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5일 어린이날 11시간을 연속으로 넷플릭스에 투자해 퀸 메이커를 보았습니다. 김희애와 문소리의 조합이 환상적이라는 평가와 정치에 대한 묘사가 너무 구식이라는 평가가 공존하더라고요. 당연히 재미있으니까 11편을 연속으로 보았갰죠, 한국도 ‘하우스 오브 카드’ 같은 시리즈 정치 드리마가 등장할 수도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특히 정치적으로 어느 정당에도 부채감이 없는 넷플릭스에게는 가능한 시도죠. 한국에서는 MBC가 만들면 여당이 반발할 거고 종편이 만들면 야당이 싫어할 테니 정치 드라마는 민감한 주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정치 드라마가 아주 참신하기가 어려운 이유가 있어요. 특히 한국은 미국처럼 두 정당이 번갈아가면서 집권하는 양당제 국가여서요, 국민에게 또 다른 선택지가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만들어지는 정치 영화는 사실 그 밥에 그 나물일 확률이 크죠. 그 전형성이라는 측면에서 ‘퀸 메이커’ 또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허구의 드라마를 보면서 현실 정치와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정치의 차이는 거의 모든 정치 드라마가 똑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현실정치는 선과 악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정치와 정치 드라마의 가장 큰 차이는 영화와 현실의 차이 그대로입니다. 현실에서 선과 악은없거나 구분이 애매모호하지만 영화는 확실하게 선악이 있죠. 정치 영화는 더 합니다. 종교에서 말하는 완벽한 선, 예수 그리스토 급의 선을 10이라 하고 그 반대로 히틀러와 스탈린이나 사이코 패스 시리얼 킬러를 0이라 하면 한국의 정치에서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거의 평균값인 5에 위치할 겁니다. 사실 국민 다수, 특히 중도층의 생각도 저와 다르지 않을 거예요. 정치에서 자신들이 악이라고 주장한 사람은 히틀러의 나치를 포함해서 아무도 없었을 겁니다. 대부분은 선이라고 주장하며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죠. 정치에서 악은 적의 다른 말일 뿐입니다. 그런데 퀸 메이커는 완벽한 선 문소리, 완벽한 악 류수영과 서이숙 그리고 완벽한 악에서 완벽한 선으로 이동한 김희애까지 선이면 선, 악이면 악이지. 선과 악 사이의 중간 지대가 없습니다. 시리즈는 완벽한 악에서 완벽한 선으로 변신한 김희애의 연기에 사실상 모든 걸 건 김희애의 모노 드라마나 다름없는 설정으로 출발했습니다. 마치 히틀러 밑에서 2인자로 유대인 학살을 지휘했던 힘러가 히틀러를 배반하고 쉰들러가 되는 일은 현실에서 절대 벌어질 수 없지만 영화에서는 흔하죠. 그런 영화가 워낙 많다보니 이 시리즈가 진부하고 신선하지 않다는 평가가 나오는 겁니다. 김희애가 악에서 선으로 갈아 탄 이유는 양심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을 죽이지는 않는다는 나름의 레드 라인이 자신으로 인해 한 여성이 억울하게 죽는 걸 목격하면서 변심하고 완벽한 선인 코뿔소 변호사에게 달려가 자신이 하이에나에서 같은 코뿔소로 변신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하죠. 그리고 악을 징벌하기 위해 자신이 악이었을 때 써먹었던 방법 이른바 권모술수(영화에서는 이미지 메이킹으로 표현)는 그대로 사용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들, 에를 들면 간호법, 검수완박, 경중안미 혹은 안미경세, 탄소중립, 임대차3법 이런 쟁점들이 선과 악의 관점으로 해결이 가능한 아니 그런 관점으로 볼 여지가 있는 이슈들인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현실 정치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문제는 철저하게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라 이익과 손해의 관점에서 보는 게 맞습니다. 현실 문제는 개인 혹은 집간 간의 갈등이고 어찌 보면 정치는 이해관계가 다른 집단의 같등을 통합한다는 명분으로 실제는 한 쪽의 편을 드는 행동에 불과하죠. 정치에 따라붙은 정의니 불의니 하는 흔히 말하는 가치와도 저이는 그다지 상관없을 수도 있습니다.
