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넷플릭스 시리즈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라들은 전 세계 유저 중에서 권선징악을 정말로 좋아하는 민족입니다. 유난히 정의감이 투철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하도 악이 승리하는 걸 많이 보면서 일종의 판타지로 선이 마침내 승리하는 드라마를 그리워하기 때문일 수도 있죠. 그런 점에서 미드 ‘너의 모든 것’ 시리즈는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히트하기에는 힘든 측면이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희대의 사키코 패스 시리얼 킬러(Penn Badgley 분)의 1인칭 독백으로서 결국은 악이 승리하는 드라마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미국인들은 열광합니다. 그 이유는 남자 주인공이 워낙 잘 생긴 데다 지적이기 때문입니다. 서점에서 일한 덕분에 책을 많이 읽어 로맨틱한 대사를 여자들에게 수시로 날릴 수 있었던 그는 사랑하는 여자에게 집착해 그녀를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그녀를 가둬 놓은 뒤 결국 그녀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죽이는 진정한 사이코 패스 스토커 시리얼 킬러입니다. 그 과정에서 사랑에 방해가 되는 인물들도 같이 청소하죠. 그러면서 자신은 양심의 가책을 심하게 느끼며 자신은 본질은 선한 사람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모순적인 이중인격 살인마입니다. 자신의 살인을 정당화하는 진짜 사이코 패스보다 이들이 훨씬 더 위험하죠. 이들은 자신은 멀쩡한데 자신 속의 또 다른 악마 자아가 자신을 유혹해 자신을 살인자로 만들기에 자신도 실은 불쌍한 피해자라고 관객에게 항변하는 격입니다. 이보다 더 위선스런 피해자 코스프레는 없을 겁니다. 어찌 보면 주인공의 독백으로 표현되는 백팔번뇌가 없었다면 시리즈가 이렇게 장기화될 리 만무했을 겁니다. 대개 사이코 패스가 등장하면 관객들은 사이코 패스의 피해자에 공감하고 감정이입하며 그를 악마화하죠. 그러나 이 드라마는 그 반대의 괴정이 드러납니다. 특히 주인공 남성의 외모에 우호적인 여성팬들에게 그런 전이 현상이 일어나기 쉽습니다. 너의 모든 것은 국내 제목이고 원제는 You인데 이는 너를 사랑한다며 너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려고 하지만 이는 철저히 자기중심적이라는 점을 비꼬는 동시에 이 드라마를 시청하는 관객에게도 분명 주인공과 같은 사이코패스 기질이 있을 수 있다는 도발적인 제목입니다.
시리즈 4는 무대를 영국으로 옮겨 영국의 상류층에 진입한 조 골드버거가 죽이고 싶은 사람들을 하나씩 죽이고 결국 재벌까지 죽이고 재벌의 딸과 결혼해 그야말로 최고의 전리품인 사랑과 권력 부를 동시에 얻는다는 내용입니다. 시즌 5에서는 역대급 살인 행각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는 작품이죠.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에 갇혀 악인이 벌 받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이런 엔딩을 기대했을 겁니다. 주인공이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목숨을 끝내는 거라고 자신의 악마 분신에게 일갈한 뒤 스스로 테임즈 강 다리에서 떨어져 죽는 모습에서 안도의 숨을 실 수도 있었겠죠. 그러나 그 기대는 처절하게 무너집니다. 후에 이어진 반전에서 오직 정의감만으로 드라마를 보려는 많은 사람들은 절망감을 느낄 수준에 이릅니다. 억제할 수 없는 살인 욕구에 잘 생긴 외모에 상냥한 매너에 언제든지 여자를 유혹하는 문학적 지식에 이제는 권력과 돈을 갖춘 이 무적의 사이코 패스를 막을 방법이 시즌 5에 나올까요? 넷플릭스는 결국 악 그중에서도 잘 생긴 악은 최종 승리한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게 진짜 목적일까요? 저는 그럴 것 같습니다. 팬 특히 여성팬들이 그를 진심으로 응원하니까요. 예쁘면 모든 게 용서되는 게 남성들의 여성관이라면 여성들이 잘 생기면 모든 게 용서된다고 해서 문제 될 리는 없죠.
이 드라마가 뻔한 권선징악이 아니라 이에 대한 조롱과 야유가 가능해진 데에는 원작 소설의 탄탄함과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주인공의 분열은 가속화되고 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그 솜씨가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각본가가 도스토옙스키의 주요 작품들, 분신, 죄와 벌, 지하로부터의 수기 등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하고 있으며 에드가 알란 포(고자질 하는 심장, 군중 속의 사람), 애거서 크리스티 등의 추리 소설들이 실제로 언급되며 창조적으로 인용되고 있습니다. 꽤나 지적인 드라마라는 이야기죠.
메타버스 NFT 인스타그램 팔로워 상대가 읽으면 바로 삭제되는 비밀 앱 등의 최신 기술이 등장하면 도스토옙스키 소설의 주인공이 어떻게 변신할까라는 질문에 궁금하신 분들은 이 드라마를 꼭 보시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미스터리와 추리물이 좋은데 뻔한 공식으로 끝내려는 그런 작품들이 싫으신 분들에게도 추천합니다. 모처럼 머리를 쓰면서 생각하며 볼 수 있는 좋은 넷플릭스 시리즈입니다. 사실 넷플릭스는 그동안 “닥치고 시청”을 외치면서 무조건 자극적으로 시작부터 세게 치고 나가 가려고 했죠. 인내심이 갈수록 줄어드는 치청자의 이탈을 막았던 측면이 있었는데 이 드라마는 기존의 넷플릭스 드라마와는 결이 다릅니다. 무척 조용하면서도 격렬하게 드라마를 이끌어갑니다. 어느 면에서는 고전적이면서 현대적인 작품입니다. 과연 이런 외모의 천재이면서 운도 좋은 사이코 패스 시리얼 킬러가 존재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은 들지만 만약 있다면 그는 바로 조 골드버거를 모방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조 골드버거는 매력적인 캐릭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