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압구정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성형외과입니다. 그리고 현대 아파트가 두 번째 마지막으로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 선물 옵션 투자에서 가장 많이 돈 번 압구정 미꾸라지가 떠오릅니다. 압구정 미꾸라지는 남들 다 망할 때 하도 잘 빠져나가서 붙여진 별명입니다. 실제 모 증권사의 압구정 지점 증권맨이었죠. 셋 다 비싸다는 공통점이 있지요. 그리고 셋 다 가진 자의 자유와 못 가진 자의 욕망이 떠오릅니다. 어쩌면 자유보다 못 가진 자의 욕망이 더 클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압구정 하면 오렌지 족이니 뭐니 하면서 욕을 해대고 한 편으로는 부러워 미치겠는 이중성이 존재하죠.
마동석 정경호 주연의 영화 ‘압구정’은 2007년 압구정동=성형 타운이 되기 시작하는 무렵의 사람들과 욕망 그리고 그 욕망 속에서 밀고 당기는 인간관계가 잘 드러나는 잘 만든 코미디 물입니다.
저는 아내의 학원이 압구정동에 있고 저 또한 압구정동에서 강의를 여러 곳에서 했기 때문에 압구정 3호선이 집 근처 역 다음으로 낯익습니다. 그 안에는 거의 성형외과 광고로 도배를 하는데 놀랍게도 성형외과 원장들은 거의 전부 서울 의대를 나왔습니다. 서울의대에서도 가장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안과 피부과 성형외과를 선택한다고 하지만 이렇게 많은 서울의대 졸업생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영업하는 곳은 이곳 외에는 없을 겁니다. 그런데 많을 때는 한 해에 10명 이상 서울대 의대를 수시에 보낸 적이 있는 저로서는 단 한 명의 자기소개서에서도 성형외과 의사가 되려고 서울대 의대에 지원한다는 내용을 본 적이 없습니다. 혹시 학생들이 거짓말을 한 건 아닐까요? 아니면 순수했던 그들, 압구정 성형외과 원장이 될 바에는 차라리 낭만 닥터 김사부로 살겠다는 순수와 열정이 대학에 가서 세속에 물들면서 변화한 걸까요? 아니면 다른 제3의 요인이 있을까요? 저는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서울의대 지균 전형으로 수석 합격한 여학생이 커서 소아과 의사가 되고 싶다고 자소서에 쓰고 면접 때도 말했다는데 현실은 공부를 잘 하든 못 하든 어느 쪽도 자발적으로 소아과 의사가 되려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모든 대학 병원에서 지원자 미달입니다. 고 3 때까지 자소서 면접 학생부에 담긴 나는 어디까지나 의대 교수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나일뿐이고 내면의 나는 본격적으로 대학 들어가서 드러나는 셈이죠.
저도 소문을 들어 레지던트 마치고 첫 직장을 압구정동으로 정한 성형외과 의사들 페이가 연 10억 원에 이른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원장들은 보통 30~40억, 많을 때는 1년에 100억 정도 벌어간다고 합니다. 영화 압꾸정에서 1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마동석이 빼돌린 돈이 130억 원이었다는 사실은 잘 나가는 압구정 성형외과 원장들의 수입이 얼마 정도일지 대강 파악하게 해 줍니다. 대한민국 의사 평균 소득이 월 2억 원 걸 고려하면 확실히 성형외과 의사들은 돈을 많이 법니다.
그런데 성형외과에 대한 의식은 그리 좋지 못합니다. 불편한 편의점에서는 대리 수술을 하던 의사가 단기 기억 상실증에 빠져 편의점 알바로 일하는 장면이 나오고 신문 방송 뉴스에서는 대리 수술 탈세 바가지요금 불법 약물 투여 등 온갖 나쁜 소식들로 도배를 합니다. 영화에서도 병원장과 사무장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악이 한 번씩은 등장하죠. 그런데 밉지가 않습니다. 그게 바로 마동석의 힘입니다. 마동석 하면 돈만 밝히지 않고 끝까지 의리를 챙길 것 같은 그런 신뢰를 주니까요. 영화는 관객의 기대대로 시작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끝난다는 점에서 기가 막힌 반전이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영화는 그런 면에서 단순한 코미디 그 이상은 아니었지만 자녀를 의대에 보내고 싶은 분들은 MMI 면접 거리를 하나 얻을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리고 보고 나서도 드는 생각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왜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많은 우수한 인력이 성형외과로 몰리고 그 원인을 제공하는 예뻐지고 싶은 욕망, 잘 생겨지고 싶은 욕망은 왜 그리 강한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는 거죠.
저는 그 욕망 배후에 바로 이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 특유의 인정 욕망이죠. 모두가 성형외과를 꿈꾸면서 자기소개에서는 절대 발언하지는 않는 이유도 결국은 내가 최고라고 인정받고 싶은 욕망 때문입니다. 의사들도 이럴지언데 일반인들은 어느 정도나 인정 욕망이 강할까요? 한국에서는 타인의 시선이 지옥이라는 사르트르의 말이 철저하게 무시되는 실존주의의 반대인 타인이 인정하는 범위 내에서 나의 실존이 결정된다는 믿음이 공유되는 사회입니다. 실존이 사실상 없죠. 갑을 혹은 가진 자 못 가진 자로 나뉘는 왜곡된 관계만이 있죠. 그 왜곡된 관계는 인간의 내면 같은 것은 필요 없어 오직 상대에게 잘 생겼다 예쁘다는 인상만 주면 된다는 왜곡된 믿음으로 이어져 자신의 내면이 아니라 외면을 돈으로 바꾸는 데(가꾸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애면글면하는 것입니다. 이 시스템은 사실 태어나기 이전에 주어졌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90년대부터 시작해 2000년도 이후에 본격적으로 개화됐다는 점에서 원래부터 외모지상주의는 한국인들에게 내재된 심성이 아니라 외부에서 이식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주변을 둘러봐도 딱히 종주국이라 할 만한 외국이 없습니다. 일본에서도 물론 영화에서처럼 중국에서도 그리고 미국에서도 예뻐지려고 한국에 옵니다. 한국은 성형외과의 천국이고 한국 내에서 벌어지는 기승전 의대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아픈 사람을 고쳐주겠다는 착한 마음으로 표현되지만 어쩌면 정말 공부 열심히 해서 성형외과 의사가 되어 돈을 갈퀴로 긁어모으고 싶다는 숨은 마음이 더 크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죠. 그래서 학생들은 자소서는 물론 학생부에도 성형외과 이름 꺼내기를 싫어하고 면접 때도 지원동기에서 절대 안 밝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 속물로 몰려 불합격되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그렇다고 의대 교수가 우수한 학생을 성형외과 의사가 되어 돈 많이 벌고 싶다고 대답했다고 해서 그 이유 하나만으로 뽑으려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부정적으로 볼 여지는 있죠. 그러나 저는 그런 일은 잘 알어날 것으로 봅니다. 정 걱정된다면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한국인은 누구에게는 인정받고 싶은 인정 욕망이란 게 있습니다. 아니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한 편인지도 모릅니다. 한국에서의 인정은 내면의 덕을 보는 게 아니라 외모의 우수함으로 평가받는 경향이 강합니다. 외모로 불이익을 받거나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주는 일이 어찌 보람이 없을 것이며 이를 추구한다고 해서 속물이라고 비판받아 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외모에서 오는 콤플렉스는 정신 건강에 해로우며 저는 그런 면에서 외면과 내면을 함께 고치는 성형외과 의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