유행을 예고했다. 아니 그가 복원력의 원조다.

아우슈비츠에서 생존율은 5%입니다. 95%가 죽고 겨우 5%가 살아남았지요. 생존자들이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많은 심리학자와 신경 정신과 의사들은 인간이 지닌 복원력, 즉 우리가 지금 회복 탄력성으로 이야기하는 역량이 중요하다고 지적합니다. 그는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회복력과 비슷한 영의 반발력이라는 표현을 구체적으로 사용했습니다. 사람이 일생일대의 위기에서 주저앉을 수도 있지만 다시 일어날 경우 더 높이 도약할 수 있습니다. 니체의 말 대로 자신을 완전히 죽이지 못하는 대상은 인간을 더 강하게 만드는 법이니까요. 니체야말로 회복탄력성을 이야기한 최초의 철학자이겠지만 니체의 삶 자체가 회복탄력성으로 설명이 되지는 않습니다. 즉 삶과 자신의 말을 동시에 일치시킨 심리학자는 빅터 프랭클 외에는 없는 것이죠. 아우슈비츠가 그에게 준 유일한 기쁨은 그를 강하게 만들었다는 점뿐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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