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 참 이런 말을 많이 들어요, 사랑하는 반려견이 죽었을 때, 소위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하죠, 그 고통과 슬픔이 부모님 돌아가셨을 때 못지않다는 거지요. 저희 여동생이 15년 동안 길렀던 마티즈가 무지개다리를 건넜을 때 그렇게 슬퍼하는 걸 보시던 저희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그렇습니다. “너는 내가 죽을 때보다 00가 죽었을 때 더 눈물을 많이 흘리는 것 같구나.”
저의 집 강아지는 만 13살을 지났는데 아직 3살 같습니다. 포메라니안이 슬개골 탈구가 자주 오는 견종이라 저희 강아지도 그 때문에 고생을 하는데, 그것 말고는 정정합니다. 물론 저는 아쉽죠. 예전에 저는 저희 강아지와 산책하는 즐거움이 최고였는데 슬개골 탈구가 심해지고는 산책을 못 합니다. 산책을 해도 5 분만 걷게 하고 나머지 시간을 제가 안아 주죠. 슬개골 탈구 때문에 몸무게를 줄여야 해서 저희 딸이 눈물의 다이어트를 시켰습니다. 한 때 4.9kg였던 몸무게가 지금은 2.6kg입니다. 강아지 입장에서는 견생의 가장 클 즐거움인 인간들이 주는 음식이라는 쾌락을 잃고 대신 건강을 얻은 거지만 체중을 줄여 집에서 생생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면 그래도 제 딸이 잘했다는 생각입니다. 저희 바람은 앞으로 10년은 더 건강하게 살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지요,
개들이랑 인간이 산책 말고 다른 취미를 공유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특히 개들이 나오는 영화 볼 때 특이 아쉽습니다. 넷플릭스에서 키즈 부문 1위를 질주 중인 영화 ‘우리 집 개를 찾습니다’가 그랬어요. 정말 개 키우는 사람들은 이 문구가 적힌 포스터나 사진 등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실 겁니다. 개 관련해서는 기쁜 쪽보다 슬픈 쪽으로 공감 뉴런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연민이면서 내게도 그런 일이 생기면 어쩔까 라는 걱정이 들기 때문이죠.
80년대 청춘스타 로브 로우가 아버지이자 제작자로 등장한 이 영화는 에디슨 병이란 희귀병에 걸려 한 달에 한 번 꼭 주사를 맞아야 하는 골든 레트리버를 입양한 가족이 공원에서 강아지를 잃자 강아지를 찾기 위해 일도 포기하면서 근 한 달 동안 노력하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주인공은 대장염 때문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강아지 걱정으로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합니다.
미국처럼 파현화된 사회에서 고립된 개인들이 이처럼 하나가 되어 서로가 서로를 위해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며 그것도 모자라 강아지 찾는 데 미력이나마 보태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정말 예외적이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자식보다 강아지가 먼저라는 게 농담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죠. 잃어버린 개 찾는 데는 이념도 빈부도 연령도 흑백도 존재하지 않는 듯했습니다. 영화가 실화를 기반으로 했다니 분열의 나라 미국도 개 사랑 하나로 뭉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반려견 사업은 정말 ESG 사업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견주인 아들의 어머니는 어리 시절 기르던 저먼 셰퍼드가 교통사고로 죽은 아픔이 있었는데, 그 이유 때문에 아들이 강아지를 키우는 걸 처음에는 반대했죠. 나중에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오는 골든 레트리버가 그녀의 눈에는 어린 시절에 기르던 그 개로 보였는데 그 장면도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견공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들은 클리세에 빠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어요. 물론 이 영화도 그런 전형적인 클리세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뻔한 진부함 속에 진정한 감동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조만간 기술이 발전해서 메타버스 기술이 인간의 오감을 넘어 동물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면 인간과 강아지가 함께 체험할 메타버스 콘텐츠가 나올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