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이래 한국인 중 가장 위대한 인물을 꼽으라면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이 꼽힐 겁니다. 그런 다음 3위는 이 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바로 삼성의 고 이건희 회장입니다. 어떤 관점에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로 선정해도 무리가 없을 겁니다. 저는 솔직히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와 함께 20세기 후반 세계 최고의 위대한 경영자 3인으로 선정되어도 절대 과찬이 아닌 인물이 이건희 회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벌집 막내아들’로 이건희 회장에 대한 관심이 전국민적으로 일고 있는 가운데 오늘은 대한민국이 그에게 빚진 것들은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참고로 저는 보수로 삼성을 지지하며 삼성전자의 주주이기도 하지만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와 삼성이 취재를 거부했던 제프리 케인의 ‘삼성라이징’까지 다소 혹은 과격하게 삼성과 이건희 희장을 비판하는 책도 두루 읽으면서 가능하면 중립적으로 그에 대해서 평가하며 생각의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그도 인간인 이상 단점도 있고 실수도 많이 했죠. 대표적으로 자동차 사업 진출이고요 그러나 그는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구한 절체절명의 구원투수였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이 매거진의 타이틀이 부자들의 생각법이니만큼 이번 글에서는 그의 생각이 대한민국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즉 대한민국이 그에게 빚진 그의 생각이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비효율이야말로 최악의 비도덕이다
삼성을 비판하시는 분들에게는 이건희 회장의 도덕성에 대해서 강한 의구심을 가질지 모릅니다. 정경유착과 언론 길들이기, 노조 탄압 그리고 검찰 및 사법부 무력화 같은 중차대한 일에서부터 마약, 여성 문제 등 지극하 시적인 부분까지 그가 한 잘못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다 알기에 이건희 회장의 공을 인정하는 사람들조차 그의 능력은 인정할지언정 도덕성까지 인정하고 싶은 마음은 추후에게도 없겠지요. 그런데 동아일보 기자로서 그의 전기 ‘경제사상가 이건희’를 쓴 허문영 작가는 도덕성에 대해서 이 회장은 독특한 관점에서 생각했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이 회장은 도덕성의 반대는 효율성이고 최고의 부도덕은 비효율성이고 낭비라고 생각했다는 이야기죠. 그 이유는 무엇보다 인생에서 중요한 게 시간이라고 생각한 이건희 회장의 가치관 때문입니다. 남의 시간을 잡아먹는 비효율이야말로 가장 비도덕적인 행위라는 게 이 회장의 특유의 도덕관입니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서 비도덕이 비효율과 동의어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그런 점에서 이 회장은 일반인과 다릅니다. 그러나 비효율을 줄이는 과정에서 외부 경제 효과로 사회에는 도덕성이 싹틉니다. 재벌집 막내아들 시절과 ESG를 기업들이 외치는 시절을 비교하면 대한민국은 분명 도적적으로 진일보했습니다.
2) 원점에서 사고하라
일반 대한민국 국민이 그에게 빚진 사고는 또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원점에서 사고하기입니다. 이 회장은 어눌해 보이고 대중 매체 인터뷰를 자주 하지 않는 편이지만 사장단 회의 등을 주재할 때에는 거의 히틀러 수준의 달변과 설득력을 보였습니다. 30시간 동안 깨어있고 연설을 한 적도 있지요. 어떤 측면에서는 비유의 달인이기도 했죠. 원점에서 사고하기는 이 회장의 비유를 들면 이겁니다. 프로 골프 선수가 슬럼프를 만났다면 골프채 잡는 방법부터 다시 시작해 보는 게 원점에서 사고하기입니다.
일이 꼬일 때는 출발점으로 돌아가 새로 생각해 보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사실 어디가 출발점인지를 잘 모릅니다. 일이 잘못 됐으면 바로 잡는 게 중요한데 바로 잡는 시점이 어딘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죠. 원점에서 생각하다 보면 그동안 놓친 지점이 보인다는 게 이 회장의 생각입니다. 특히 위기에 필요한 사고법이죠.
3) 변화를 위한 처절한 몸부림
이 회장은 일본에게서 배워 일본을 이긴 인물인데요. 그는 일본어가 사실상 제2의 모국어라고 할 정도로 자연스럽고 일분 문화에도 노출되었으며 일본인 중에 그와 사적으로 친한 사람들이 한 두 명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는 일본을 나라로서는 이기고 싶었지만 일본인들이 가진 특유의 근면성과 장인정신은 정말로 존경했죠. 그가 비싼 고문료를 주고 영입한 일본인 고문 가운데 후쿠다 보고서를 써 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쓴 후쿠다 다미오와 마이니치 서울 특파원을 오래 지낸 미야자키 가쓰히코는 그와 절친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입니다. 이 중에 미야자키는 이건희 회장이 죽고 나서 그에게 멋진 별칭을 붙여줬는데요. 그게 바로 변화를 위한 처절한 몸부림입니다.