▶네거티브 노 포지티브 노 불만이 판세를 결정한다
선거는 정치의 전부는 아니지만 아주 중요한 절차죠. 사실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정치의 거의 전부하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모든 정치 드라마는 선거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물론 민주주의 국가에서 만드는 정치 드라마만 그렇다는 이야기죠. 독재 국가의 정치 드라마눈 안 말든지 그냥 스트롤 맨에 대한 개인 숭배로 끝나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선거 특히 선거 전략은 자신이 더 나은 후보라고 주장하는 포지티브 방식과 상대가 더 나쁜 후보라고 주장하는 네거티브 장식이 있죠. 우리는 네거티브=선거라는 공식이 성립될 정도로 정치인들과 정치인을 뽑는 국민들이 네거티브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여와 야 할 것 없이 항상 네거티브로 싸우고 사실상 네가티브가 당선자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얼마나 열성적인 지지자가 많으냐가 판세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얼마나 싫어하는 사람이 적은가가 판세를 결정하게 된 거죠. 무당층이나 중도파는 양당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많습니다. 한국 정치는 팬덤보다는 비토로 설명하는 게 맞습니다. 다수는 정치를 애정이 아닌 혐오의 대상으로 봅니다. 우리는 한 정당을 지지하는 소수, 그리고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역시 소수 그리고 두 정당을 모두 싫어하지만 더 싫은 후보가 떨어지기를 바라면서 내가 덜 싫어하는 후보를 찍는 다수로 구성된 혐오의 정치 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실 지난 대선만큼 이런 추세가 두드러진 선거는 없었죠. 이 드라마는 정치 드라마이면서 한국의 정치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현실 정치를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극단적인 선악 이분법과 극단적인 네거티브를 섞여서 시청자들에게 진정한 정치 막장을 선사합니다. “아무리 한국 정치가 막장이라고 해도 그렇지. 이건 좀 심하다”고 말할 정도로 막장에 막장으로 대응합니다. 막장 드라마에 빠지지 않는 네 가지, 재벌, 불륜, 혼외자식 그리고 복수까지 모두 갖춘 이 드라마는 한국에서 정치 드라마가 자리를 잡으려면 막장과 손잡을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증명해줍니다.
모름지기 정치인은 딱 두가만 알면 됩니다. 내 적의 약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뭐를 원하는지죠. 전자는 여자, 자식, 부동산 등이 되겠죠. 후자는 대부분 돈이며 간혹 일부가 복수를 원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복수를 하려고 해도 결국은 돈이 필요합니다. 시리즈 막판에는 네거티브의 끝판왕쯤 되는 자녀 학폭 문제가 터지고 판세를 뒤집기 위해 교육감 출신 시장 후보에게 문소리 아들의 학폭의 진실을 공개하고 후보자 지지를 외치며 사퇴하도록 할 때 돈이 필요했죠. 그 돈은 김희애가 은성 그룹의 장녀로부터 받은 겁니다. 이 돈이 결국 부메랑이 되어 김희애 자신이 감방에 가도록 만들었지만 그것도 실은 진정한 악 은성 그룹의 손 회장을 쓰러뜨리기 위해 자기 몸을 던진 복수극이었죠.
선거에는 항상 혼탁이란 말과 네거티브란 말이 따라붙는 게 정상이지만 실제 네거티브가 판세를 결정할까요? 저는 불만이 한국 정치의 대세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볼 때는 결국 현실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 후보가 누구냐에 상관없이 정권교체 혹은 정권재창출이 이루어지는 게 한국 정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사실 지넌 대선 전까지 문재인 대통령은 지지율이나 의회 사법부 언론을 완전 장악한 거의 총통급의 권력을 휘둘렀기에 누구나 더민의 정권 재창출이 무난하게 달성될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헌데 전혀 다른 결과가 펼쳐졌죠. 여러 이유가 제기되지만 집값 상승으로 촉발된 MZ 세대의 불만이 가장 큰 이유라는 게 중론이죠. 특히 MZ 세대 남성들이 국힘의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했는데, 그 이유는 집을 마련하는 것이 전통적으로 남자 즉 신랑의 몫이었기 때문입니다.
▶실제 정의나 공정이 아닌 경제가 선거를 결정하는 이유
우리 나라는 한 쪽이 정의 공정성 복지 등의 진보 아젠다를 독점하고 있고 다른 한 쪽은 안보와 미국과 동맹을 독점하면서 두 진영이 가치를 놓고 싸우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 민족이 원래 평등을 선호했고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픈 민족이라 우리나라는 진보가 주로 집권하고 어쩌다 보수가 집권하는 유럽에 가까운 정치 지형도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상황은 그 반대입니다. 대한민국 76년 중에 진보가 집권한 시기는 15년이고 나머지는 다 보수라고 봐야 하니 그야말로 압도적이죠. 여론조사만 하면 사람들은 공정성과 민주 이런 가치들이 지지 정당을 결정하는 요인처럼 말합니다. 한국 선거가 가치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현실 경제에 대한 불만이 투표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결정타이기 때문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 즉 우리 집의 경제 사정이 지난 5년간 나아졌나 아니냐에 따라 표심은 결정됩니다. 고도의 이미지 메이킹 이런 것은 사실 결정적인 요소가 아니죠. 지금 윤석열 정부의 지지율이 30%대에 불과한 이유는 겉으로 알려진 외교 문제 때문이 아니라 제가 볼 때는 물가가 진짜 원인일 수도 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정말 물가가 많이 올랐습니다. 그런데 이 정부는 물가 잡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물가는 주로 자영업자들이 올리는데, 자영업자들이야말로 현 집권당을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세력이기 때문입니다. 제 주변을 보면 사무직 노동자들과 그 가족이 야당에 대한 지지율이 높고 자영업자일수록 여당을 지지하는 비율이 높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자영업자들에게 물가 제발 그만 올리라고 대통령이 호소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물론 지난 정부 몰락의 결정타인 부동산은 잡았지만 5년 안에 물가를 잡지 못한다면 이번에도 5 년만에 정권이 교체될 수가 있습니디.
