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 하루키의 뇌에서 벌어지는 일들

by 신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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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처럼 길고 오랜동안 우리에게 사랑받은 외국 작가가 있을까요? 80년대 말 운동권이 퇴조하고 개인주의가 대학가를 장악할 때 우리의 청춘은 완전히 하루키에게 넋을 빼앗겼습니다. 이후 기복이 있었지만 33년이 지난 지금도 하루키는 우리가 사랑하는 최애 작가입니다. 반일감정이 세계에서 제일 강한 우리나라에서 하루키와 히가시노 게이고의 국내 인기는 논리적으로 설명되기 어려운 이유가 있는데요, 가장 큰 이유는 두 작가가 글을 잘 쓰고 매력적이라는 이유겠죠. 하루키는 소설도 잘 쓰지만 잡문도 아주 잘 씁니다. 20년쯤 전에 읽은 재즈 음악 이야기 ‘무라카미 라디오’도 흥미로운 잡문이었는데 최근 출간된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는 더 많은 팬들에게 환영받을 만한 책이었습니다. 코로나 이후 갑자기 클래식 음악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의 팬이 되었기 때문이죠.

일단 하루키는 클래식 음반 마니아입니다. 1만 5천 장 정도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번 책에선 모두 100장의 클래식 레코드를 소개하고 있는데 같은 베토벤의 피아노 3중주 7번이라도 연주자에 따라 각기 다른 비닐 레코드를 수집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들의 음을 세세하게 구분하는 능력은 없지만 하루키는 각각이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합니다. 섬세한 귀와 섬세한 손가락은 사실 뇌의 작용이죠. 그래서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세계에서 250명밖에 없다는 음악 뇌과학자 대니얼 래비틴이 쓴 ‘음악인류’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하루키의 뇌는 왜 클래식 음악을 좋아할지 음악을 듣는 동안 그의 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내는 실마리를 제공해주고 있기 때문이죠.

일단 하루키가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는 중고생 때 열심히 들으며 음반 구입을 위해 도쿄 시내를 뒤지던 자신의 경험 때문입니다. 음악은 성장판이 있습니다. 사춘기 시절 왕성해지고 20세가 넘어가면 닫히죠. 50대가 아무리 자주 들어도 BTS의 음악이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들이 어려서 들었던 음악과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서도 어린 시절에 들었던 음악을 좋아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BTS에 영혼을 바쳐 사랑하던 20대들은 50대가 되어도 여전히 BTS를 들을 겁니다.

보니까 하루키는 클래식 레코드를 소개하면서 이 레코드를 수입할 때 기억을 생생하게 기억해내더라고요. 이는 음악은 우리의 기억과 가장 가까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지난 시절의 기억은 마들렌의 항으로 시작했지만 실제 인간의 기억은 음악이 자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옛날 음악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옛날 생각이 납니다. 나이 들면 예전의 음악이 더욱더 좋아지는 것은 옛날의 기억이 너무나 그립기 때문입니다. 기억이 없으면 음악도 없는 것이죠. 하루키의 클래식 음악 100선에는 두 명의 작곡가가 빠져 있습니다. 바로 히틀러가 끔찍이도 좋아했던 바그너와 브루크너입니다. 물론 하루키는 두 사람을 히틀러 때문에 제외한 것은 아닙니다. 하루키는 양심적인 일본 작가이기는 하지만 그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20세기의 3대 비극이 히틀러, 히로시마, 현대 음악이라고 말하는 엄연한 일본인입니다. 안 그래도 책에는 오자와 세이지와 보스턴 오케스트라의 앨범이 유달리 많이 등장합니다. 책의 서문에 바그너와 브루크너의 음반이 빠진 이유에 히틀러의 이름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저는 세계주의와 휴머니즘을 강조하는 하루키가 히틀러를 고려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하튼 바그너의 음악은 분명 호불호가 심하죠. 왜 유대인들은 바그너의 음악을 지금까지도 금지곡으로 지정해두고 있을까요? 역시 기억으로 설명됩니다. 아우슈비츠 600만 학살과 이를 지시한 콧수염의 사나이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이지요. 하루키는 클래식 음악 순례기를 듣다 보면 그의 청장년기에 클래식 음악이 얼마나 정신적으로 심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그가 나츠메 소세키와 아쿠다카와 류노스케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잇는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라기보다는 레이먼드 카버와 레이몬드 챈들러를 비롯해 미국 작가보다 더 미국적으로 읽히는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그의 무국적 세계관은 그가 성장기에 들은 클래식 음악 덕분이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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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틴 작가에 따르면 음악은 언어나 그림처럼 인간 뇌의 특정 부위에서 관할하는 게 아니라 온 뇌가 다 반응하는 전뇌적 작용입니다. 일단 전전두 피질은 기대감을 반영합니다. 내가 어렸을 때 들었던 음악의 전주가 나오면 기대감이 생성되죠. 운동피질과 감각피질은 음악을 따라 부르거나 고갯짓 마치 기타리스트가 되어 기타 연주를 취하는 자세를 만들어내죠. 소뇌는 발 구르기와 춤으로 이어지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퀸의 ‘위 윌 락 유’를 들으면서 발을 굴러 쿵쿵쿵하고 박자를 맞추는 것은 소뇌 덕분이죠. 두뇌의 중간 부분에 있는 청각 피질이 음악을 감상하고 후두엽에 있는 시각피질은 콘서트 현장에서 연주자와 지휘자 싱어의 움직임을 보면서 몰아지경에 빠지도록 돕습니다. 해마에서는 그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의 기억으로 나를 연결시켜 주죠. 음악이 너무 좋으면 중격기저핵이 반응을 해서 도파민을 양산합니다.

사실 음악은 반복의 예술입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좋아지고 정들 수밖에 없는 것이죠. 다만 반복해서 듣는 시기가 사춘기 성적 호르몬이 많이 분비될 때였다면 그때 들은 음악이 평생을 가는 법이죠. 저는 비틀스가 가장 위대한 록 그룹이라고 생각하지만 비틀스의 음악이 요즘 유행하는 K팝보다 수준이 높다는 식의 편견은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음악은 어디까지나 취향과 기억의 문제이기 때문이죠. 무라카미 하루키는 클래식과 재즈에 대한 사랑 때문에 여전히 아바의 음악을 싫어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가 아바의 음악을 싫어한다고 해서 아바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거나 그를 비판할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바는 아바고 하루키는 하루키이니까요. 만약 하루키가 추천하는 클래식 음악이 좋다면 그건 그 음악과 관련된 나의 기억이 좋기 때문인 거지, 작가 하루키와는 상관이 없는 거라고 봐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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