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와 스탈린. 영원한 맞수이며 그 둘의 악명 싸움은 이른바 연고전의 지옥 버전이라고도 부를 수 있겠죠. 악행이라는 관점에서 스탈린은 오직 히틀러와 비견될 수 있고 히틀러 역시 오직 스탈린과만 비교될 수 있는 인류 역사 전무후무한 두 악당입니다. 저는 이런 생각마저 들어요. 인류 역사에서 지옥과 가장 가까웠던 시기가 있었다면 저는 두말할 것 없이 1942년 여름과 43년 겨울 사이의 스탈린그라드를 선택하겠습니다. 독일군 15만 독일 동맹국인 헝가리 루마니아 이탈리아 스페인군 8만 명, 소련군과 민간인 95만 명이 죽은 단일 전투로 역대 최대 사망자였습니다. 파괴력 강도 그리고 공포의 수준에서 그 어떤 전투도 비할 상대가 없습니다. 단일 전쟁으로 최대의 사망자를 낸 전쟁도 독소전입니다. 독일 450만(민간인 100만), 소련 2700만(민간인 1600만)이라는 믿기 힘든 숫자가 나왔죠. 일설에는 소련의 사망자수가 토털 3500만 명에 이른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실종자까지 포함된 수치로 저는 이게 진실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독일군은 잘 부수고 잘 죽였으며 소련군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텨 결국 전세를 역전시켰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많이 적을 죽인 독일군들이 히틀러의 말한 마디에 세뇌돼 ‘우월한 민족이 하등 한 인류’를 학살한 걸까요?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이렇게 일방적인 전쟁을 뒤집을 수 있었던 소련에게 스탈린이 없었다면 소련이라는 곰은 그 무시무시한 뒷심을 발휘했을까요? 두 질문에 대한 해답을 알려주는 좋은 책이 나와 오늘은 두 책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동안 히틀러와 관련된 책은 새로운 책이 더 이상 나올 수 있을까 싶었죠. 저는 서구 역사에서 예수님 다음으로 많이 연구된 인물이 히틀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또 새로운 책이 나왔습니다. 마약이라는 관점에서 전쟁과 히틀러의 광기를 다룬 ‘마약 중독과 전쟁의 시대’죠. 그리고 스탈린과 관련된 책은 39년 그 유명한 독소 불가침 조약 후에 치열했던 대조국 전쟁을 거쳐 53년 스탈린이 죽을 때까지 히틀러와 스탈린이 벌인 피비린내 나는 전쟁 그리고 그에 비하면 천국에 함께 간 연인들의 사랑싸움 수준인 미 소간의 냉전을 다룬 ‘스탈린의 전쟁’입니다.
전자는 독일 작가 노르만 율러가 썼고 후자는 전쟁 중에 스탈린과 한 편이었던 영국의 군사전문가 제프리 로버츠가 썼습니다. 율러는 이미 히틀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모든 것이 공개되어 공백이라고는 없는 것 같지만 실제 그가 마약중독자였고 그가 취한 마약이 전쟁의 향방을 결정했는데도 기존 역사가들은 이를 놓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후자의 저자는 스탈린이 없었으면 당연히 소련이 히틀러에게 졌을 것이라며 히틀러는 처칠이나 루스벨트처럼 대체될 수 있는 군사지도자였지만 스탈린은 대체불가능한 리더였으며 소련의 기적적인 승리의 궁극 원인이라고 평가합니다. 그리고 가장 논쟁적인 주장, 스탈린은 냉전을 설계하지도 않았고 냉전을 원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스탈린을 히틀러와 동급의 악마로 키운 서구 역사가와 언론을 비판하면서 스탈린을 인간의 크기로 축소한 것이 이 책의 특징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그가 저지른 수많은 학살과 고문을 옹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악마성 때문에 그가 얼마나 냉철한 전략가였는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죠. 이 책에서 히틀러와 스탈린에 대한 아주 재미있는 사실, 일반인들은 잘 몰랐던 사실들을 알아보죠.
1) 히틀러는 정말 언변 하나로 독일 군인들을 사지로 몰아넣었을까?
