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고등학생 그중에서도 고3 학생과 학부모를 주로 상대하는 대입 전문가입니다. 만나는 사람들이 고 3과 정보에 빠삭한 대치동이나 특목고 고 3 학부모들이다 보니 초등학교 학부모들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어졌고 자연스럽게 초등학교 학부모들을 제가 초등학교 학부모 시절의 그때와 비교해서 추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학부모들의 키워드를 욕망과 꿈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그랬으니까요. 정말 서울대 외의 대학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내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의지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학부모들에게 자녀는 사랑스러운 존재이기 이전에 영특한 천재들이죠. 그래서 꿈의 크기는 마치 미국 나스닥 기업의 PER(주가 대비 수익률) 모양 커져만 가고 누구나 사교육만 제대로 받으면 명문대와 전문직이라는 꿈을 이룰 수 없을 것처럼 기대합니다. 그런데 세상이 달라지고 있고 학부모들도 내가 생각하는 학부모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존재는 바로 교육대기자 TV를 운영하며 조선에듀 편집장 출신의 방종임 기자의 첫 번째 저서 ‘자녀 교육 절대 공식’(위즈덤하우스)였습니다.
놀랍게도 그 책에서 제가 얻은 인사이트는 초등 학부모들을 지배하는 키워드가 욕망이 아니라 걱정이었음을 알게 된 거죠. 물론 여전히 욕망과 꿈은 자리 잡고 있을 터지만 책 속에 등장한 수많은 학부모들의 사례들을 보면 초등학부모들은 자신의 자녀에 대해서, 그리고 자녀가 만날 미래에 대해서 정말 걱정하고 있는 게 확실하더라고요.
책에서는 공교육과 사교육을 넘나들며 방기자가 만난 수많은 사레들(그중에는 수능 만점자도 있고 스카이 캐슬이 그렇게 강조했던 서울대 의대 합격생들도 나옵니다.)이 나오지만 요즘의 학부모들은 그런 사레를 보고 내 자녀고 그럴 거야라는 꿈을 키우는 대신, 우리 아이가 과연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을 하게 된다는 거죠. 물론 전에도 걱정하는 부모들이 적지 않았을 거고, 요즘도 욕망과 꿈으로 점철된 하루하루를 사는 맹모들이 분명 있을 겁니다. 그런데 세상이 몇 년간 분명히 달라지고 있으며 자녀의 양육과 교육을 동시에 신경 쓰는 초등 학부모들이 가장 많이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저는 책을 통해 간점 경험했습니다. 그동안 정치적 격변도 있었고, 입시 제도의 큰 변화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알파고와 챗 GPT의 등장으로 정말 앞으로 명문대를 나오고 전문직을 가져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을 갖게 된 시대의 변화가 작용했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 기자의 책에서 변하지 않는 한 가지 사실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바로 입시는 마라톤이라는 은유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이죠. 이 말을 누가 처음에 했을까요? 하여튼 그분이 대단한 선견지명이 있으신 분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맞습니다. 입시는 100 미터 단거리 경주가 아닙니다. 내신과 비교과로 가는 수시든, 수능 성적으로 가는 정시든 그 본질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장거리 아니 마라톤에 가깝다는 생각만큼은 에나 제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수시는 고 3 1년 동안 반짝 준비해서 될 일이 절대 아니고 재수생과 N수생이 싹쓸이하는 현행 정시 또한 고 3 1년=입시라는 공식을 산산조각 냅니다. 저는 스카이캐슬이 히트를 칠 무렵 ‘공부 머리 독서법’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도 작가가 초등 독서 논술 학원을 하면서 초등생들에게 맞는 지문을 수능형으로 내서 수능의 경쟁력이 얼마나 있는지를 보여준 시스템의 승리라고 생각합니다. 수시는 원래부터 마라톤이었지만 정시 또한 마라톤이 된 지 오래라는 말이죠.
입시가 마라톤이라는 비유가 영원한 진리라면 저는 오히려 초등 학부모들이 욕망과 꿈 대신 걱정을 선택했다는 소식이 사회 전체적으로는 반가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걱정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현실주의자로 만들고, 자신의 능력 범위 그리고 무엇보다 자녀의 능력 범위 내에서 입시라는 전쟁을 치르겠다는 자세로 드러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냥 욕망과 꿈에 도취돼 초등 고학년부터 선행학습의 사교육에 노출되면 일찍 찾아오는 건 성공이라는 두 글자가 아니고 피로라는 두 글자일 뿐입니다.
책에는 오은영 박사 윤대근 서울의대 교수 등 신경정신과 의사들의 많은 인터뷰가 실려 있는데요, 정말 걱정이 많은 초등 학부모들에게는 자녀들의 공부 상처와 공부 감정에 정말로 신경 써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등 최상위권만 만나면 전혀 파악하지 못할 자녀 교육의 중대한 변수지요.
확실히 책은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 나와는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책을 읽을수록 도움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입시가 곧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초등학부모들도 여전히 많으시겠지만 그보다는 입시가 교육 그 자체인 현실이 걱정이라는 분들이라면 더욱더 도움이 될 만한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