제가 볼 때 93년에 삼성의 신경영 선언이 없었다면 우리는 97년 IMF를 만나 그대로 주저앉았을 거고 선진국은커녕 중진국 이하인 오늘날의 아르헨티나 수준으로 전락했을 겁니다. 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우리는 이제 할 만큼 했다며 느슨해지는 시점이었고 국가적으로 흥청망청하는 분위기였죠. 그때 이건희 회장만이 위기설을 강조하며 변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며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죠. 그리고 삼성전자가 메모리반도체 1위가 된 93년이야말로 삼성전자가 망할 수 있는 위기의 해로 생각하며 직원들에게 끝없이 원점에서 생각해 기업과 개인 국가가 살 길을 찾으라고 말한 이가 바로 이건희 회장입니다. 그만큼 절박하게 혁신을 추구했기에 삼성전자는 도무지 넘지 못할 것 같던 소니라는 산을 넘었고 21세기에는 최고의 가전 기업이며 최고의 반도체 기업(물론 지금은 2위로 내려앉았지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거죠.
4) 먼저, 제 때, 자주
그는 대한민국 하면 떠오르는 빨리빨리 정신의 문제점을 가장 잘 알고 있던 사람이 이건희 회장입니다. 빨리빨리 가 그만큼 많은 불량품을 만들어내고 장기적으로 기업 및 국가 경쟁력을 깎아 먹는 요인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죠. 그 대신 그가 제시한 새로운 생각이 바로 ‘먼저, 제 때, 자주’입니다. 그는 2년이나 걸리는 반도체 공장 건설을 6개월로 앞 당긴 빨리 정신 때문에 세계 1위에 올라설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빨리빨리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그는 미래 변화의 흐름이 규모가 아닌 속도가 될 것이며 속도는 빨리가 아닌 먼저, 제때, 자주임을 미리 알고 있었던 거죠.
그 대안이 먼저, 제 때, 자주입니다. 먼저는 기회를 선점하라는 거죠. 물론 지금 눈앞에 펼쳐진 게 위기인지 기회인지 그 누구나 판단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것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통찰력이 필요하고 그러한 선견지명을 다행히 이건희 회장은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먼저라는 개념을 삼성이 적용한 사례로 세계 최초의 256 메가 디램 개발을 꼽고 있습니다. 그리고 CDMA 분야에서도 상용화를 모토로라보다 빨리 한 것을 꼽고 있죠. 먼저를 항상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따라 나오는 행동 강령이 제 때와 자주일 수밖에 없습니다. 새 가지를 순차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동시에 생각할 수도 있는 전략인데요, 이 회장은 동시에 생각했다는 특징이 있지요.
5) 첨단이 되기보다 1등이 되려고 노력하라
그는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변하는 것으로 첨단 기술은 시간이 되면 구시대의 유물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대신 강조한 것은 첨단이든 기존이든 항상 1등을 하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첨단 기술은 도전심을 자극하는 것은 맞지만 진정한 차별화는 1등이 되려는 마음에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죠.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누구나 연필깎이를 쓸 때 혼자만 손으로 능숙하게 깎을 수 있다면 그 역시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거죠. 호텔의 경우 아무리 첨단 시스템이 갖춰져 있더라도 직원이 고객의 이름을 실수로 입력하는 순간 날아가는 것이 현실이라며 디지털은 반드시 아날로그에 의해서 보완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는 닐 스티븐슨이 스노 크래시에서 메타버스라는 단어를 쓰기 전에 이미 가상과 현실이 구분이 안 되는 세상이 머지않아 올 것이라며 메타버스의 예언을 했던 선견지명의 사나이였는데요, 첨단을 구성하는 여러 세부 항목 중에서는 반드시 첨단이 아닌 것들이 존재하며 이런 것까지 섬세하게 신경을 쓰며 속도 조절을 해가는 것이 세계 1등이 되는 길이라는 게 그의 주장입니다. 결국 그는 일생을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려고 노력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기계를 분해하기 좋아한 공학도 기질이 있으면서 항상 고전을 인용하고 직원들에게 수시로 업의 본질이 뭐냐는 질문을 던지며 답을 찾는 괴정에서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인문학도였습니다. 진정한 르네상스맨으로 T자형 융합형 인재였죠. 그의 생각과 경영 철학은 제가 볼 때 우리나라 청소년이 읽어야 할 가장 좋은 경제 교과서라는 생각이 듭니다. 꿈을 갖기 위해 꼭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읽어야 하고, 일론 머스크의 전기를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에게도 좋은 롤 모델이 있음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이가 바로 이건희 회장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