히틀러는 마약은 물론 담배까지 사회악으로 규정하며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자고 주장했던 사람이지만(히틀러는 놀랍게도 자신이 채식주의자이며 도덕성의 화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_ 전황 특히 동부전선이 불리해지자 주치의인 모렐 박사로부터 오이코딘(코카인+모르핀)을 다량으로 주사를 받고 그야말로 약발로 버텼습니다. 그리고 그 넓은 영토에서 고립된 독일군들에게도 매스 암페타민(일명 필로폰)을 공급해 약의 힘으로 싸우라고 부추겼죠. 당시 독일이라는 나라와 독일군은 약발로 움직이는 독극물 사회였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정말 동부 전선에서 독일군은 신들린 듯이 싸웠죠. 어떤 전투에서도 최소 2배 이상 많은 군대(탱크는 최댜 7배나 차이 났습니다.)를 만나 대등하게 싸우거나 더 잘 싸웠습니다. 그런데 이게 지금까지는 히틀러에게 세뇌되어서 자발적으로 죽음의 전장으로 걸어 나간 것으로 알려졌지만 율러는 그보다는 히로뽕의 도움이 더욱 컸다고 합니다. 그 추위와 고립감 속에서도 피로가 한 방에 날아가고 원기왕성해져 닥치는 대로 총을 쏠 수 있었던 힘이 마약에 있었다는 거죠. 실제 독일군은 스탈린그라드에서 마지막까지 공군을 통해 식료품 등을 공급할 때 매스 암페티만도 공수했습니다. 그러나 루프트 바페가 제공권을 잃으며 공중전에서도 소련군에게 밀리기 시작하자 43년 1월부터는 모든 물자재의 공급을 멈추었고 따라서 약의 공급도 끊겼습니다. 그토록 잘 싸우던 독일군도 히로뽕이 사라지자 소련군과 비슷한 전투력을 보였고 결국은 항복했습니다.
독일군이 2차 세계 대전 특히 군인 숫자와 무기 숫자에서 중과부적의 상황이었던 독소전에서 정말 잘 싸운 이유는 히틀러의 세 치 혀 도움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역할이 히로뽕이었다는 게 이 책의 요지입니다.
2) 스탈린은 정말 히틀러가 약속을 깨고 침공할 것을 몰랐을까?
스탈린은 정말 히틀러가 약속을 깨고 자신들을 공격할지 몰랐을까요? 기존에 책들은 몰랐다고 봅니다. 하지만 스탈린의 전쟁에서 스탈린은 이를 알았으나 전쟁이 정말 일어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 때문에 객관적인 증거들을 무시했을 가라고 추측합니다. 스탈린은 히틀러와 달리 자아도취증 환자도 아니고 여간해서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포커페이스입니다. 큰 아들 야코브가 독일군 포로수용소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아무 감정 표시를 안 했습니다. 물론 속으로는 히틀러와 독일군에 대한 증오심이 있었겠죠. 하지만 그는 절대 감정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이기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특유의 근면함으로 하나둘 해내갑니다. 그에 비하면 히틀러는 정말 게을렀던 지도자죠,
저자는 냉철한 실용주의자 스탈린이 그 많은 침략 정보들이 쏟아져 오는 가운데 히틀러의 변심을 그가 몰랐을 리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그는 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아아 올 것이 왔구나’리고 생각하며 무덤덤하게 대응 전략을 짤 수 있었다는 이야기죠. 로버츠는 그가 히틀러와 전쟁을 진심으로 피하려고 했던 것은 맞지만 이미 독일군 전체 숫자보다 많은 적군(레드 아미)을 350만 명이나 독일과 국경선을 따라 배치했다는 사실에서 스탈린이 무방비 상태에서 당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다만 스탈린은 자신의 군대를 과대평가해서 히틀러의 군대를 조기에 국경 바깥으로 밀어내고 전쟁을 전면전이 아닌 국지전으로 끝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을 거라고 봅니다. 그러나 독일군은 너무나도 강했고 그 판단 미스의 대가는 350만 정예군 중 41년 연말까지 살아남은 숫자는 단 50만 명에 불과할 될 정도로 초기에 소련군은 대패했습니다. 이 대패의 책임자는 물론 스탈린입니다.
