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의 본질에 대한 통찰 ‘나이트메어 앨리’

by 신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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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에르모 델 토로 감독은 걸작과 졸작을 넘나들며 기복이 심하다는 점에서 젊은 리들리 스콧이라 부를 수 있겠습니다. 최고 걸작인 ‘판의 미로’와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셰이프 오브 워터’는 분명 걸작이고요 ‘헬보이’나 ‘미믹’, ‘블레이드 2’는 졸작은 아니지만 실망작에 가까운 작품들이죠. B급 정서랑 거리를 두고 진지하게 찍을 때 그는 걸작에 가까운 파괴작을 만들어 냅니다. 이번에 공개한 브래들리 쿠퍼와 케이트 블란쳇 주연의 ‘나이트메어 앨리’는 진지하게 찍었다는 점에서 걸작의 가능성이 좀 더 높은 작품이죠.

시간적 배경은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날 무렵의 미국 남부입니다. 장소는 유랑극단이고요, 이곳에 취업한 한량 브래들리 쿠퍼는 자신의 숨은 재능 사기꾼으로서의 천부적 자질을 발견하고 이를 극대화시키는 과정에서 현대 심리학의 도움을 받습니다. 여기에 사기의 최종 종착자인 심령술까지 접목시킨 뒤 크게 한몫을 챙깁니다. 물론 이 와중에 뒤탈도 있었죠. 계획은 언제든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나 뜻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신을 만날 때 거짓말 탐지기 테스트까지 실시하는 의심이 많은 부자를 거짓 심령술로 완전히 농락하기 직전에 일이 꼬입니다. 부자가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했던 여인의 유령(실은 유령으로 착각한)을 보고 흥분해 달려가면서 일이 뒤틀리고 쿠퍼는 결국 살인자가 되죠. 사실 사기꾼에서 살인자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습니다. 사기가 잘 안 되면 사기꾼은 누구나 살인자가 될 수 있죠.

영화에서는 브래들리 쿠퍼의 독심술만큼은 객관적 근거가 충분한 능력으로 설명합니다. 뛰어난 추리 능력에 근거한 객관적이고도 논리적인 사고의 결과물로 보고 있죠. 압권은 브래들리 쿠퍼가 자신과 공범이 되었다 자기를 배반하는 심리학 박사 캐이트 블란쳇의 작은 손가방에 미니 권총이 숨겨져 있음을 가방 속을 보지 않고 맞힌 일입니다. 영화에서는 그가 그렇게 짐작한 명백한 근거가 제시됩니다. 그는 이 대목까지는 순수하게 자신의 능력으로 성공합니다. 뛰어난 추리 능력 덕분에 유랑극단을 급습한 경찰 간부를 설득해서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지역 유지인 판사의 마음을 사로잡았죠. 여기서 그는 욕심이 크게 생겨 사기를 제대로 치려고 작정합니다. 판사가 다른 부호들을 소개해 주면서 그는 독심술사를 넘어 심령술사로 거듭나는데 이게 사단이었습니다.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 강신술까지 재현해내는 놀라운 능력자로 변신하죠. 델 토로 감독은 이를 명백한 사기로 그리고 있죠. 판사는 아들이 자신의 말을 듣고 군대에 나가 죽은 뒤 심한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고 이런 정보를 케이트 블란쳇으로부터 입수한 그는 죽은 아들의 영을 소환해내 판사 부부의 영혼을 달래 줍니다. 그런데 문제는 항상 돌발적으로 일어납니다. 그 변수가 사람을 미치게 하고 관객들의 극적 몰입도를 높여주죠. 판사의 아내가 결국 남편인 판사를 권총으로 쏴 죽이고 자신도 자살한 겁니다. 이 소식을 들은, 판사가 소개해 준 대 부호의 경호원이 낌새를 채게 되면서 상황은 꼬이죠. 결국 그는 경호원을 죽이고 사기를 친 돈을 나누기로 했던 케이트 블란쳇에게 사기를 당하면서 경찰을 피해 달아나니는 신분이 됩니다. 달콤한 꿈은 악몽으로 바뀝니다. 그는 영화 처음 장면처럼 3류 유랑 극단에 취직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결국 제 버릇 개 못주면서 쿠퍼의 인생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되는 거죠.

영화를 보면서 이런 궁금증이 들었어요. 왜 의사이자 세계 최고의 추리 소설 작가인 코난 도일 같은 지식인이 그렇게 심령술에 빠져 버린 이유가 뭘까, 그뿐 아니라 ‘레미제라블’의 저자 빅토르 위고도 심령술의 광팬이었죠. 브래드 피트, 앤젤리나 졸리, 제니퍼 애니스턴, 조지 클루니 같은 할리우드 셀레브러티들도 심령술에 전적으로 의존합니다. 서양인들은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 내 영혼을 영매 몸에 빙의시킨 뒤 죽은 자와 직접 대화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뭘까요? 자신이 한 때 사랑하던(지금도 사랑하는 것은 맞습니다.)사람을 그리도 만나고 싶어서겠죠. 앤젤리나 졸리는 심령술 호소인이 된 까닭은 난소암으로 죽은 어머니를 그렇게나 만나고 싶어서였습니다.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우리는 서양을 합리성, 동양의 신비성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한데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서양이 우리 상식대로 합리성과 이성의 나라들이라면 심령술이 그것도 이성적인 유명인사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리가 없죠. 제가 볼 때 그들이 심령술에 더 열광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근대화와 산업화가 서양인 전체를 진화시킨 게 아니라 서양인의 정신을 뺀 나머지 영역만 진화시킨 결과입니다. 과학의 이름으로 인간은 어른이 되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의존적이고 미숙한 존재로 남았죠. 의존감은 때로는 결핍감으로 이어집니다. 결핍감은 간절한 바람과 동의어죠. 사후 세계가 꼭 있기를 바라며 그곳에서 사랑했지만 먼저 생을 마감한 가족들을 너무나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이겠죠. 사랑하는 가족이 먼저 죽으면 동양인 역시 슬픔을 견딜 수 없고, 굿이나 무당 등 무속에 의존하는 경향이 물론 있지만 서구의 유명인들이 훨씬 더 심령술에 의존하는 이유는 일종의 아노미 현상, 정신적인 면과 기술적인 면 발전의 속도 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한 가지 이 영화가 델 토로 감독의 걸작이 될 충분한 이유가 있는 이유는 사기의 본질에 대한 통찰이에요. 사기는 다른 사람을 속이는 행위지만 근본적으로는 자기기만에 가깝습니다. 브래들리 쿠퍼는 말하죠. 나는 사기꾼일지 모르지만 사기를 당하는 사람들도 실제로는 자기 스스로를 속이고 있고 나는 그걸 도울 뿐이라고. 사기술의 끝판왕이 죽은 자의 영혼을 빌려 산 자의 영혼과 돈을 함께 빨아들이는 기술이라고 할 때 과연 심령술이 사기꾼 혼자서 가능할지 의문을 가져봅니다. 자신을 죄책감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나는 죽은 자의 영혼으로부터 용서를 받았다고 자신을 스스로 속이고자 하는 피해자의 심리가 없었다면 이 희대의 사기극이 과연 가능했을까요? 물론 이 영화 한 편으로 모든 심령술이 사기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델 토르 감독의 사기와 심령술에 대한 시선이 어떠한지 만큼은 충분히 전달되는 영화였습니다. 좋은 영화는 무릇 재미있으면서 보고 나서 생각할 거리를 잔뜩 안겨 주는 생각의 선물 보따리가 좋은 영화인데 그런 의미에서 ‘나이트메어 앨리’는 좋은 영화가 분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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