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운명은 습관이 만든다 우디 앨런의 ’원더 휠‘

by 신진상
원더 휠.jpg

우디 앨런에게는 천재 감독이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럽게 따라붙죠. 할리우드 시스템 속에서 자기가 찍고 싶은 대로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거의 몇 안 되는 감독입니다. 우디 앨런은 거의 모든 작품의 시나리오를 썼고 본인이 단편 소설집도 몇 권 저술한 글이 되는 사람입니다. 그 글솜씨를 영화적 상상력으로 발전시켜 카메라에 담아 사람들에게 보여줄 시각적 전달력 또한 우수하죠. 그리고 그 자신이 클래식 재즈 등 음악광이라 상황에 맞는 적절한 음악을 구사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습니다. 여주인공이 바람피우는 장면에서 나오는 ‘키스 오브 파이어’ 같은 경우는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이야기꾼으로서 이미지 메이커로서 상황 전달자로서 음악 선곡자로서 무엇보다 관객들의 집중력을 빨아들이는 심리극의 달인으로서 그는 천재성 있는 영화감독의 표상인 인물이죠.

그의 초기 걸작은 영화 속에서 주연 배우가 걸어 나와 대공황의 후유증에 빠진 한 젊은 여성을 영적으로 달래준다는 영화 ‘카이로의 붉은 장미’고요, 중기 걸작은 케이트 블란쳇에게 아마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 준 ‘블루 재스민’ 그리고 말년의 걸작이 2018년에 나온 케이트 윈슬렛 주연의 영화 ‘원더 휠’일 것 같습니다. 세 영화 모두 비운의 여주인공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그녀가 비극의 길로 접어든 계기는 저마다 다릅니다. 카이로의 붉은 장미의 미아 패로우는 환상, 블루 재스민의 블란챗은 질투, 원더 휠의 윈슬렛은 습관입니다. 이 셋이 여자의 운명을 비극으로 만드는 세 가지 주범입니다. 이 중에서 오늘은 말년의 걸작 ‘원더 휠’에 대해서 자세하 알아보죠.

2018년 작 ‘원더 휠’은 50년대 미국 뉴욕이 배경입니다. 코니 아일랜드에 있는 놀이공원에서 원더 휠을 돌리는 짐 벨루시(블루스 브라더스의 형 존 벨루시의 동생이죠.)와 그의 새 아내 윈슬렉 그리고 그녀의 전 남편의 아들과 아버지가 반대하는 결혼을 해서 아버지와 절연했다 이혼하고 아버지를 찾은 짐 벨루시의 딸 등 4명이 주요 등장인물입니다. 네 명의 인생 모두 낙오자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낙오자 정서 실패자라는 인식이 가족을 지배하고 있고 부부는 각자 자신의 자식만 챙기면서 갈등은 쌓이죠. 윈슬렛의 아들은 습관성 방화범입니다. 점점 더 장난이 커지고 사람이 다칠 지경에 이르죠. 그런 의붓아들을 매로서 다스리는 게 양아버지 짐 벨루시입니다. 짐 벨루시는 딸을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딸이 잘못된 배우자를 선택하자 사랑하는 딸을 다시는 보지 않기로 결심하며 술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슬픈 인생입니다. 윈슬렛은 더 기구합니다. 배우 지망생이었던 그녀는 삼류 배우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가 현 남편을 만나 새 둥지를 튼 뒤, 자신의 재능을 죽이고 음식점 웨이트리스로 일하다 자신과 잘 맞는 삼류 희곡 작가와 만나 열애에 빠지죠. 딸은 자신을 경찰에 고발했다는 이유로 아내를 죽이려 하는 전남편을 피해 의절한 아버지를 찾을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톨스토이의 말 대로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한 거죠. 그러나 그 불행의 이면에는 습관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아들의 방화벽, 술만 먹고 아들과 아내를 패는 남편 모두 습관의 희생물입니다. 바람기를 버리지 못하고 항상 새 연인을 찾는 윈슬렛도 습관이 만든 희생양이고요, 아버지의 말을 따르지 않고 실패한 결혼 생활을 하다 결국 아버지를 찾은 딸 역시 습관의 노예입니다. 잘못된 습관이 인생과 한 가족을 얼마나 망칠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게 이 작품이죠.

인간의 결점이 인간을 비극으로 이끈다는 점에서 우디 앨런의 영화는 셰익스피어의 극을 중심축으로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을 보조축으로 삼아 신비하게 돌아가는 원더 휠 같습니다. 윈슬렛은 블루문의 블란쳇처럼 파멸로 치닫는데, 그 계기는 질투 때문이었습니다. 전 남편의 딸을 죽이려고 나타난 청부살인업자들로부터 처음에는 자신의 친 딸인 것처럼 보호본능이 생겨 거취를 모른다고 잡아떼며 목숨을 구해주었던 그녀가 진짜 위기상황(결국 의절한 아버지를 찾아왔다는 사실을 청부살인업자들이 알게 된 이후 다시 나타남)에서는 그녀를 버립니다. 그녀가 가려고 한 장소에 전화를 걸어 피하라라고 해주려다 말문을 닫죠, 그 이유는 맥락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가 사랑하던 희곡 작가가 자신의 의붓딸과 사랑에 빠져 여자로서 질투를 느꼈던 거죠.