▶ 드라마처럼 양심과 정의가 현실 정치에서도 승리하려면
실제 정치 드라마는 민심이나 여론이 얼마든지 조작 가능한 것처럼 그려지지만 이는 극적 재미를 위한 기교일 뿐 현실 정치에서는 민심이 여론을 만들지 여론이 민심을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 민심은 거의 언제나 돈 문제가 우선입니다. 86세대에서 MZ세대로 내려오면서 그 경향은 더욱 더 강화되고 있죠.
드라마가 현실 정치를 그대로 반영할 필요는 없지만 현실 정치와 드라마의 정치가 다르면 다를수록 드라마의 메시지 즉 교훈은 무력해집니다. 주인공인 김희애의 변심의 동기가 된 양심, 그리고 코뿔소 변호사 문소리를 위기를 몰아넣은 김화숙의 변심과 이에 대한 양심의 가책 후 다시 변심까지 이 드라마의 모든 에피소드는 주제 면에서 단 하나의 계명을 가르칩니다. “양심적으로 살라 그래야 좋은 세상이 온다”
그런데 재벌의 마름으로서 재벌이 싼 동을 양심을 언제든 버리면서 치워간 김희애가 실제 인물이라면 눈앞에서 부하 직원이 억울하게 죽는 장면을 목도한 뒤 어떤 선택을 할까요? 이미 양심을 버린 사람이 자신이 설정한 레드 라인을 넘었다고 잃어버린 아니 스스로 버린 양심을 되찾아 자신이 누려온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지금까지 자신이 만들어낸 거대한 악 혹은 똥과 맞서 싸울 수 있을까요? 저는 드라마니까 가능하지 현실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에외는 있습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일반인이 내가 누린 모든 것을 버리고 대신 양심을 선택한다는 게 지극히 비현실적이지만 특별한 감정 예를 들어 죄책감까지 결합하면 김희애처럼 변할 수도 있습니다. 양심은 버리고 잊고 살면 되지만 죄책감이라는 감정은 수시로 나타나서 자신을 괴롭히기 때문입니다. 김희애가 한이슬의 납골당을 찾는 장면이 나오지만 드라마가 너무 빠르게 진행되다 보니 김희애의 변심에서 실제 작용한 죄채감의 무게가 조금 덜 전달된다는 아쉬움이 드네요. 사실 인간이라면 그래야 마땅하겠지만 양심은 “양심 갖고 살라”라는 말 하나로 부활하는 게 아닙니다. 양심의 부활을 위해서는 양심을 포기했던 이가 피해자의 불행에 자신이 직간접적으로 기여했다는 죄책감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리고 드라마에서 부족한 것이 하나 더 있는데, 그녀가 변심해서 양심을 되찾으려면 제가 볼 떼 부하의 죽음을 눈앞에서 본 뒤 발생한 죄책감 외에 한 가지가 더 필요합니다. 왜 그렇게 복잡하냐고요? 그렇게 쉽게 사람이 안 바뀝니다. 생각의 시간 즉 자신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죄책감이 자신을 더욱 더 옥조여 와야 결국 항복하고 자신을 바꾸는 게 인간입니다. 그 고뇌와 번뇌와 성찰의 과정이 생략된 채 갑자기 양심 0에서 양심 10의 인간으로 돌변하면 시청자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죠.
이 세 가지가 아니라면 인간은 칸트처럼 양심대로 사는 게 아니라 본능대로 사는 존재로 여전히 기꺼이 남을 겁니다. 양심과 정의가 드라마처럼 승리하는 세상을 만들려면 양심과 정의 대신 편리를 추구하는 다수의 삶을 바꾸어야 하는데 양심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죄책감에 성찰까지 포함되어야 하니 참으로 어려운 문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