하리코프 전투처럼 스탈린이 밀어붙인 우크라이나 탈환 전투에서 스탈린은 무려 40만 명의 소련 군을 잃었습니다. 정말 히틀러의 군대는 무적이라는 걸 깨달으며 그는 태도를 바꿉니다. 공격에 공격으로 맞서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후퇴하면서 독일이라는 호랑이가 소련이라는 큰 땅에서 갇혀 지쳐가기를 기다린 거죠. 히틀러는 현장 지휘관을 무시하고 모든 걸 자신의 천재적 직관에만 의존했던 것과는 달리 스탈린은 스탑카, 주코프, 보로실로프 등 현장의 장군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현실적으로 확률적으로 이길 수 있는 전략들만 선택했습니다. 스탈린은 이기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죠. 그러나 히틀러는 지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을 이기는 것보다 먼저 추구했습니다. 그 차이가 승패를 결정한 거죠.
3) 스탈린은 히틀러를, 히틀러는 스탈린을 어떻게 평가했을까?
스탈린의 전쟁이 흥미로웠던 이유는 어느 책에도 없는 스탈린과 히틀러의 상호 평가가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히틀러에 대한 스탈린의 평가를 들어보죠.
“저는 히틀러와 그를 추종했던 독일 국민들을 증오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히틀러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이 흐려져서는 안 됩니다. 저는 독일 국민들의 교정 가능성애 대해서 의문입니다. 그 이유는 히틀러가 우리 생각보다 훨씬 유능한 인물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유능하다고 해서 총명한 것은 아닙니다. 히틀러가 그런 케이스죠. 정치 문제에 그가 접근하는 방식은 지극히 원시적이죠, 하지만 루스벨트 대통령이 생각하듯 그는 정신병자는 아닙니다. 그가 아니었으면 독일인은 그렇게 하나의 결속력 있는 집단으로 절대 성장하지 못했을 겁니다.”
스탈린은 히틀러가 소련인들에게 한 짓 그리고 자기 자식을 죽인 일을 절대 용서할 생각이 없고 히틀러를 체포했다면 반드시 교수형에 처했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를 미친놈으로 대하는 루스벨트와 달리 그의 놀라운 선동력을 인정했습니다. 히틀러는 스탈린을 어떻게 평가했을까요? 히틀러가 스탈린그라드를 공격하기 전에 괴벨스에게 했던 말을 직접 들어보죠.
“스탈린은 입만 살아있는 윈스턴 처칠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입니다. 스탈린은 비롯 잘못된 이념이지만 그 이념 아래 1억 9천만 인구를 하나의 조직으로 재조직한 인물입니다. 스탈린이 내 수중에 들어온다면 나는 그를 살려 온천에 보낼 겁니다. 처칠이나 루스벨트는 당연히 교수형이죠.”
히틀러와 스탈린이 한 때 연인이었다면 먼저 배신한 쪽은 분명 히틀러입니다. 히틀러는 그만큼 야비하고 비열한 정치인이 맞죠. 반면 스탈린은 트루먼의 표현대로 냉혈한이라고 불릴 정도로 실용적이며 무엇보다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분명하게 알고 있었고 그것을 완전히 얻지 못할 때는 타협할 줄도 알았던 인물입니다.
독소 전쟁이 히틀러와 스탈린의 전쟁이었다면 그 둘 때문에 죽은 수천 만 명이 섭섭할 수도 있겠지만 역사는 그 두 악마의 대결로 인정합니다. 스탈린이 분명한 승자고 히틀러가 분명한 패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구 말 대로 역사에서 승리한 자는 심판받지 않기 때문에 이런 해석이 가능할 수도 있겠죠. 이 말을 한 이가 독일인의 피를 타고나 러시아의 여왕이 되어 러시아 제국을 선전했던 에카레티나 2세였다고 하네요. 참 역사는 아이러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