공중전화로 달려가서 금발 머리의 젊은 여성을 찾아 달라고 가게 주인에게 부탁하다가 결국 전화기를 내려놓는 모습을 보면서 관객들은 슬픈 엔딩을 떠올리게 되죠. 딸밖에 모르던 딸 바보 아버지는 자신의 딸이 집에 들어오지 않자 꺼이꺼이 울며 다시 술을 마시고 딸을 찾아 헤맵니다. 술주정뱅이에 일자무식에 툭하면 아내와 의붓아들을 패는 그도 친 딸에게는 지극정성이었고 그녀가 야간 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며 영어 교사가 될 수 있도록 수업료를 모으는 지극징성의 아버지였습니다. 그런 남편에게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하지만 사랑하던 남자 친구는 진실을 알고 그녀에게 “인간으로 어떻게 그럴 수 있냐? 마지막”이라는 선언을 하면서 떠납니다. 그러자 그녀 역시 술에 의존합니다. 그녀는 그 남자와 함께 코드가 안 맞는 남편도 버리고 자식도 버리고 둘만 달아날 마음이었죠. 항상 새로운 사랑을 찾고 현실을 떠나버리고 싶은 그녀의 충동은 그녀의 본능이라기보다 습관에 가깝습니다. 습관 그것도 나쁜 습관은 매력적이고 중독성이 있습니다. 대개의 인간은 좋은 습관보다 잘못된 습관이 훨씬 많은 편이며 특히 우디 앨런의 영화에 등장하는 하류 인생들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관객들은 우디 앨런이 제시하는 배우들의 슬픈 비극을 보면서 그들의 불행 이면에 처한 습관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죠.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차이는 1차적으로는 돈 때문이겠죠. 그러나 돈을 포함해 행복이 자신의 인생에 얼마나 자주 방문하는지 따져보면 그 이유는 돈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돈이 있을 때마다 행복이 찾는 것은 아니거든요. 반대로 이런 생각을 해보아야 합니다. 내게서 행복이 떠나는 순간은 언제인가? 그것은 돈이 없을 때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비율은 내가 잘못된 습관에서 헤어져 나오지 못할 때입니다. 제목은 원더가 들어가지만 실제로 제목은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처럼 역설적이고, 실제 우디 앨런이 속으로 생각한 제목은 ‘습관은 인간을 어떻게 불행으로 이끄는가?’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이런 이야기를 한 게 이 영화가 처음은 아니라는 거죠. ‘블루 재스민’에서 아내 블란쳇으로부터 배신을 당해 감방에 가게 된 알렉 볼드윈 역시 돈 번 남자들이 피할 수 없는 습관인 아내 말고 다른 여자 특히 젊은 여자에게 한 눈 팔기 때문이었습니다. 블란쳇이 불행해진 데에는 남편이 돈을 벌자 돈을 물쓰듯하면서 습관적으로 사치품 구매에 돈을 쓰고 가난한 동생 내외를 무시하는 모습도 습관 때문이었죠. ‘카이로의 붉은 장미’에서 행복-불행을 반복하다 결국은 불행으로 떨어지는 여성 미아 패로가 행복을 위해 선택한 것은 영화관에 가는 습관 때문이었고요, 사랑했던 남자 주인공이 다시 영화 속으로 들어가 버려 슬픈 현실에 다시 처한 그녀의 탈출구도 또 다른 영화였습니다. 새 영화 진저 로저스와 프레드 아스테어 주연의 영화 탑 햇‘을 다시 반복적으로 보면서 영화로 고달픈 인생을 잊으려는 것 역시 습관의 산물이었죠. 최근작 ’레이니 데이 인 뉴욕‘에서 남자 친구 티모시 살라메를 놓치고 자신이 좋아하는 직업인 학교 신문 영화 담당 기자를 선택한 여주인공 엘르 패닝가 결국 남자 친구를 놓친 이유도 자신의 습관(셀레브리티라면 환장을 하는)에서 벗어나지 못해 결정적 고비마다 남자가 자신에게 멀어지게 한 결과입니다. 어찌 보면 우디 앨런의 모든 영화는 주인공들이 비극으로 끝나고 비극은 이미 일상 속에서 습관적으로 형성된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든 작품이 변주곡이죠. 어떤 점에서 우디 앨런은 예전에 전성기에 찍었던 작품들을 슬프게도 자기 복제하는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우디 앨린이 습관의 노예일 수 있겠습니다. 습관, 특히 잘못된 습관에 안 빠지려면 결국 새로운 생각을 끝없이 해야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는 새로운 생각으로 자신을 바꿀 생각보다 자신이 만든 성취물에 극도의 자기애에 빠져 자아도취와 영화 속 자신의 분신들인 등장인물에 자기 연민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습관의 가장 안 좋은 점은 결과를 당연시하고 더 나아질 생각을 하지 않으며 자가발전을 게을리한다는 점이죠.

우디 앨런 영화는 언제 봐도 좋고 혼자 봐도 좋고 여럿이 봐도 좋지만 보고 난 사람들이 한결 같이 하는 말, 우디 앨런 영화는 왜 이리도 서로 비슷할까라는 질문에 우디 앨런은 해답을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 뭐라고 답할까요? “그게 인간이고 인생이야.”가 아닐까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비틀스의 노래로 공포의 하락장을 견디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